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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KIA 타이거즈

추억의 용병 37 - ‘분노 조절 장애 용병’ 트레비스 블랙클리

by 특급용병 2024.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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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2011년 로페즈와 재계약을 선택하고, 남은 한 자리에 좌완 투수인 트레비스 블랙클리를 영입했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트레비스는 시애틀-샌프란시스코 등 메이저리그 2시즌 동안 8경기 13패 평균 자책점 9.47을 기록한 투수였다. 처음에는 140km 중반 이상의 빠른 볼과 각도 큰 커브를 구사하는 파워 피처로 알려졌다(사실 이것이 바른 평가였다).

 

그러나 스프링캠프에서는 정반대의 평가가 내려졌다. KIA 코칭스태프는 과거 KIA와 두산에서 뛰었던 게리 레스의 유형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심판들도 변화구 각이 크고 무브먼트는 훌륭하지만 스피드는 빠르지 않은 투수라며 KIA 코칭스태프와 비슷한 평가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누구의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구라
(?)로 밝혀졌다.

 

트레비스는 시범경기에서 최고 148km의 빠른 볼을 던졌다. 게다가 오버-사이드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변칙적인 투구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시범경기부터 그가 이슈의 중심에 놓인 것은 견제 동작때문이었다.

 

보통 좌완 투수가 1루에 견제할 때는 오른쪽 다리가 그대로 올라간다. 하지만 트레비스는 달랐다. 견제와 투구시 차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슈가 된 것. 그러자 트레비스는 한국 룰을 따르겠다.”라며 많은 이들에게 오픈 마인드의 소유자로 좋은 인상을 남겼다.

 

물론 훗날 미치광이 수준으로 변할 줄 아무도 몰랐고, 견제 동작도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습관대로 나왔다.

 

어쨌든 KBO리그 데뷔 전에서 그는 이전과 다른, 정석대로 견제 동작을 가져갔다. 그 결과 3개의 도루 허용. 하지만 잘 던지면 그만이었다. 데뷔전 승리는 무산됐지만, 한국 무대 첫 승을 완봉승(9이닝 5피안타 무실점)으로 장식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다만 좋은 투구를 하는데도 시즌 초반 불펜의 불쇼와 타선의 불발로 많은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5월 말 어깨 이상으로 1군에서 한 차례 제외됐다. 그리고 이것이 후반기 큰 재앙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1군에 복귀한 트레비스는 6월에는 5경기에 등판해 무려 4(1)을 올렸다. 그 정도로 페이스가 좋았다. 하지만 629일 롯데전에서 승리(시즌 7번째 승리)가 한국 무대에서 마지막 승리가 되고 말았다. 물론 7월에도 매우 좋은 피칭을 이어갔다. 다만 KIAhell 수준의 불펜은 트레비스의 승리를 지키는 것이 아닌 날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쨌든, 이때만 해도 트레비스에 대한 평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8월이 되면서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변했다.

 

이전에도 다혈질적인 그의 성격으로 인해 볼 판정에 대한 불만을 자주 드러냈다. 하지만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일로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두 경기를 모두 지켜봤는데 그냥 어이가 없었다.

 

82일 잠실에서 두산과 경기. 당시 양의지가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양의지를 향해서 소리를 쳤다. 이는 공수교대 상황에서 KIA 최태원 코치와 두산 김민호 코치의 싸움으로 번졌다. 그냥 대충 짐작으로 홈런 치고 빨리 뛰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치자. 그런데 이후 있었던 삼성과 경기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라는 생각 밖에

 

상황은 이랬다. 당시 삼성과 대구 경기에서 채태인을 몸에 맞는 볼로 내보냈다. 그런데 뭔가 불만을 표출하더니 공수교대 상황에서 채태인에게 강하게 불만을 나타낸 것 같았다. 채태인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고, 결국 양 팀 선수들이 모두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다. 사람을 때려놓고 오히려 화를 낸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트레비스는 점점 포악한 모습으로 변해가면서 팬들도 등을 돌렸다.

 

다혈질의 성격, 문화적인 차이가 원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기량이 문제였다. 84경기에 등판해 그는 단 한 차례도 5이닝 이상을 던지지 못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전반기만 하더라도 148-150km가 나오던 구속이 후반기에는 140km 초반에 머물게 된 것이다.

 

전반기만 해도 15승도 가능해 보였던 그의 승리 시계는 그렇게 멈췄다. 트레비스는 2011시즌 25경기 75126.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 자책점 3.48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준플레이오프 등판을 장담할 수 없었던 트레비스는 불펜으로 등판하며 어깨 이상에 대한 우려를 말끔하게 씻었다. 하지만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되면서 KIA는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인성도 문제였겠지만 어깨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2012년 한국 복귀설이 흘러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메이저리그를 선택했다. 2012년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에서 뛰면서 64(28경기 15선발)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휴스턴과 텍사스에서 뛰면서 22패를 거뒀다. 2014년에는 무대를 바꿔 라쿠텐에서도 뛰기도 했다. 일본 생활을 접고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간 트레비스는 한때 호주에서 뛰기도 했다.

 

트레비스는 자신의 불같은 성질만 잘 다스렸다면 충분히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한국을 떠난 뒤에도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었던 만큼 몸에 이상은 없었다는 것이다. 태업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그가 조금만 더 성실했다면 충분히 재계약은 물론 2012년에는 더 좋은 모습도 가능했을지도

 

● Travis Jarred Blackley - 한국명 : 트레비스 블랙클리 (등록명 : 트레비스)

● 1982년 11월 4일생

● 좌완 투수

● 2004년 7월 1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2004 시애틀 -> 2007 샌프란시스코 -> 2011 KIA -> 2012 오클랜드 -> 2013 텍사스 -> 2014 라쿠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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