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IA는 구톰슨에 이어 우완 투수 ‘아킬리노 로페즈’를 영입했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로페즈는 메이저리그 통산 5시즌 동안 159경기 207.1이닝을 소화하며 6승 6패 15세이브 평균 자책점 3.78을 기록하며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통산 평균 자책점 3점대라는 것이 주목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분식 대마왕’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참고로 로페즈는 2007년 KIA에서 뛰었던 서튼이 강력하게 추천한 인물이었다. 어쨌든 그가 불펜 투수로 뛸 일은 없을 것이라면…
KIA는 사실 주자 견제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그를 부정적으로 봤다. 하지만 140km 중후반의 스피드와 다양한 구종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선택을 한 것이다.
2009시즌 시작은 불펜으로 나서며 몸을 푼 로페즈는 140km 중후반의 빠른 볼과 함께 싱커를 앞세워 위력적인 투구를 했다. 시즌 초반 8경기 중 5경기에서 QS를 기록하며 구톰슨과 강력한 원-투 펀치로 활약했다. 다만 로페즈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4월과 5월 11경기에 등판해(8경기 선발) 2승 2패에 그쳤다.
그러나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이닝이터’로 위용을 과시했다. 로페즈는 전반기 8승 3패에 이어 후반기 10경기에서 6승 2패를 기록하며 2009시즌 29경기(선발 26경기) 14승 5패 평균 자책점 3.12를 기록하며 다승 공동 1위, 평균 자책점 3위 등으로 KIA를 이끄는 막강 에이스로 활약했다.
하지만 정규 시즌에서 모습보다 2009시즌 한국시리즈의 포스(?)는 KIA 팬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로페즈는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로 등판해 8이닝 3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이어 팀이 2연승 후 2연패로 분위기를 빼앗긴 상황에서 5차전 다시 선발로 나섰다. 그리고 이날 로페즈는 9이닝을 모두 책임지며 완봉승을 따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7차전 잊지 못할 장면을 팬들의 기억에 심어주었다.
3승 3패로 물러설 곳이 없던 7차전. KIA는 초반부터 리드를 당했으나 어렵게 5-5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8회 로페즈는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벤치의 지시가 아닌 본인 스스로 등판을 자처한 것이다. 그 정도로 로페즈의 투지는 활활 타올랐다. 아니 자신도 있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오른 로페즈는 위기에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0.2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며 12년 만에 달성한 KIA 우승의 중심에 서 있었다.
로페즈는 한국시리즈 3경기 17.2이닝 동안 단 3실점. 평균 자책점 1.53과 2승을 따냈다. 그러나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에게 MVP가 돌아갔다. 이에 로페즈는 매우 섭섭해했다. 로페즈는 한국 정서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자축 파티도 불참하고 다음 날 출국했다. 이로써 KIA와 인연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일부 KIA 팬들이 트로피를 제작해 선물했고, 골든 글러브에서 압도적인 득표로 투수 부문 수상자가 되자 그제야 “한국 정서가 이해된다.”라며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기도…
2010년 로페즈는 계약금 7만 5천 달러, 연봉 30만 달러 등 총액 37만 5천 달러에 재계약을 한다.
그러나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개막전 6이닝 6실점 패전 투수가 된 이후 시즌 첫 3경기에서 1승 2패 ERA 5.85를 기록했다. 게다가 두 번째 등판 후 어깨 이상으로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거르는 등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이후에도 로페즈는 계속해서 난타당했다. KIA 코칭스태프와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상대하는 타자들은 전년도에 비해 확실히 구위가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어느덧 로페즈는 동네북으로 전락한 것이다. 구위가 떨어지는 대신에 그의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2010년 4월 23일 로페즈는 목동에서 히어로즈와 경기에 등판했다.
그리고 이날 내야수의 실책으로 역전을 허용하고 강판 됐다. 로페즈가 아니라도 당연히 열이 뻗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덕아웃에 들어간 로페즈는 글러브를 던지고 쓰레기통을 발로 차면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 모습이 중계방송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고, 팬들은 물론 야구인들이나 언론에서는 그의 인성에 대해서 비난을 했다.
『한국 정서로는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지만, 야구인-언론에서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맹비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시간이 흘러 6월 30일 SK전…
불펜 투수들의 난조, 뭐 사실 당시 KIA 불펜의 불쇼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의 승리를 날려 버리자 덕아웃에서 지켜보던 로페즈는 의자를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이 모습 역시 중계 화면에 잡히면서 그에 대한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이러한 모습에 많은 야구인이 로페즈를 악동으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왜? 한두 번의 모습을 가지고 나쁜놈 취급했는지 모르겠다. 툭하면 실책과 불쇼로 승리를 날리는데 옵션 걸린 외국인이 웃을 수 있을까?) 팬들은 로페즈에게 ‘의자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이래저래 힘겨운 한 해를 보낸 로페즈는 2010시즌 27경기 4승 10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4.66을 기록했다.
시즌 중에도 퇴출설이 나오기도 했고, 팀 분위기를 해치는 선수로 분류가 되면서 재계약이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KIA는 장고 끝에 ‘윈터리그 참가 금지’ 조건을 내세워 재계약을 했다(2010시즌 연봉과 동결, 다만 믿을 수는…).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로페즈는 마이너리그 11시즌 동안 355경기에 출전 그 가운데 단 85경기만 선발로 뛰었다. 그런데 2009시즌 190.1이닝과 한국시리즈 17.2이닝으로 총 208이닝을 소화해냈다. 당시 한국 나이로 35살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로페즈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시리즈 후, 윈터리그에서 알바(?)를 뛰었다. 이는 2010시즌 구위가 떨어진 주된 이유였다.
KIA는 재계약 후, 로페즈의 피칭을 금지 시켰다. 또한 스프링캠프에서도 다른 투수들에 비해 늦게 공을 던지도록 관리했다. 그 결실은 2011시즌 그대로 나타났다.
시즌 초반 연승 가도를 달리며 2009시즌보다 더 강력한 로페즈가 됐다. 승부 근성도 여전했다. 특히 5월 8일 SK전에서 9회 위기 상황에서 이강철 코치가 나오자 자신이 이닝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더니 결국 9회까지 단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괴물로서의 모습도 보여줬다.
『무리해서 선수 생명을 단축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한국 투수들은 이런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모든 투수가 90-100개를 던져야만 롱런하는 것은 아닌데…』
로페즈는 2011시즌 전반기 18경기 중 17경기를 선발로 등판하며 평균 6이닝이 넘는 이닝 소화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이닝이터임을 다시 입증했다. 게다가 7월 초에 시즌 10승을 달성하며 2009시즌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올스타전 경기를 앞두고 옆구리 이상으로 강판 된 로페즈는 다시 2010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참고로 전반기 18경기 10승 3패 1세이브 119이닝 평균 자책점 3.03을 기록했다.』
부상으로 전력에서 빠져 있던 로페즈는 8월 18일 복귀전에서 6이닝 4실점으로 무난한 피칭을 했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계속 난타를 당하는 등, 전반기 위력적인 로페즈는 사라진 지 오래됐다.
그런데 로페즈를 이렇게 만든 인물은 당시 사령탑에 있던 조범현 감독이었다. KIA는 로페즈 외에도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1위에서 4위로 추락했다. 올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력 선수들의 부상 회복을 기다리며 숨 고르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조범현 감독은 1위 탈환을 위한 야구를 했고, 부상 선수들을 조기에 투입하는 악수를 뒀다.
결국, 로페즈도 서둘러 복귀했는데 이것은 완전한 독이 됐다. 그리고 더 나아가 로페즈의 은퇴 시기를 앞당기는 이유가 됐다. 참고로 KIA는 최종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로페즈를 보호했다면 그가 완전히 망가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구위가 사라진 가운데 준플레이오프 2차전 선발로 등판한 로페즈는 노련함을 앞세워 호투했다. 하지만 이것은 KIA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다.
신임 선동열 감독은 로페즈의 재계약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로페즈 역시 윈터리그에 참가했다. 결국, KIA는 그와 결별을 선택했고, 마지막 예우 차원에서 임의탈퇴가 아닌 자유계약 신분으로 그가 다른 팀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 로페즈는 KIA를 떠난 후, SK와 계약을 했다(SK편에서…).
기록만 놓고 본다면 역대 KIA 최고의 외국인 투수는 아닐 것이다. 요즘 대부분 신봉하는 세이버를 대입한다면 말이다.
『참고로 필자는 세이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팬들에게 강렬한 기억은 세이버가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타이거즈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였다고 생각한다. 역대 그 어떤 선수보다 승부 근성이 뛰었고, 책임감도 강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승 용병’이라는 프리미엄(?)도 있었다. 게다가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불펜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장면이기도 했다.
물론 로페즈는 단 두 번(?)의 과격한 행동을 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인성이 부족한 선수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그는 성격이 불같은 다혈질을 소유했지만, 인성이 나쁜 선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선수들 사이에서도 착한(?) 선수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어쩌면 여러 가지 면에서는 KIA에 꼭 필요한 선수이자 최고의 용병 투수로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의자를 던진 것이 전파를 탄 덕분에 그의 별명이 의자왕이 됐다. 그러나 그보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출신 학교를 “광주일고”로 잘 못 안내하면서 그에게 붙여진 광주일고 출신 노혜수가 더욱 기억에 남기도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했을 때…로페즈가 몸이 건강하다는 조건으로 KIA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뛰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로페즈는 한국을 거쳐 간 역대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잊지 못할 인물 가운데 한 명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리고 조범현 감독의 욕심으로 현역 은퇴를 앞당기게 됐던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범현-김기태 이런 지도자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참…
언젠가 가능하다면 초대되어 꼭 챔피언스필드에서 시구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 Aquilino Roa Lopez - 한국명 : 아킬리노 로페즈
● 1975년 4월 21일생
● 우완 투수
● 2003년 4월 2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2003-2004 토론토 -> 2005 필라델피아 -> 2007-2008 디트로이트 -> 2009-2011기아 -> 2012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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