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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두산 베어스11

추억의 용병 10 - ‘준PO만(?) 히어로’ 이지 알칸트라 2004년 두산은 결국 키퍼를 퇴출하고 그의 대체 선수로 LG 출신의 거포형 용병 ‘이지 알칸트라’를 계약금 3만 달러, 연봉 5만 달러에 영입했다.  일단 알칸트라는 2003시즌 LG에서 뛰면서 검증된 타자였다. 그리고 2004년에는 멕시칸 리그에서 타율 0.316 홈런 27개로 홈런 부문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어쨌든 경기 감각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KBO리그 적응력도 필요가 없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두산 타선의 무게감을 높여줄 수 있는 그런 타자가 되어줄 것으로… 하지만 다시 돌아온 알칸트라는 한 달 동안 2할 4푼대의 저조한 타율에 홈런도 3개에 그치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LG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의 1루 수비는 구멍에 가까운 수준…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던 알칸.. 2024. 12. 16.
추억의 용병 09 - ‘날개 꺾인 팔색조’ 마크 키퍼 2003년 초반 두산은 ‘공갈포’ 쿨바를 퇴출했다. 그리고 그의 대체 선수를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선택했다. 두산은 투수 최용호를 KIA에 보내는 조건으로 외국인 투수 마크 키퍼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키퍼는 2002년 KIA에서 19승을 올리며 다승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 4승 4패 평균자책점 4.07로 이전과 달리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트레이드를 한 것이다. 그런데 두산 유니폼을 입은 키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공교롭게도 2002년 게리 레스, 2003년 마크 키퍼 모두 KIA 출신 외국인 투수였는데 두산 유니폼을 입고는 다른 사람이 됐다. 엄밀히 말하면 키퍼는 아니지만…』 키퍼는 이적 후 3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는데 이는 한국 무대 첫 완투승이었다. 그리고 K.. 2024. 11. 13.
추억의 용병 08 - ‘최초의 일본인 용병’ 이리키 사토시 2002시즌 종료 후, 두산은 최고의 용병 듀오 우즈와 레스를 일본에 모두 빼앗겼다. 일차적으로는 일본과 ‘머니 게임’에서 진 것도 있으나 애초에 의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 어쨌든 2003년 새로운 얼굴로 외국인 선수를 채워야 했고, 그중에 한 명이 ‘이리키 사토시’였다. 두산은 이리키와 15만달러(사이닝보너스 3만달러, 연봉 7만달러, 옵션 5만달러)에 계약했다. 이 계약으로 KBO리그 역사상 1호 일본인 투수가 입단하게 된 것이다. 1990년 긴테쓰에 입단한 이리키는 히로시마-요미우리-야쿠르트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2001년에는 야쿠르트에서 10승(3패)을 거두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 부상과 개인사로 인해 1승 3패로 부진, 결국 팀에서 방출됐다. 재기를 모색하던 이리키는 NP.. 2024. 7. 27.
추억의 용병 07 – ‘공갈포’ 마이크 쿨바 2002시즌을 끝으로 우즈가 두산을 떠났다. 당시 두산은 우즈를 잡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 우즈가 두산이 아닌 일본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쨌든 팀의 중심 타자가 떠난 이상 그 자리에 새로운 거포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두산이 선택한 인물이 ‘쿨바’였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 계약). 쿨바라는 선수는 한국 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1998년 현대에서 뛰었던 스코트 쿨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두산이 선택한 인물은 그의 동생 ‘마이크 쿨바’였다. 쿨바는 1990년 드래프트 16라운드에서 토론토에 지명받아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줄곧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그는 2001년 밀워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 2시즌 동안 44경기에 출전, 홈런 2개 7타점 타율.. 2024. 7. 16.
추억의 용병 06 - ‘레전드 흑곰’ 타이론 우즈 1998년 외국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내야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선택한 OB는 2라운드에서 거포형 타자 ‘타이론 우즈’를 선택했다. 우즈는 현대 쿨바, 삼성 베이커와 함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물로 큰 어려움 없이 계약에 성공했다(사이닝보너서 2만 달러 포함 총액 9만 4천 달러).  OB의 일원이 된 우즈는 커리어도 주목할 것이 없는 수준의 선수였다. 1996년 더블A에서 타율 0.312 홈런 25개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1997년 트리플A에서 타율 0.352 홈런 9개를 기록했다. 당시 KBO리그 수준을 고려해도 눈에 띄는 수준의 커리어는 분명 아니었다. 어쨌든 시즌 초반 우즈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무조건 힘으로 대응하는 모습으로 일관하면서 활약보다 민폐와 같은 존재로 .. 2024. 7. 13.
추억의 용병 05 – ‘깽판 왕’ 빅터 콜 2001년 시즌 초반 마이크 파머를 퇴출한 두산은 2000시즌 SK에서 뛰었던 빅터 콜과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6만 8천 달러에 계약했다. 두산 이미 직전 시즌부터 김인식 감독이 콜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대체 선수로 선택했다(SK편에서 자세히…). 두산 유니폼을 입은 콜은 한때 팀에게 구세주(?)와 다름없었다. 당시 두산은 선발 투수가 사실상 없었다. 그마나 유일한(?) 선발 투수였던 구자운도 부상으로 전력에서 떠나있던 상황. 그런데 콜은 팀 합류 후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한때, 4연승을 달리는 등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해냈다. 다만 극한의(?) 기복과 제구력 불안으로 그의 활약은 오래가지 못했다.  전반기 9경기에서 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4패 그러나 평균자책점은 무려 5.37이었다... 2024. 7. 2.
추억의 용병 04 - ‘아무도 모르는 용병(?)’ 셰인 베넷 트로이 닐을 퇴출한 두산은 대체 선수로 우완투수 ‘셰인 베넷’과 계약을 했다. 베넷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호주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인물로 몬트리올 소속으로 1997-1999시즌까지 3년 동안 메이저리그 통산 83경기에 등판해 5승 7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5.87을 기록했다. 이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던 베넷을 두산에 입단하기 전까지 대만에서 뛰면서 8세이브를 거두고 있었다. 6월 13일 KBO리그 데뷔 전을 치른 베넷은 6이닝 동안 무려 11개의 피안타를 허용했지만 3실점(자책)으로 마감하며 첫 등판 치고는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역투였던 것이다. 이후 베넷은 완전히 존재감이 없는 외국인 선수였다. 또한 허벅지 부상으로 입단 한 달 만에 퇴출됐다. 물론 하루 ..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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