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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143

추억의 용병 39 – ‘홀연히 사라진 용병’ 호라시오 라미레즈 KIA는 2012년 선동열 감독의 부임과 함께 외국인 선수를 모두 교체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뛴 알렉스 그라만을 영입하려 했다. 그러나 그라만이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하자 새로운 선수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매우 험난했다. 대부분 계약이 완료된 2월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찾고 또 찾아서 결국 선동열 감독이 원하던 ‘왼손 용병’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바로 호라시오 라미레즈였다.  라미레즈는 애틀란타 소속이던 2003년 12승, 2005년에 11승을 기록한 투수였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8시즌 통산 169경기 40승 35패 평균 자책점 4.65를 기록하며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한 그런 인물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였다.  『그 시절.. 2024. 8. 9.
추억의 용병 38 - ‘타이거즈 최고 용병’ 아킬리노 로페즈 2009년 KIA는 구톰슨에 이어 우완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를 영입했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로페즈는 메이저리그 통산 5시즌 동안 159경기 207.1이닝을 소화하며 6승 6패 15세이브 평균 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평균 자책점 3점대라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분식 대마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참고로 로페즈는 2007년 KIA에서 뛰었던 서튼이 강력하게 추천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그가 불펜 투수로 뛸 일은 없을 것이라면… KIA는 사실 주자 견제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를 부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140km 중후반의 스피드와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2009시즌 시작은.. 2024. 8. 8.
추억의 용병 12 - ‘괴짜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 2002년 LG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메이저리그 출신의 좌완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와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만자니오는 2001년 멕시칸 리그에서 16승(3패)과 평균 자책점 1.50을 기록한 투수였다. 그리고 먼 옛날(?) 일이었지만 1988년 빅리그 입성 이후 통산 3시즌 동안 53경기 4승 3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4.43을 기록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입단 당시 한국 나이로 무려(?) 40세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상 그의 나이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나이와 별개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유연한 몸으로 여전히 140km 후반의 빠른 볼을 구사하는 투수로 소개됐다. 또한 야구와 별개로 젊은 시절 한가락(?)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악동’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2024. 8. 7.
추억의 용병 37 - ‘분노 조절 장애 용병’ 트레비스 블랙클리 KIA는 2011년 로페즈와 재계약을 선택하고, 남은 한 자리에 좌완 투수인 트레비스 블랙클리를 영입했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트레비스는 시애틀-샌프란시스코 등 메이저리그 2시즌 동안 8경기 1승 3패 평균 자책점 9.47을 기록한 투수였다. 처음에는 140km 중반 이상의 빠른 볼과 각도 큰 커브를 구사하는 ‘파워 피처’로 알려졌다(사실 이것이 바른 평가였다).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는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졌다. KIA 코칭스태프는 과거 KIA와 두산에서 뛰었던 게리 레스의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심판들도 변화구 각이 크고 무브먼트는 훌륭하지만 스피드는 빠르지 않은 투수라며 KIA 코칭스태프와 비슷한 평가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구라(?).. 2024. 8. 4.
추억의 용병 - 05. ‘역대 최고(?)의 관광객’ 데이비드 에반스 2001년 한화는 선발 마운드 보강을 위해 우완 투수 데이비드 에반스와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이런 선수를 왜 영입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입단 당시 언론에서는 에반스에 대해 2000년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에서 뛰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커리어 시작부터 은퇴하기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또한 최고 150km의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를 잘 구사하는 선수로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2001년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이광환 감독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에반스를 자체 청백전을 통해 테스트했다. 이 말은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광환 감독이 한화 사령탑에 오르기 전.. 2024. 7. 30.
추억의 용병 08 - ‘최초의 일본인 용병’ 이리키 사토시 2002시즌 종료 후, 두산은 최고의 용병 듀오 우즈와 레스를 일본에 모두 빼앗겼다. 일차적으로는 일본과 ‘머니 게임’에서 진 것도 있으나 애초에 의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 어쨌든 2003년 새로운 얼굴로 외국인 선수를 채워야 했고, 그중에 한 명이 ‘이리키 사토시’였다. 두산은 이리키와 15만달러(사이닝보너스 3만달러, 연봉 7만달러, 옵션 5만달러)에 계약했다. 이 계약으로 KBO리그 역사상 1호 일본인 투수가 입단하게 된 것이다. 1990년 긴테쓰에 입단한 이리키는 히로시마-요미우리-야쿠르트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2001년에는 야쿠르트에서 10승(3패)을 거두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이듬해 부상과 개인사로 인해 1승 3패로 부진, 결국 팀에서 방출됐다. 재기를 모색하던 이리키는 NP.. 2024. 7. 27.
추억의 용병 07 – ‘공갈포’ 마이크 쿨바 2002시즌을 끝으로 우즈가 두산을 떠났다. 당시 두산은 우즈를 잡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 우즈가 두산이 아닌 일본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쨌든 팀의 중심 타자가 떠난 이상 그 자리에 새로운 거포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두산이 선택한 인물이 ‘쿨바’였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 계약). 쿨바라는 선수는 한국 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1998년 현대에서 뛰었던 스코트 쿨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두산이 선택한 인물은 그의 동생 ‘마이크 쿨바’였다. 쿨바는 1990년 드래프트 16라운드에서 토론토에 지명받아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줄곧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그는 2001년 밀워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 2시즌 동안 44경기에 출전, 홈런 2개 7타점 타율.. 2024.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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