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한화 용병9 추억의 용병 07 - ‘훌륭했던(?) 교사’ 대런 윈스턴 최고의 먹튀(?) 워렌을 보낸 한화는 대체 선수로 좌완 투수 대런 윈스턴을 계약금 없이 연봉 5만 달러에 영입했다. 윈스턴은 메이저리그 2시즌을 뛰면서 통산 34경기 2승 4패를 기록했다. 참고로 그는 시즌 전 한화의 자체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선택받지 못했었다. 어쨌든 윈스턴은 훌륭한 매너(?)와 좋은 성격으로 젊은 선수들에게는 좋은 선생님 역할을 해냈다. 다만 야구로 남긴 성과는 없었다. 한국 무대에서 단 9경기만을 뛴 그는 1승 1홀드 평균 자책점 9.39를 남기고 중도에 시즌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팀에서 그에 대해 야구 실력은 별로지만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 투수 인스트럭터를 제안했다. 하지만 선수 본인은 현역으로 의지가 강해 그를 퇴출할 수밖.. 2024. 12. 14. 추억의 용병 06 - ‘먹튀의 계보를 이은’ 브라이언 워렌 한화는 에반스의 대체 선수로 1999년 일본 지바 롯데에서 구원왕을 차지했던 투수 ‘브라이언 워렌’을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14만 달러에 영입했다. 워렌은 1998년 지바 롯데에 입단한 첫해 24경기 2승 1패 3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9년 49경기에서 1승 2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1.82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구원왕에 올랐다. 한화에 입단하기 직전 시즌 2000년에도 3승 2패 16세이브 평균자책점 4.35를 기록한 인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리그 타이틀 홀더가 KBO리그에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 알다시피 몸값의 차이가…참고로 2000년 워렌의 연봉은 약 15억이었다. 그런 선수가 갑자기 한국에서 20만 달러를 받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역시나 한화 관계.. 2024. 11. 14. 추억의 용병 - 05. ‘역대 최고(?)의 관광객’ 데이비드 에반스 2001년 한화는 선발 마운드 보강을 위해 우완 투수 데이비드 에반스와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이런 선수를 왜 영입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입단 당시 언론에서는 에반스에 대해 2000년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에서 뛰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커리어 시작부터 은퇴하기까지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 또한 최고 150km의 빠른 볼과 낙차 큰 커브를 잘 구사하는 선수로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달랐다. 2001년 한화의 지휘봉을 잡은 이광환 감독은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에반스를 자체 청백전을 통해 테스트했다. 이 말은 그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었다. 이광환 감독이 한화 사령탑에 오르기 전.. 2024. 7. 30. 추억의 용병 04 – ‘난봉꾼’ 호세 누네스 1999년 한화는 창단 첫 우승 후 에이스 정민철이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2000시즌이 끝난 후 마무리 구대성도 일본으로 떠났다. 그래서 한화는 마무리가 필요한 것. 한화는 스프링캠프에서 5명의 선수를 초청해 ‘자체 트라이아웃’을 했다. 그리고 무려(?) 5:1의 경쟁률을 뚫고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된 인물이 바로 ‘호세 누네스’였다. 한화는 누네스와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누네스는 1987년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 1990년 시카고 커브스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 동안 77경기 9승 10패 평균자책점 5.05를 기록했다. 또한, 77경기 가운데 22경기를 선발로 뛰면서 선발-불펜을 모두 경험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1990년을 끝으로 더는 메이저리그.. 2024. 7. 3. 추억의 용병 03 - ‘최초의 거포 용병’ 댄 로마이어 한화는 1998년에 이어 1999년에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첫해의 교훈(?)을 바탕으로 팀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선수로 오른손 거포 ‘댄 로마이어’를 1라운드에서 지명을 했다. 그리고 그와 계약금 1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 등 총액 11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사실 한화는 처음부터 캠프 최대어로 꼽히던 로마이어를 탐내고 있었다. 그러나 1순위 롯데가 그와 접촉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른 인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로마이어가 규정보다 2배 이상의 거액(45만 달러를 요구했던 것으로…)을 요구한 것과 로마이어의 포지션이 1루와 DH 포지션에 한정됐다는 점을 이유로 지명을 포기했다. 그 결과 한화는 예정대로(?) 1라운드 2순위로 로마이어를 지명할 수 있었다.. 2024. 7. 2. 추억의 용병 02 - ‘진짜 구라왕(?)’ 조엘 치멜리스 한화는 캠프 최대어로 꼽히던 마이크 부시를 1라운드에서 선택하고, 이어 2라운드에서 또 다른 내야수 자원인 ‘조엘 치멜리스’를 선택했다(9만 달러에 계약). 한화는 2명의 선수를 모두 내야수로 채우며 허준-정경훈이 나눠서 해결하던 유격수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치멜리스는 1988년 마이너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리고 KBO리그에서도 큰 존재감은 없었다. 전반기 58경기에 출전, 0.254의 저조한 타율과 홈런 8개 20타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허준-정경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수비에서는 더 불안했다. 다만 미래(?)를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후반기 치멜리스는 전반기와 너무도 다른 선수였다. 물론 만족할 수는 아니었지만, 후반기 60경기.. 2024. 5. 20. 추억의 용병 01 - ‘미국산 선풍기’ 마이크 부시 빙그레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해태와 삼성과 함께 리그를 이끌었던 팀이었다.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철벽 마운드와 여전히 추억으로 남아 있는 ‘다이너마이트’ 타선까지…비록 해태의 벽을 넘지 못해서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던 팀이기도 하지만 한때 프로야구의 중심에 있던 강팀이었다. 그러나 팀의 주력 선수들의 은퇴와 노쇠화가 진행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팀은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팀의 간판이 빙그레에서 ‘한화’로 바뀌면서 점점 힘을 쓰지 못하는 팀이 됐다. 결국 돌파구를 찾던 한화는 1998년 도입된 외국인 선수 제도를 통해 과거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 팀이 그랬던 것처럼 한화도 외국인 선수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단순한 명성(?)에만 의존했을.. 2023. 8. 20. 이전 1 2 다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