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전체 글95 비운의 에이스 ‘닭똥집’ 김홍집 그날의 기억이 있기에 여전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날의 과정이 조금 다르게 전개됐다면 강력한 임팩트는 없었어도 그의 플레이를 오래 보면서 또 다른 의미로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았을까?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는 LG였다. 그리고 이날의 히어로는 대타 김선진이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으니 141구의 투구를 하며 역투했던 눈물의 에이스 김홍집이다. 스스로가 타협하고 양보했다면, 그리고 스스로가 더 자신을 아꼈다면…그는 좀 더 우리 기억 속에 더 많은 기억을 남기지 않았을까? 김. 홍. 집 한때 정민태와 원-투 펀치가 되는 것을 보고 싶었던 인물. 그러나 끝내 그는 다시 그때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조금만 타협했다면… 오늘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비운.. 2026. 8. 9. 추억의 용병 02 - ‘진짜 구라왕(?)’ 조엘 치멜리스 지금처럼 미디어가 발달했다면 누구보다도 강력한 구라왕이 됐을 것이다. 다만 그 시절 그는 관심을 못 받았고, 사실 한화가 인기팀도 아니었기에 조용히 묻혔던 인물. 사실 어떤 면에서는 존재감이 없던 그런 인물이기도 했다. 용병제도 원년 마이크 부시와 함께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을 재건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이글스 2호 용병 ‘조엘 치멜리스’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 본다. 한화는 캠프 최대어로 꼽히던 마이크 부시를 1라운드에서 선택 후 2라운드에서 또 다른 내야수 자원인 ‘조엘 치멜리스’를 선택했다(9만 달러에 계약). 2명의 내야수. 특히 치멜리스를 선택하면서 정경훈-허준이 나눠서 맡던 유격수를 책임질 것으로 기대했다. 치멜리스는 1988년 마이너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메이저리그 .. 2026. 8. 6. 추억의 용병 02 - ‘범죄자(?)가 된’ 마이크 파머 왼손 투수의 숙원을 용병으로 풀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골치 아픈 인물 중 이름을 남기고 떠난 이가 있으니 2000년과 2001년 뛰었던 왼손 투수 ‘마이크 파머’가 그 주인공이다. 2000년 두산은 두 시즌 동안 함께 했던 내야수 에드가 캐세레스와 결별하고 그 자리에 투수를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자체 트라이아웃을 통해 좌완 투수 자원들을 테스트 한 결과 ‘마이크 파머’를 선택했다(참고로 테스트에 참가했던 이들 가운데 훗날 롯데와 SK에서 뛰었던 대니얼 매기도 있었다). 두산은 파머와 보너스 2만 달러, 연봉 8만 달러 등 총액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파머는 1996년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7경기 등판 1패 7.7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 2026. 8. 6. 추억의 용병 02 - ‘KBO 1호 풀타임 메이저리거’ 주니어 펠릭스 만약 첫 해 풀타임으로 뛰었다면 그의 커리어가 달라졌을지도…그러나 한때는 KBO를 폭격할 줄 알았지만 KBO를 폭격하지 못하고 소속팀을 폭격해(?) 버린 인물 ‘주니어 펠릭스’를 이야기하려 한다. 1998년 외국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LG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스위치히터 ‘주니어 펠릭스’를 지명했다. 문제는 펠릭스가 2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면서 계약이 늦어지더니 결국 LG와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펠릭스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충분히 요구할 만했다. 물론 당시 우리나라는 정보력이 매우 떨어져서 트라이아웃 당시 그는 완전하게(?) 감춰졌었다. 캠프 최대어로 평가받던 마이크 부시(전 한화)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인물이 펠릭스였다. 그는 1989년 토론토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 그해 110경기를 뛰.. 2026. 8. 6. 추억의 용병 02 - '강철 어깨' 스토니 브릭스 1999년 해태에는 이상하다 못해 기괴한(?) 용병 타자 2명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런…그 중 지금 소개하려는 타자는 강력한 어깨를 자랑했던 ‘스토니 브릭스’다.전년도 용병 선발에 마음이 없던 해태는 뒤늦게 ‘숀 헤어’를 영입했다가 대참사(?)를 겪었다. 그러자 없는 살림에도 1999년에는 2명의 선수를 모두 선발하고자 트라이아웃에 나섰다. 그리고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우타자 스토니 브릭스를 선택해 연봉 7만 7,500 달러에 계약했다. 브릭스는 199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토론토에 지명받았다. 참고로 제이슨 슈미트, 브래드 래드키, 마이크 매써니, 데릭 로 등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들이 브릭스와 같은 8라운드에 지명받았고, 심지어 2004년.. 2026. 7. 20. 추억의 용병 01 – ‘돌격대 1호 용병’ 제이크 비아노 결과적으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간판으로는 단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존재했다. 그리고 약간의(?) 차이로 영원한 1호와 2호가 결정됐다.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야구단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쌍방울은 외인 영입 원년이던 1998년에는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9시즌에는 달랐다.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쌍방울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가 탄생하는데 그가 바로 우완투수 ‘제이크 비아노’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코리안 드림’ 대신에 험난한 한국 그리고 쌍방울에서의 여정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비아노는 1993년 드래프트 11라운드에서 콜로라도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에 올 때까지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못했다. 주로 더.. 2026. 7. 19. ‘카우보이 사자’ 페덱의 화려한 데뷔전 다른 건 모르겠고, 일단 편안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 KBO리그 데뷔전을 본 소감이다. 1998년 이후 KBO리그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중엔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커리어가 화려하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봐왔다. 오러클린과 결별한 삼성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뽑은 카드 크리스 페덱은 '현역 메이저리거'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일 뿐. 이 카드가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악수로 남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일단 데뷔전만 놓고 보면, 신의 한 수 쪽에 가까웠다. 페덱은 1회 연속 두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며 산뜻하게 출발했다. KBO리그 데뷔 첫 아웃카운트.. 2026. 7. 19. 추억의 용병 - 01. '팀 1호 퇴출 용병' 제이슨 스코비 말은 의지가 강하다고 하지만, 시작부터 이 팀은 야구단을 정상 운영할 의지가 없는 팀이었다. 그랬다면 전력 보강에 있어서 가장 쉬운(?) 루트인 외인 카드를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2008년 8번째 구단으로 출발을 선언한 ‘센테니얼’의 창단 작업이 늦어지면서 시즌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잡음들이 발생했고, 외국인 선수 영입도 3월이 되어서야 결정됐다. 이들이 선택한 카드는 현대의 마지막 4번 타자 브룸바와 또 다른 선수는 직전 시즌 KIA에서 뛰었던 ‘제이슨 스코비’였다. 느닷없이 왔다가 홀연히 사라진 인물이기도…스코비는 2007년 5월 대체 선수로 KIA 유니폼을 입은 우완 투수였다. 그리고 그는 선발로 20경기 등판, 무려 14번의 QS를 기록하면서 8승 10.. 2026. 7. 13. 추억의 용병 - 01. ‘無 Tool 용병’ 타이론 혼즈 쌍방울은 해체 직전 2000시즌을 위해 2명의 외국인 타자를 영입했다. 그중 한 명이 ‘타이론 혼즈’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로 이들은 잠시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지만 결국 팀이 해체되고 SK의 창단으로 2개 팀에 소속이 됐다. 어쨌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SK 1호 용병이 된 혼즈에 대해서 추억해본다. 혼즈는 연봉 9만 달러와 인센티브 3만 달러라는 저렴한(?) 몸값 때문에 계약한 인물이었다. 혼즈는 메이저리그 경험은 없었다. 또한 트리플 A도 아니고 더블A에서 뛰었다. 물론 더블 A에서 좋은 공격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SK의 초대 감독이었던 강병철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그를 본 후 교체를 심각하게 검토해야 했다. 알려지기로는 185cm 85kg이었다. 하지만 캠프 당시 그의 몸집.. 2026. 7. 13. 추억의 용병 01 - ‘진짜 구라왕’ 덕 브래디 이제 한국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기억하더라도…그리고 한국에서 오해 아닌 오해를 받았던 것을 알아도 이제는 웃고 넘길 것이다. 그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이 역시도 이제는 웃고 넘길 일이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1998년 ‘용병 구라왕’은 해태 숀 헤어가 아니었다. 바로 이 선수…발로만으로 30안타를 만들 수 있다고 했지만 독서만 열심히 하다가 떠난 인물 롯데 자이언츠 역사상 1호 용병 ‘덕 브래디’가 그 주인공이다. 1999년 호세를 더욱 빛냈던(?) 인물 브래드를 추억해 본다. 1998년 롯데는 외국인 드리프트 1라운드에서 우완 투수 빅터 콜, 2라운드에서 내야수 덕 브래디를 지명했다. 그러나 빅터 콜이 무려 45만 달러를 요구하자 롯데는 계약을 포기하고 2라운드에서 지명한.. 2026. 7. 13. 유니콘스의 분위기 메이커 ‘정똘’ 정성훈 현대 유니폼을 입은 후 그의 헤어칼라는 검은색이 아닌 샛노란 색이었다. 당시 정서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의 정서로는 용납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넘어 까불까불한 이미지…선배들에게 서슴없이 장난을 거는 그런 선수. 요즘으로 말하면 MZ세대와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자유분방함 그래도 밉지 않은 그런 캐릭터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최근에 최강 야구에서 그의 모습은 다소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 그리고 후배들에게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던지는 그런 캐릭터. 당연히 마흔 살을 훌쩍 넘겼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원래 그런 인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현대 팬들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최강 야구에서.. 2026. 7. 13. 추억의 용병 01 - ‘미국산 선풍기’ 마이크 부시 1980년 후반 그리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해태 삼성과 함께 리그를 이끌었던 팀이 빙그레 이글스였다. 해태-삼성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철벽 마운드와 이글스의 상징인 ‘다이너마이트 타선’까지…비록 해태의 벽을 넘지 못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던 팀이기도 하지만 한때 프로야구의 중심에 있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팀의 주력 선수들의 은퇴와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팀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다. 또한, 팀의 간판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바뀌면서 점점 힘을 쓰지 못하는 팀이 됐다. 결국 돌파구를 찾던 한화는 1998년 도입된 외국인 선수 제도를 통해 과거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재건과 함께 KBO리그를 초토화할 인물을 찾았으니 KBO.. 2026. 7. 13. 이전 1 2 3 4 ··· 8 다음 728x90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