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시즌을 끝으로 우즈가 두산을 떠났다. 당시 두산은 우즈를 잡지 않은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사실 우즈가 두산이 아닌 일본을 선택한 것이었다. 어쨌든 팀의 중심 타자가 떠난 이상 그 자리에 새로운 거포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두산이 선택한 인물이 ‘쿨바’였다(계약금 5만 달러, 연봉 15만 달러 계약).
쿨바라는 선수는 한국 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1998년 현대에서 뛰었던 스코트 쿨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두산이 선택한 인물은 그의 동생 ‘마이크 쿨바’였다.
쿨바는 1990년 드래프트 16라운드에서 토론토에 지명받아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줄곧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그는 2001년 밀워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 2시즌 동안 44경기에 출전, 홈런 2개 7타점 타율 0.183으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특히 그의 형과 비교하면 커리어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트리플A에서는 장타력이 좋은 유틸리티 내야수였다. 특히 2000년에는 미국 국가대표로 시드니 올림픽에도 출전했었다.
어쨌든 우즈의 대체 자원으로 쿨바를 선택한 두산은 캠프 당시 만족을 넘어 우즈보다 더 낫다고 평가를 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20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 시즌 초반부터 퇴출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퇴출이 유력해질 때쯤 해서 타격감이 올라오는 동시에 장타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쿨바는 5월 초반만 해도 홈런 8개로 리그 2위를 달렸다. 참고로 당시 1위는 9개로 이승엽이었다. 당연히 팀내에서 홈런과 타점 1위를 달렸다. 다만 삼진도 1위였다는 것이 함정.
어쨌든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던 쿨바의 한국 생활은 그리 길지 못했다. 두산은 6월 쿨바와 결별을 선택한 것이다.
쿨바는 2003시즌 44경기 32안타 10홈런 24타점 타율 0.215를 남기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분명 쿨바는 정확도가 없는 선수였지만, 시간을 두고 좀 더 기회를 줬다면 장타력으로는 팀에 많은 공헌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산은 기다리지 못했다. 물론 이것도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한국을 떠난 쿨바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2006년까지 현역에서 뛰었다. 이후 은퇴해 지도자로 변신하며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의 어느 날 비보를 전해왔다. 1루 코치로 경기하던 도중 타구에 머리를 맞아 요절했다는 소식이었다(이후, 미국은 물론 국내 리그에서도 1-3루 코치들은 의무적으로 헬멧을 착용하게 되었다). 형이었던 스코트 쿨바 때문에 친숙했고, 한국에서 성공을 기대했던 인물이었지만 안타까움만…
● Michael Robert Coolbaugh - 한국명 : 마이크 쿨바
● 1972년 06월 05일생
● 우투/우타/내야수
● 1990년 드래프트 16라운드 토론토 지명
● 주요 경력 : 2001 밀워키 -> 2002 세인트루이스 -> 2003 두산
'추억의 용병 > 두산 베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용병 09 - ‘날개 꺾인 팔색조’ 마크 키퍼 (1) | 2024.11.13 |
---|---|
추억의 용병 08 - ‘최초의 일본인 용병’ 이리키 사토시 (0) | 2024.07.27 |
추억의 용병 06 - ‘레전드 흑곰’ 타이론 우즈 (2) | 2024.07.13 |
추억의 용병 05 – ‘깽판 왕’ 빅터 콜 (0) | 2024.07.02 |
추억의 용병 04 - ‘아무도 모르는 용병(?)’ 셰인 베넷 (0) | 2024.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