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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86

추억의 용병 05 - ‘콧수염만 남기고 간’ 마이클 가르시아 2000시즌 삼성은 마운드 보강을 위해 전년도 40홈런 타자이자 시즌 20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던 거포 ‘찰스 스미스’를 방출했다. 이는 매우 용감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우완 투수 ‘마이클 가르시아’와 연봉 8만 달러에 계약했다. 결과적으로는 미친 선택이었다. 차라리 한 100만 달러 용병을 데리고 오든가 할 것이지… 가리스아는 1996-1998년까지 3년 동안 대만리그에서 뛰었다. 그리고 1999-2000년에는 메이저리그 경험을 잠시 했던 투수. 알려지기로는 최고 148km의 패스트볼과 싱커가 주무기로 경기 운영 능력이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가르시아는 마이너리그 시절 주로 불펜으로 활약했으나 팀이 원한다면 선발로도 가능하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런데 그는 팀이 기대했던 반전 카드가 되지 .. 2023. 10. 5.
추억의 용병 13 - ‘무시당했던 용병(2)’ 게리 레스 치킨 한 마리(?) 때문에(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두하 루이스가 팀을 떠나자 해태는 대체 선수로 좌완 투수 ‘게리 레스’를 연봉 9만 5천 달러에 영입했다. 레스는 199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LA 다저스에 지명을 받았다. 이후 1998년 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 입성. 3경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10.80을 기록했고, 이듬해 미네소타로 이적해 5경기 1승 1패를 기록하는 등 통산 2시즌 동안 8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11.25를 기록했었다. 해태 유니폼을 입은 레스. 그러나 시작부터 그는 외면(?)당했다. 레스는 빠른 볼을 던지는 유형의 투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120km의 공을 던지는 아리랑 볼 투수”라고 조롱받았다. 게다가 제구력도 별로였다. 결국 구단은 또 .. 2023. 10. 3.
추억의 용병 12 - ‘의미 없는 용병(2)’ 리치 루이스 KBO리그 중심에 서 있던 ‘해태 타이거즈’가 2001년 시즌 중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탄생한 KIA 타이거즈. 그들은 리그 참가 첫 시즌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당시 포스트시즌 진출을 놓고 레이스를 펼치던 상황. KIA는 있으나 마나 한 용병 젠슨을 퇴출했다. 그리고 대체 선수로 우완투수 ‘리치 루이스’를 영입했다. 문제는 젠슨은 8월 22일에 퇴출됐고, 리치의 영입 발표는 8월 23일이었다. 정상적인 퇴출과 영입 그런데 KIA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더라도 리치는 경기에 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영입했다. 이는 KIA의 승부수였다. 어쨌든 KIA 유니폼을 입은 리치는 화려한 이력을 가진 선수였다. 1987년 ML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몬트리올에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1.. 2023. 10. 3.
추억의 용병 11 - ‘의미 없는 용병(1)’ 마티 젠슨 해태는 계속된 부진과 그것을 빌미로 돈을 아끼기(?) 위해 외야수 타바레스를 퇴출했다. 그리고 선택한 카드는 우완투수 ‘마티 젠슨’으로 연봉 7만 5천 달러, 5승 달성시 추가 옵션 5천 달러를 걸어 계약했다. 일단 젠슨의 이력은 나름 좋았다. 1994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에 뉴욕 산하 마이너 투수들 가운데 최고의 패스트볼과 커브를 가지고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1996년과 1997년에는 토론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27경기 6승 7패를 남겼다. 다만 이것은 그의 과거 이력이었을 뿐이다. 젠슨은 KBO 데뷔 전에서 4이닝 4피안타 3볼넷 3탈삼진 3실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에는 뚜렷한 활약이 없었다. 단 4경기에 등판하며 12.2이닝만 소화,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8.53을 기록.. 2023. 9. 17.
추억의 용병 10 - ‘치킨 때문에 떠난’ 루이스 안두하 2001년 해태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우완 ‘루이스 안두하’와 연봉 12만 달러, 옵션 2만 달러에 계약했다. 루이스는 1995-1998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을 경험한 인물로 150km의 강속구가 매력적인 투수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는 순간 매력(?)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투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스프링캠프에서 루이스는 40개의 라이브 피칭을 했다. 그 결과 최고 127km 평균 120km 초반의 구속을 기록했다. 캠프라고 해도…현역 투수가 이런 구속을 나타내는 것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구보다 김성한 감독은 한마디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분명 도미니카에서 직접 봤을 때, 146km까지 기록했는데 무려 20km가 사라졌다니…결국 김성한 감독과 루이스가 면담을 하게 됐다. 그럴 수도 .. 2023. 9. 14.
추억의 용병 09 – ‘사기 피해자(?)’ 헤수스 타바레즈 용병 잔혹사로 처참한 시즌을 보내고 있던 2000년. 해태는 포조의 대체 선수로 외야수 자원 ‘헤수스 타바레스’와 6만 5천 달러라는 헐값(?) 계약했다. 타바레스는 ‘스위치 히터’로 당시 외국인 거포만 선호하던 풍토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수였다. 그래서 김응룡 감독에게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다. 김응룡 감독은 “외야 수비는 그럭저럭 하는데…그러면 뭘 하나? 방망이가 형편없다.”라면서 “몸값이 싼 선수에게 뭘 기대하나?”라며 혹평과 함께 불만을 표출했었다. 그러나 타바레스는 1994-1998년까지 5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228경기에 출장해 통산 101안타 타율 0.239를 기록했다. 당시 KBO리그 수준에 메이저리그에서 228경기를 뛴 선수가 이렇게 혹평받아야 했을지… 어쨌든 데뷔전 6번 타자로 출.. 2023. 9. 3.
추억의 용병 08 - ‘부정선수’ 키스 미첼 부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배스를 방출한 해태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키스 미첼’과 6만 5천 달러에 계약했다. 그런데 미첼은 시작도 전에 이상한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등록명은 구단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미첼의 경우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그의 이름이 결정됐다. 미첼의 풀네임은 “Keith Alexander Mitchell”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키스’, ‘케이시’, ‘케이트’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처음에는 통일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부정 선수였다는 것이었다. 미첼은 1998년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다. 당시 KBO리그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6조에는 “외국의 프리에이전트 선수 중 전.. 202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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