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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롯데 자이언츠

추억의 용병 02 - ‘대갈장군’ 마이클 길포일

by 특급용병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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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외국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호세를 선택한 롯데는 2라운드에서 좌완 투수 마이클 길포일을 선택했다.

 

길포일은 주로 독립리그에서 활약했고 1997년에는 대만에서 뛰기도 했다. 참고로 1998년 독립리그에서 2230세이브로 리그 타이틀 홀더가 됐다. 하지만 트라이아웃에서는 거의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평가전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86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롯데는 차명주의 공백을 메우고 마무리 투수로 활용하기 위해서 그를 선택한 것이다.

 

롯데는 길포일과 계약금 2, 연봉 6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리고 그에게 32평 아파트를 제공했다. 이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호화로운(?) 대접을 받았던 것. 이에 길포일은 감동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만에서는 8평짜리 단칸방과 유니폼만을 받았을 뿐야구 점퍼를 비롯한 장비는 전부 자비로 부담해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호화로운 대접이었던 것.

 

길포일은 고향에서 낮에는 야구하고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바텐더로 알바를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거의 초특급 대우였으니 감동할 수밖에어쨌든 구단은 길포일에게 야구만 잘하면 이 정도 대접은 결코 문제(?) 되지 않는다고 전하기도다만 문제는 야구 기량이었다.

 

연습경기 9경기에서 10.2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11피안타 볼넷 6개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가장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 나름 좋은 투구를 하다가도 제구력 난조가 발생하고 난타당하기 일쑤였다. 이러한 모습은 시범경기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시즌 때는 다르겠지이러한 기대는 기대로 끝났다. 형편없는 제구력으로 볼넷을 난발하다가 공이 가운데로 몰려 얻어맞는 것이 특기였다. 즉 제구력도 없고, 구위도 부족해서 패전 처리로도 쓸 수 없었다. 한국 무대에서 단 6경기에 등판. 31세이브 6이닝 볼넷 49실점으로 평균자책점 13.50을 남기고 5월 초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간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1999시즌 리그 1호 퇴출 용병으로 한국을 떠났기 때문이다.

 

140km 초반의 구속에 그쳤으나 나름 슬라이더는 좋았던 투수였다. 하지만 제구력이 F급으로 1군에서 뛰기에는 부적합했던 인물. 퇴출 후 그는 다시 독립리그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3년에는 40세이브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남기고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즌 한 달 만에 퇴출된 선수로 큰 기억은 없다. 다만 머리가 겁나(?) 컸던 선수로 기억이 남는다. 웬만한 모자가 맞지 않아서 캠프 당시 선수들은 그를 대갈장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 Mike Guilfoyle- 한국명 : 마이클 길포일

● 1968년 4월 29일생

● 좌완 투수

● 1990드래프트 19라운드 디트로이트 지명

● 주요 경력 : 1999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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