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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두산 베어스

추억의 용병 09 - ‘날개 꺾인 팔색조’ 마크 키퍼

by 특급용병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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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초반 두산은 공갈포쿨바를 퇴출했다. 그리고 그의 대체 선수를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선택했다. 두산은 투수 최용호를 KIA에 보내는 조건으로 외국인 투수 마크 키퍼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키퍼는 2002KIA에서 19승을 올리며 다승왕을 차지했다. 그러나 두 번째 시즌 44패 평균자책점 4.07로 이전과 달리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트레이드를 한 것이다. 그런데 두산 유니폼을 입은 키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공교롭게도 2002년 게리 레스, 2003년 마크 키퍼 모두 KIA 출신 외국인 투수였는데 두산 유니폼을 입고는 다른 사람이 됐다. 엄밀히 말하면 키퍼는 아니지만…』

 

키퍼는 이적 후 3경기 만에 승리를 거뒀는데 이는 한국 무대 첫 완투승이었다. 그리고 KIA에서 난타당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안정적인 투수가 됐다. 2000년대 초반 두산에는 훌륭한 선발 투수들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영입은 대성공이었다.

 

2003시즌 키퍼는 두산에서 14경기 4391.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했다. 물론 많은 승리를 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두산은 다음 시즌을 기대했다. 그 결과 2004년 계약금 7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에 재계약을 했다.

 

재계약에 성공한 키퍼는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2002년의 기량을 재현했다. 하지만 6월 이후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1, 2회가 지나면 대책 없는 선수가 됐다. 여기에 김경문 감독과도 사이가 좋지 못했다. 김경문 감독은 직설적으로 키퍼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 결국 키퍼는 7212이닝 4실점을 하고 2군으로 내려가면서 한국 생활의 막을 내렸다.

 

한국을 떠난 키퍼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002년 너무 많이 던진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보는 성실성과 거리가 멀었기에 KIA를 떠났고, 그의 팔색조를 빛낼 수 있는 속구가 없는 것이 그가 무너진 이유이기도

 

● Mark Andrew Kiefer - 한국명 : 마크 키퍼

● 1968년 11월 13일생

● 우완 투수

● 1987드래프트 21라운드 밀워키 지명

● 1993년 9월 20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3-1996 밀워키 -> 2002 KIA -> 2003-2004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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