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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KIA 타이거즈40

추억의 용병 11 - ‘의미 없는 용병(1)’ 마티 젠슨 해태는 계속된 부진과 그것을 빌미로 돈을 아끼기(?) 위해 외야수 타바레스를 퇴출했다. 그리고 선택한 카드는 우완투수 ‘마티 젠슨’으로 연봉 7만 5천 달러, 5승 달성시 추가 옵션 5천 달러를 걸어 계약했다. 일단 젠슨의 이력은 나름 좋았다. 1994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에 뉴욕 산하 마이너 투수들 가운데 최고의 패스트볼과 커브를 가지고 있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1996년과 1997년에는 토론토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27경기 6승 7패를 남겼다. 다만 이것은 그의 과거 이력이었을 뿐이다. 젠슨은 KBO 데뷔 전에서 4이닝 4피안타 3볼넷 3탈삼진 3실점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에는 뚜렷한 활약이 없었다. 단 4경기에 등판하며 12.2이닝만 소화,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8.53을 기록.. 2023. 9. 17.
추억의 용병 10 - ‘치킨 때문에 떠난’ 루이스 안두하 2001년 해태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우완 ‘루이스 안두하’와 연봉 12만 달러, 옵션 2만 달러에 계약했다. 루이스는 1995-1998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을 경험한 인물로 150km의 강속구가 매력적인 투수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는 순간 매력(?)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투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스프링캠프에서 루이스는 40개의 라이브 피칭을 했다. 그 결과 최고 127km 평균 120km 초반의 구속을 기록했다. 캠프라고 해도…현역 투수가 이런 구속을 나타내는 것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구보다 김성한 감독은 한마디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분명 도미니카에서 직접 봤을 때, 146km까지 기록했는데 무려 20km가 사라졌다니…결국 김성한 감독과 루이스가 면담을 하게 됐다. 그럴 수도 .. 2023. 9. 14.
추억의 용병 09 – ‘사기 피해자(?)’ 헤수스 타바레즈 용병 잔혹사로 처참한 시즌을 보내고 있던 2000년. 해태는 포조의 대체 선수로 외야수 자원 ‘헤수스 타바레스’와 6만 5천 달러라는 헐값(?) 계약했다. 타바레스는 ‘스위치 히터’로 당시 외국인 거포만 선호하던 풍토에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선수였다. 그래서 김응룡 감독에게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다. 김응룡 감독은 “외야 수비는 그럭저럭 하는데…그러면 뭘 하나? 방망이가 형편없다.”라면서 “몸값이 싼 선수에게 뭘 기대하나?”라며 혹평과 함께 불만을 표출했었다. 그러나 타바레스는 1994-1998년까지 5시즌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228경기에 출장해 통산 101안타 타율 0.239를 기록했다. 당시 KBO리그 수준에 메이저리그에서 228경기를 뛴 선수가 이렇게 혹평받아야 했을지… 어쨌든 데뷔전 6번 타자로 출.. 2023. 9. 3.
추억의 용병 08 - ‘부정선수’ 키스 미첼 부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배스를 방출한 해태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키스 미첼’과 6만 5천 달러에 계약했다. 그런데 미첼은 시작도 전에 이상한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등록명은 구단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미첼의 경우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그의 이름이 결정됐다. 미첼의 풀네임은 “Keith Alexander Mitchell”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키스’, ‘케이시’, ‘케이트’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처음에는 통일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부정 선수였다는 것이었다. 미첼은 1998년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다. 당시 KBO리그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6조에는 “외국의 프리에이전트 선수 중 전.. 2023. 8. 26.
추억의 용병 07 - ‘회식에 진심(?)이었던’ 제이슨 배스 해태는 말레브와 피어슨의 대체 선수로 포조와 함께 좌투좌타의 외야수 ‘제이스 배스’를 10만 달러에 영입했다. 배스는 주로 더블A에서 뛰었던 인물로 그저 수비는 좀 불안하지만, 장타력을 갖추고 있고 191cm의 거구에도 불구하고 빠른 발을 소유한 그냥 기대치가 매우 낮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배스는 첫 15경기에서 홈런 3개 15타점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활약을 했다. 뜻하지 않은 동력을 얻은 것 같았던 해태. 그러나 배스는 4월 28일 발목 부상을 당했다. 해태는 새로운 선수 수급도 어렵고, 생각보다 좋은 활약에 그가 부상에서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퇴출… 이후 배스는 마이너리그로 돌아갔고, 더블A를 거쳐 트리플A에서 3할 타자가 됐다. 하지만 20.. 2023. 8. 20.
추억의 용병 06 - ‘무시당했던 용병(1)’ 아르키메데스 포조 부도로 휘청거리던 모기업. 그런데도 2명의 외국인 타자를 영입했던 해태는 새천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2명의 외국인 선수를 모두 퇴출했다. 그러나 또다시 보스턴의 도움(?)으로 2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이 ‘아르키메데스 포조’였다. 해태는 포조와 계약금 1만, 연봉 11만 달러에 계약했다. 포조는 1995년 시애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갔다. 이후 1997년까지 3시즌 동안 단 26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1999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뛰게 됐다. 당시 일본 주니치에서 활약하던 선동열과 이종범은 그에 대해서 “변화구를 잘 치는 괜찮은 타자”라고 조언했다. 게다가 포조는 작은 체구에 불구하고 정확한 타격과 안정된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는 그냥 대외적인 허위 사실(?).. 2023. 8. 9.
추억의 용병 05 - ‘타이거즈 최초의 태업 용병’ 에디 피어슨 2000년 해태는 직전 시즌에 현대 유니콘스에서 뛴 ‘에디 피어슨’과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는 현대 시절 덩치에 비해 파워가 떨어졌고, 수비는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선수였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서 뛰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보다 몸값이 싸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게다가 현대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자 다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도 하나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피어슨은 해태와 계약에도 불구하고 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유는 있었다. 비자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합류를 미뤄왔던 것. 화가 난 구단은 그에게 최후통첩으로 합류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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