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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태6

‘현대 왕조의 마지막 승리 투수’ 김수경 팀의 기둥 정민태가 팀을 떠나야 할 때도 굳건히 팀을 지켜줄 것 같았다. 그리고 KBO 통산 200승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승리를 ‘112’에서 멈추고 말았다. 분명 오래전에 은퇴한 선수다. 하지만 여전히 은퇴하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승리 투수. 현대 팬들에게 ‘수경 언니’로 통했던 순백의 유니콘 김수경을 추억해 본다.  혜성처럼 등장한 무명의 안경 투수 1998년 인천고를 졸업한 김수경은 고졸 우선지명으로 현대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김수경에 대해서 아는 인물도 없었고, 누구도 주목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차피 당장 1군에서 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기존에 현대 투수들의 면면을 본다면 김수경이 들어갈.. 2024. 10. 13.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3) 巨人 입성과 시련, 그리고 퇴단…  2000년 시즌이 끝나고 현대는 약속대로 정민태의 해외 진출을 허락했다. 그리고 정민태에게 관심이 있는 일본 구단이 여럿 거론됐다. 이미 한국 선수들이 뛰었고, 소속되어 있는 주니치가 있었고, 현대의 자매결연 팀인 오릭스도 있었다. 언론에서는 오릭스행이 유력하다고 하기도… 그런데 정민태의 최종 도착지는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요미우리에는 이미 조성민-정민철이 있었다. 그래서 정민태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비난의 이유는 굳이 국내 선수들이 있는 팀에 가서 한국인들끼리 경쟁 구도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민태를 비난한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정민태가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당시 현대는 ‘왕자의 난’으로 인해 계열사 분리로 모기.. 2024. 7. 14.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2) 현대 왕조의 최초의 에이스 탄생 1995시즌이 끝나고 정민태는 오릭스 가을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일명 ‘아리랑볼’로 불리는 ‘슬로커브’를 장착했다. 이는 단순히 구종 장착을 넘어 힘으로만 밀어붙이던 스타일에서 완급 조절이라는 기술을 장착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해였던 1996년 정민태는 위재영과 원-투 펀치를 이루면서 현대 마운드를 책임졌다. 그리고 정민태는 박재홍과 함께 팀 창단 첫해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6시즌 30경기에 등판한 정민태는 210.1이닝을 책임지며 15승 9패 평균자책점 2.44를 기록. 프로 데뷔 첫 두 자리 승리와 함께 200이닝을 돌파했다. 이는 명실상부한 현대 ‘최초의 에이스’로 출발하는 시즌이었다.  정민태의 눈부신 활약은 가을 무대에서도.. 2024. 7. 13.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1) “현대가 없어진 날, 내 야구 인생도 끝났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마디였다. 에이스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식도, 영구결번식을 할 수 있는 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들은 한두 시즌 반짝해서 실력 이상으로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였고,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완 투수였음에도 저평가받았다. 그리고 조롱받을 때도 팬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것이 팬 없는 구단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항상 거침없는 피칭으로 승리를 안겨주는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정. 민. 태. 그는 현대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누가 뭐라고 해도 현.. 2024. 6. 14.
추억의 용병 21 - ‘유니콘스 마지막 4번 타자’ 클리프 브룸바 이상한 행동을 일삼던 프랭클린을 퇴출한 현대는 대체 선수로 ‘클리프 브룸바’와 계약금 3만, 연봉 7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리고 그가 유니콘스 역사상 ‘최고의 용병’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브룸바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거의 없던 선수였다. 2001년 텍사스와 콜로라도에서 21경기를 뛰면서 타율 0.217을 남긴 것이 전부였다. 다만 백인 선수와 궁합이 잘 맞았다는 징크스(?)를 기대할 뿐이었다(실패 사례도 있었지만 쿨바 – 퀸란 모두 백인으로 우승 용병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팀 합류 당시 아무도 그를 야구선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김재박 감독은 “야구 글러브 보다 격투기 글러브가 더 어울릴 것 같다”라고 첫인상을 평가했다. 외국인 투수 바워스는 “분명 마피아 출신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2023. 7. 16.
추억의 용병 14 - ‘추남(?)’ 코리 폴 피어슨 – 카날리 – 바워스 – 카펜터 – 필립스 2001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좌타자였다. 총 5명 가운데 2명은 대체선수. 하지만 현대는 왼손 타자를 선택해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좌타자 보유에 갈증을 느끼던 현대는 2002년 다시 한번 좌타자를 선택했다. 그가 바로 ‘코리 폴’이다. 현대는 폴과 계약금 8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폴은 메이저리그 경험은 없었다. 대신 1999-2001년까지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뛰었다. 다만 주로 2군에서 뛰었다. 당시 세이부 1군에서는 맥클레이와 카브레라가 버티고 있어서 그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폴은 2군에서 2년 연속 타격 3관왕 + MVP에 올랐다. 다만 1군에서는 2시즌 통산 106경기에 출전, 타율 0.251과 16홈.. 2023.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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