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는 거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에서 2시즌 뛰었던 ‘래리 서튼’을 영입했다(계약금 7만 5천 달러, 연봉 30만 달러).
서튼은 2005시즌 리그 홈런왕에 오르는 등 이미 한국에서 2시즌을 경험하며 검증된 인물이었다. 그래서 위험 부담이 적었고, 인성적인 부분에서도 현대 시절 ‘친절한 서튼씨’라는 별명답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또한, 건강만 보장된다면 충분히 4번 타자로 역할이 가능했던 인물.
그러나 그의 최대 약점은 건강이었다. 미국 시절부터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있었고, 현대 시절이던 2005년 시즌 후 푸홀스와 합동 훈련한 결과 타격 밸런스가 완전하게 무너졌다(훗날 서튼은 푸홀스와 합동 훈련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김용달 코치는 원래의 폼으로 돌려놓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썼으나 결국 원래 모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KIA 유니폼을 입은 서튼은 시범경기 1호 만루 홈런을 기록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 그의 장타가 봉인된 것.
서튼은 시즌 초반, 홈런은 커녕 득점 찬스에서 번번이 범타에 그치며 득점권 타율 ‘제로’인 4번 타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타격도 타격이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상 수비가 불가능한 선수였다. 현대 시절에도 외야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사실상 그의 수비는 ‘hell’이었다. 생각보다 더 약한 ‘소녀 어깨’와 함께 그의 포구 모습은 때때로 서커스를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공격력과 답이 없는 수비력. 이는 KIA 코칭스태프의 혈압을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다. 게다가 KIA는 최희섭의 입단이 점점 다가오면서 그의 거취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희섭이라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그런데도 서튼의 방망이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고가 아니라 끝내 살아나지 않았다.
그리고 최희섭의 입단과 함께 KIA의 1루 or DH 자리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그 결과 서튼은 ‘정리 대상’이 됐다. 2007시즌 34경기를 뛰었던 서튼은 3홈런 10타점 타율 0.274만을 남긴 채 정들었던 한국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때늦은 후회였지만, 만약 ‘푸홀스 따라잡기’ 혹은 파워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2006시즌은 물론 한국에서 더 좋은 선수로 좀 더 뛰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홈런 20개가 충분히 가능했던 그런 타자였다. 하지만 KIA에서는 ‘친절한 서튼씨’는 완전하게 지워지고 ‘불친절한 서튼’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흘러 그는 2020년 롯데의 2군 감독이 된 그는 2021년 허문회 감독이 팀을 떠나자 시즌 중임에도 불구하고 정식 감독으로 선임됐다. 하지만 그의 지도자 커리어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23년 8월,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지도자로 성공하기를 기대했지만 너무 아쉬운…
● Larry James Sutton - 한국명 : 래리 서튼
● 1970년 5월 14일생
● 좌투/좌타/내야수
● 1992년 ML 드래프트 21라운드 캔자스시티 지명(전체 582순위)
● 1997년 8월 17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7-1999 캔자스시티 -> 2000-2001 세인트루이스 -> 2002 오클랜드 -> 2004플로리다 -> 2005-2006현대 -> 2007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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