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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7

추억의 용병 02 - ‘돌격대의 마지막 용병’ 마이클 앤더슨 쌍방울은 1라운드에서 제이크 비아노를 지명한 뒤, 2라운드에서 LG 출신의 ‘마이클 앤더슨’(계약금 2만 달러, 연봉 6만 8천 달러에 계약)을 지명했다. 사실 쌍방울은 심성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야수 자원인 ‘트레이시 샌더스’를 지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앞서 해태가 지명하면서 차선책으로 앤더슨을 영입했지만 나름 만족감을 표했다. 사실 코칭스태프 입장에서는 계약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던 상황이었다. 당시 팀을 이끌던 김성근 감독은 그에 대해서 “LG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라고 일침(?)을 날리면서 “장점을 살려준다면 충분히 좋은 활약을 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끝이 좋지 않았다. 다만 김성근 감독은 쌍방울이 사라진 후 LG 감독이 됐다.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미화(?)되기도.. 2024. 11. 7.
추억의 용병 12 - ‘괴짜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 2002년 LG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메이저리그 출신의 좌완 투수 라벨로 만자니오와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만자니오는 2001년 멕시칸 리그에서 16승(3패)과 평균 자책점 1.50을 기록한 투수였다. 그리고 먼 옛날(?) 일이었지만 1988년 빅리그 입성 이후 통산 3시즌 동안 53경기 4승 3패 1세이브 평균 자책점 4.43을 기록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입단 당시 한국 나이로 무려(?) 40세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상 그의 나이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나이와 별개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유연한 몸으로 여전히 140km 후반의 빠른 볼을 구사하는 투수로 소개됐다. 또한 야구와 별개로 젊은 시절 한가락(?) 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악동’으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2024. 8. 7.
호타준족의 대명사 '리틀쿠바' 박재홍 (1) 인천 연고 역사에서 팬들의 뇌리에 강타자로 평가받는 선수들이 있었다. 그러나 인천 연고 팀은 전통적인 약체 팀이었다. 어쩌면 인천 팬들이 강타자라고 하는 타자들은 다른 팀에서는 평범한 선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왕조의 시작과 함께 인천 팀에도 ‘진짜 강타자’가 탄생했다.  176cm 82kg 작지만 탄탄한 체구의 그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폭발적인 타격으로 인천 팬들을 열광시켰다.  박. 재. 홍. 그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전설이었다. 어쩌면 짧지만 강렬했던 유니콘스처럼 그는 짧지만 강렬했던 인상을 남기고 팀을 떠난 현대 팬들에게는 영원한 아픈 손가락이기도 했다.  괴물의 공습경보 강렬했던 1996시즌 삼성과 재계 1-2위를 다투던 현대가 프로야구에 들어오려고 하자 반대.. 2024. 7. 19.
유니콘스 '불꽃 남자' 정명원 (1) 1996년 6월 2일… 재계 라이벌 현대와 삼성이 도원에서 주말 3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승부는 이미 현대 쪽으로 너무 많이 기울었다.  그런데 경기 후반 세이브 상황도 아닌데 정명원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것이 엄청난 사건(?)을 만들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올라온 정명원은 첫 타자 양준혁을 맞춰버렸다. 이때 양준혁도 뭔가를 직감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어 등장한 이승엽에게 몸에 바짝 붙는 볼을 던졌다. 가까스로 피한 이승엽. 하지만 정명원은 작심한 것처럼 이승엽의 등판을 맞췄고, 이승엽은 “악”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동시에 양 팀 덕아웃에 있는 선수들은 물론 코치까지도 그라운드에 난입하면서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했다. .. 2024. 7. 17.
추억의 용병 11 - ‘존재감 없던 용병’ 제프 케펜 퀸란을 퇴출한 LG는 대체 선수로 우완 투수 ‘제프 케펜’을 연봉 9만 달러, 사이닝 보너스 3만 달러 등 총액 12만 달러에 영입했다. 케펜은 메이저리그 경험은 없던 투수였다. LG 유니폼을 입은 케펜은 6월 23일 0.2이닝 동안 2실점을 하고 강판당했다. 이에 그는 맹렬하게(?) 분노를 폭발했다. 구단에 퇴단을 요청하며 당장 비행기 표를 구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구단은 황당한 일이었지만 일단 티켓은 준비해놨었다.  갑작스러운(?) 케펜의 폭발은 문화적 그리고 야구 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부분이었다(당시 LG는 김성근 감독 대행 체제로 외국인 선수와 마찰은 늘 존재…그리고 외국인 선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마운드 운용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LG 코칭스태프의 권한으로 케펜의 등판 일정이 조정됐다... 2024. 6. 8.
추억의 용병 09 - '최초의 에이스 용병' 대니 해리거 새천년 LG는 선발 마운드 강화를 위해 우완 투수 ‘대니 해리거’를 선택했다.  해리거는 계약금 6만 달러와 옵션 5만 달러 연봉 9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 물론 대부분 발표액은 20만 달러였다는 사실… 해리거는 1998년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4경기 12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3패, ERA 6.75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그래도 그 당시 한국야구에서는…어쨌든 마이너리그에서는 7시즌 연속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몇 안 되는(?) 선발 투수 자원이었다(여기에 덧붙이면 한국에 와서 선발로 뛴 선수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도 불펜으로 뛰던 인물도 많았다). 입단 당시 해리거는 140km 초반의 구속과 슬라이더가 좋은 기교파 투수로 .. 2024. 5. 12.
추억의 용병 06 - ‘오지라퍼(?)’ 댄 로마이어 2000시즌 그토록 원하던 거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지션 중복 및 수비 문제’를 이유로 LG는 스미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2시즌 동안 한화에서 뛴 ‘댄 로마이어’를 선택했다(연봉 16만 달러, 보너스 4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 로마이어는 1999시즌 한화가 우승하는데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다만 이듬해 성적 부진과 코칭스텝과의 마찰로 한화에서 퇴출됐다. LG에서는 비록 문제점이 있지만 ‘매력적인 선수’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화 시절 주로 1루수로 뛰었던 로마이어는 LG 유니폼을 입고 외야로 나갔다. 코칭스텝은 마이너리그 시절 외야는 물론 포수로도 뛰었던 만큼 포지션 이동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서용빈을 1루에 붙박이로 두고, 로마이어와..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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