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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왕조/왕조의 주역들

유니콘스의 분위기 메이커 ‘정똘’ 정성훈

by 특급용병 2025.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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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유니콘스 2005년 팬북

 

현대 유니폼을 입은 후 그의 헤어칼라는 검은색이 아닌 샛노란 색이었다. 당시 정서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의 정서로는 용납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넘어 까불까불한 이미지선배들에게 서슴없이 장난을 거는 그런 선수. 요즘으로 말하면 MZ세대와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자유분방함 그래도 밉지 않은 그런 캐릭터였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최근에 최강 야구에서 그의 모습은 다소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 그리고 후배들에게 때로는 따끔한 충고(?)를 던지는 그런 캐릭터. 당연히 마흔 살을 훌쩍 넘겼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 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이들은 원래 그런 인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현대 팬들에게는 너무도 낯설고 생소한 모습일 것이다.

 

최강 야구에서는 야구 천재라는 타이틀이 달려있지만, 그보다 정똘’ ‘어리버리라는 애칭이 더 익숙했던 사나이. 현대 유니콘스의 핫코너를 지켰던 정성훈이다.

 

환영받지 못했던 새 식구 그러나…

 

20031월의 어느 날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했다.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멤버 그리고 프렌차이즈 스타였던 박재홍이 트레이드됐다는 것이다. 잘못된 정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현대 홈페이지는 마비되는 일도 발생했다. 여기에 박재홍이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 팬들은 더욱 분노했다.

 

참고로 KIA 팬들이 유망주를 보냈다고 난리를 치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버렸다. 리그를 대표하던 타자와 유망주를 비교하다니이 일로 아무런 죄돈 없는 정성훈만 더 욕을 먹어야 했다. 어쨌든 박재홍은 현금 10억과 정성훈을 남기고 현대를 떠났다.

 

문제는 현대 유니폼을 입은 정성훈이었다. 현대 팬들은 그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박재홍이 떠났다는 충격이 너무 컸던 것. 그리고 시간이 좀 흘렀을까? 현대 홍보팀은 정성훈이 기가 죽어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그건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때 일부 팬들은 정성훈은 죄(?)가 없으니 응원하자고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도…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성훈이 여론을 신경 썼을까? 그냥 홍보팀의 아이디어가 아닐지…』

 

어쨌든 결코 들어갈 자리가 없었을 것 같았던 현대 팬들의 마음에도 정성훈의 자리가 조금씩 생기게 됐다. 무엇보다도 정성훈은 실력으로 모든 것을 증명했고,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정성훈은 2002KIA에서 114경기를 뛰며 타율 0.312를 기록하며 프로 입단 후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다만 플레이오프에서 5경기 동안 21타석 17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KIA 팬들에게도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하지만 현대 유니폼을 입은 정성훈은 완전히 날아다녔다. 정성훈은 그냥 유망주 정성훈이 아니었다.

 

정성훈은 4월 한 달 동안 24안타 홈런 48타점 타율 0.387로 화끈하게 신고식을 했다. 그리고 그의 불방망이는 결코 식지 않았다. 전반기에만 89안타 12홈런 42타점 타율 0.338로 그는 현대 공격의 한 축을 담당했다. 사실 2003년 현대 외국인 타자였던 프랭클린이 먹튀 짓을 했기에 정성훈이 용병 역할을 해냈다. 또한, 외국인 선수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았던 3루 문제도 해결됐다.

 

특히 6월 말을 시작으로 7월 말까지 18경기 연속안타를 기록하는 등 현대에서 첫해 정성훈은 강렬했다. 다만 8월 삼성의 외국인 투수 라이언 글린에게 손등을 맞으면서 그의 고공행진이 멈추게 됐다.

 

정성훈은 2003시즌 91경기 116안타 홈런 1351타점 타율 0.343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만약 정상적으로 시즌을 소화했다면? 물론 타격왕이 됐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규정타석은 채웠을 것이다. 어쨌든 정성훈은 장외 타격왕으로 유니콘스의 첫 시즌을 끝냈다.

 

그러나 정성훈은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했지만, 2003년 한국시리즈 정성훈은 7경기 모두를 뛰었다. 그리고 그는 KIA 시절의 처참했던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7경기 26타수 10안타 3타점 타율 0.385로 프로 데뷔 첫 우승이자 첫 한국시리즈에서 불방망이를 과시하며 팀 통산 세 번째 우승을 만끽했다. 다만 규정타석 미달로 골든 글러브는 도전도 못 했다.

 

유니콘스 3루에 말뚝 박은 정성훈

 

현대에서 첫해를 화려하게 보냈던 정성훈. 그러나 이듬해에는 첫해의 퍼포먼스가 나오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면 첫해 워낙 좋은 모습을 보여줬기에그런데 2004년에는 기대와 달리 시즌 초반 실책을 연발했고, 방망이도 힘이 떨어진 것 같았다. 어쩌면 2003년은 그의 몬스터 시즌으로 더는 기대해서 안 되는 모습이었다고 생각도 됐다.

 

그렇게 평범(?)하게 시즌을 치르던 7. 체력이 떨어진 전준호를 대신해 정성훈이 1번 타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7월 한 달간 정성훈은 29안타 홈런 3개 타율 0.414를 기록했다. 참고로 OPS는 무려 1.123을 찍었고, 29안타는 2004년 정성훈의 월간 최다 안타였다.

 

『비록 직전 시즌에 부진했지만, 한때는 ‘정성훈 괴담’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정성훈에게 홈런 맞으면 망한다는(?) 괴담이었다. 실제로 5월 5일 삼성전에서 정성훈은 동점 만루홈런을 기록했고, 현대는 대역전 승을 거뒀다. 그때 투수가 임창용이었던 것으로…어쨌든 이날 이후 삼성은 10연패에 빠졌다. 이후 수원에서 SK와 경기에서도 정성훈은 9회말 동점 홈런으로 팀을 패배에서 구한 적도 있었다.

 

반대로 2004년 신인왕이었던 오재영(개명 전, 개명 후 오주원)이 등판하는 날에는 유독 실책이 많아서 팬들을 돌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아마도 정성훈의 실책이 몇 개만 덜 나왔다면 오재영은 10승 이상도 충분히 했을 것이다.』

 

문제는 시즌 막판 무서운 괴담(?)이 돌면서 폭망했다. 연예계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억하는데병풍 사건이 터졌고, 이는 야구계로 확대되었다. 점점 수사가 확대됐고, 거기에는 정성훈도 포함되었다. 이 사건으로 경기 중에 체포되는 선수도 있었다. 정성훈은 한동안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물론 정성훈은 구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KBO에서는 잔여 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군대 문제는 매우 민감하다. 그런데 당시 군대에 안 갔다 온 사람들이 더 일선에서 난리를 쳤었다. 특히 토론회 등장하는 국회의원들…』

 

결국 정성훈은 2004시즌 118경기만 뛰었고 125안타 8홈런 59타점 타율 0.266을 남기고 시즌을 마감했다. 특히 7월에 잘 나가다가 이후의 폭망은 아마도 병역 문제가 그들 사이에는 돌고 있지 않았을지

 

정성훈은 한국시리즈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팀은 삼성과 한국시리즈 사상 초유의 9차전 승부 끝에 승리하며 해태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팀이 됐다.

 

『시즌 후 구단 납회식때 정성훈을 봤다. 당시 함께 했던 채종국, 송지만, 이숭용 등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정성훈은 귀걸이까지 하고 멋(?)을 냈지만 어두운 표정과 함께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함께 하던 이들이 대선배이지만 그래도 정성훈의 성격이라면…』

 

시즌 후 정성훈의 거취 문제는 알려진 것은 없고 의견이 여러 가지로 갈렸다. 심지어 언론에서는 공익요원으로 복무한다고 했다. 하지만 2005년 정성훈은 3루수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 라인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5년 정성훈은 새로운 선수(?)가 됐다. 126경기를 뛰는 122안타 타율 0.266으로 타율은 직전 시즌과 같았다. 다시 말해서 세부 스탯과 별개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17개의 홈런과 72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다만 2005년 현대는 가을 야구 진출에 탈락했다. 사실 정성훈이 많은 홈런-타점을 만들어낸 것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일명 홈런 스윙으로 일관하던 정성훈. 한방을 시원하게 해줄 때도 있었지만 시원하게 루상의 주자들을 다 지워버리는 일도 많았고, 힘이 잔뜩 들어간 스윙으로 일관했던 때도 많았다. 그래서 수원 구장 1루 관중석 상단에서는다만 이것이 즐거운 추억이 될 줄은

 

일단 늘 군문제의 부담을 안고 있던 정성훈은 2006WBC에 선발됐고, 병역 혜택을 받아 부담을 덜게 됐다. 그 결과 2006시즌 정성훈은 122경기에 출장해 121안타 홈런 1366타점 타율 0.291을 기록했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7시즌에도 122경기를 책임지며 129안타 홈런 1676타점 타율 0.290을 기록했다. 특히 76타점이라는 숫자는 본인 커리어 하이였다.

 

하지만 더는 현대 유니콘스의 정성훈은 볼 수 없었다. 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에서 1시즌을 뛰고 9시즌을 LG에서 뛰었다. 프로 통산 20시즌을 뛰고 그는 그라운드를 떠났다.

 

정성훈을 추억하며…

 

“Don’t Push me”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현대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정성훈의 등장 테마였다. 그의 테마가 흘러나오면 그냥 즐거웠다. 그리고 이 노래는 그냥 정성훈다웠다. 당시 프로야구의 정서는 물론 현대에는 까불(?)거리는 선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성훈은 참 재미있는 선수였다. 시간이 흘러 현재 마흔 살을 훌쩍 넘긴 최강 야구 정성훈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태평양 시절부터 그리고 현대에 와서도 3루는 늘 문제였다. 그나마 쿨바-퀸란으로 잠깐 선방(?)했었다. 그러나 정성훈의 입단은 모든 것이 해결됐다. 만약 팀이 계속 존재했다면 당연히 그는정말 아쉬웠다. 어쨌든 KIA에서 참았던(?) 끼를 대방출하며 팀의 활력소로 활약했다. 그리고 단순히 분위기 메이커만이 아닌 기량으로도 훌륭한 선수였다.

 

시간이 참으로 많이 흘렀지만 2004년의 어느 날잠실에서 팀 선배 박진만이 지나가자 ! 밥 먹었어요?”라고 하면서 장난스럽게 숟가락질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앞으로 최강 야구 말고도 그의 재능을 후배들에게 잘 전수해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옛날 현대에서 뛸 때처럼 뒤에서 늘 격하게 응원한다.

 

● 정성훈

● 백넘버 : 16

● 1980년 6월 27일생

● 송정동초-무등중-광주제일고

● 우투/우타/내야수

● 1999년 1차 지명(해태)

● 소속팀 : 1999-2002 KIA -> 2003-2007 현대 -> 2008 우리 -> 2009-2017 LG -> 2018 KIA

● 주요 경력

- 한국시리즈 우승 1회(2003)

- KBO 역대 7호 2000안타 달성(2016년 8월 28일 KT전)

- KBO 역대 8호 2000경기 출전(2016년 9월 3일 KT전)

- 역대 4호 2000경기-2000안타 동시 달성

- 우타자 최초 2000경기-2000안타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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