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롯데 자이언츠13 추억의 용병 05 - ‘진상’ 아지 칸세코 거포에 목말라 하던…아니 여전히 ‘호세’에 목말라 하던 롯데는 2001년 테스트 끝에 계약금 4만 달러, 연봉 16만 달러에 ‘아지 칸세코’를 영입했다. 일단 그의 이름은 당시 야구팬들에게 매우 익숙했다. 비록 훗날 약물로 얼룩지기는 했지만 40-40클럽을 달성하는 등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강타자 호세 칸세코의 쌍둥이 형이었다. 칸세코는 1983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뉴욕 양키스에 지명을 받았다. 이후 1990년 오클랜드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 데뷔해 통산 3시즌 단 24경기만을 뛰었다. 다시 말해서 아지는 동생과 전혀 다른 길을 건넜고,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냥 보통(?)의 타자였다. 그러던 2000년 그는 독립 리그에서 무려 48개의 홈런과 21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는 괴력(?)을 발휘했.. 2024. 11. 21. 추억의 용병 04 - ‘성공한 대체 용병’ 데릭 화이트 ‘대만 여포’ 우드를 퇴출한 롯데는 대체 선수로 외야수 ‘데릭 화이트’와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화이트는 1991년 드래프트 6라운드에서 몬트리올에 지명을 받고 1993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통산 3시즌 동안 76경기를 뛰며 3홈런 8타점 타율 0.181을 기록했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화이트는 우드와 달리 파이팅이 넘치는 모습으로 팀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 그뿐 아니라 기량도 훌륭했다. 화이트는 전반기 45경기를 뛰며 타율 0.326 홈런 8개 45타점으로 맹활약했다. 호세는 없었지만, 드디어 롯데에도 제대로 된 용병이 온 것이었다. 물론 롯데의 탐욕(?)으로 한 차례 위기는 있었다. 삼성이 거포 찰스 스미스를 웨이버 공시를 하자 롯데가 용병 교체를 고민했던 것이다. .. 2024. 11. 10. 전설의 리드오프 ‘안타치고 도루하는’ 전준호 만약… 그날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구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까지 현대는 1번 타자 문제로 고통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현대에는 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KBO 역사상 손꼽히는 1번 타자, 그리고 현대에 맞춤형 1번 타자였던 전준호를 추억해본다. 충격적인 전준호의 현대 입성기 1997시즌 개막 4일 전…프로야구계에는 매우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는 롯데의 1번 타자 전준호가 현대 유니폼을 입게 된다는 것이었다. 과거(1995년)에도 전준호와 김홍집(안병원)을 카드로 협상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성사될 줄 몰랐다. 당시만 해도 트레이드는 선수가 팀에 버림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구단들도 중심 선수가 낀 대형 트레이드는 보복성으로 진행.. 2024. 11. 9. 장단 19안타의 롯데, 두산 잡고 3연승 질주 둘 다 좋지는 않았다. 다만 한쪽이 월등하게(?) 좋지 않았다. 이날 경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14일 잠실에서는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12차전에서 장단 19안타를 몰아친 롯데가 12-2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며 최근 연승(3연승)을 달렸다. 롯데 선발 김진우는 5이닝 동안 피안타 3개(1피홈런) 4사구 5개 탈삼진 3개를 기록했으나 실점을 최소화(1실점)하며 일찌감치 터진 타선 덕분에 시즌 4승(무패)을 달성했다. 공격에서는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한 만큼 타자들은 고른 활약을 펼쳤다. 그 가운데 팀의 베테랑 전준우는 4안타 5타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반면 두산은 외국인 투수 발라조빅이 선발 등판했으나 4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일찌감치 무너지면서 패전(2승 2패)투수가.. 2024. 8. 15. K, K 그리고 K…전미르의 강렬했던 데뷔전 화끈하게 동점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감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개막전 2연패. 비록 144경기 중에 단 두 경기에 불과했지만 기분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안도 있었다. 완전히 넘어간 경기 혹은 회복 불능 경기가 비록 짧았지만 짜릿함을 연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8회 여섯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거인의 루키. 전미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미르는 0-5 무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이미 타선 불발에 많은 실점으로 어떤 결과를 내든 전미르와는 무관했다. 그런데 출발은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뷔전이었다. 전미르는 프로 첫 상대 타자였던 최지훈과 볼카운트 2-2에서 134km의 커브를 던졌으나 폭투가 나오면서 실점을 했다. 물론 본인 .. 2024. 3. 24. 추억의 용병 03 – ‘대만 여포’ 테드 우드 1999시즌 롯데 돌풍의 주역이었던 호세. 시즌 후 재계약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롯데는 당시 규정을 깨고 2년 45만 달러를 제시했다. 그런데도 호세는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 미국행을 선택하며 첫 번째(?) 뒤통수를 쳤다. 롯데는 돌발 변수로 해를 넘긴 2월이 돼서야 호세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었고, 그 주인공은 백인 타자 ‘테드 우드’였다. 우드는 미국 청소년 대표-국가대표 출신 선수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미국 대표로 출전해 5번 타자로 맹활약했다(참고로 당시 4번은 우리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티노 마르티네스’였다). 올림픽 당시 우드는 타율 0.474로 타격 3위, 8타점으로 이 부문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1989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샌프란스시코에 선택을 받았다. 그.. 2024. 2. 19. 추억의 용병 02 - ‘대갈장군’ 마이클 길포일 1999년 외국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호세를 선택한 롯데는 2라운드에서 좌완 투수 ‘마이클 길포일’을 선택했다. 길포일은 주로 독립리그에서 활약했고 1997년에는 대만에서 뛰기도 했다. 참고로 1998년 독립리그에서 2승 2패 30세이브로 리그 타이틀 홀더가 됐다. 하지만 트라이아웃에서는 거의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평가전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86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롯데는 차명주의 공백을 메우고 마무리 투수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를 선택한 것이다. 롯데는 길포일과 계약금 2만, 연봉 6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리고 그에게 32평 아파트를 제공했다. 이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던 것. 이에 길포일은 감동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에서는 8평짜리 단칸방과 유.. 2024. 1. 26. 이전 1 2 다음 320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