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KIA는 부진한 리오스를 대신해 우완투수 ‘세스 그레이싱어’와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16만 달러에 계약했다. 다만 리오스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용병을 결정한 것. 물론 리오스는 두산으로 트레이드가 됐다.
새로운 외국인 투수 그레이싱어는 1996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에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참고로 그레이싱어보다 앞에서 지명받은 선수는 크리스 벤슨, 트레비스 리, 빌리 코치 등이었다. 1998년 디트로이트 소속으로 데뷔 후 미네소타, 애틀란타 등에서 뛰며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 동안 42경기 10승 16패 평균자책점 5.51을 기록했다.
그레이싱어는 KBO 입단 당시 140km 중후반의 빠른 볼과 커브,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선수로 소개됐다. 하지만 처음에 그는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입단 후 첫 6경기에서 그레이싱어는 2승 3패로 평범한 성적을 거둔 것 같았지만 무려 6.3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레이싱어는 제구력이 동반되는 날에는 한없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게 난타당하는 유형의 투수였다. 위기관리 혹은 극복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수준…반면 두산 유니폼을 입은 리오스는 완벽한 투수로 변신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오스를 보내고 그레이싱어를 선택한 KIA는 최악의 선택으로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다만 시즌을 거듭할수록 비교적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그 결과 절망적이던 출발과 달리 2005시즌 14경기 6승 6패 평균자책점 3.93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뭔가 아쉽다고 할 수 있는…그러나 이듬해 KIA는 그레이싱어와 재계약을 했다. 다만 재계약 과정에서도 갑자기 튕기던 그였지만 결국 총액 30만 달러에 KIA와 다시 하게 됐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시즌도 매우 험난한 출발이 이어졌다.
2006년 시즌 초반, 그레이싱어의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KIA 에이스로 역할을 해냈다. 다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그의 승수와 패수가 바뀌었다. 그레이싱어는 6월까지 무려 4승 9패를 기록했다. 심지어 6연패 늪에 빠진 상태로 한 시즌 최다 패전에 도전하는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그레이싱어는 투구폼을 교정했다. 종전에는 90도로 인사하듯이 웅크렸다가 다시 일어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마이크 무시나와 흡사한 투구폼으로 교정을 한 것이다. 이것이 효과를 본 것일까?
시즌 첫 15경기에서 10번의 QS를 기록했으나 5승 9패에 그쳤던 그는 7월을 시작으로 무한 질주하기 시작했다. 7월 4승, 8월 3승(1패) 등 7월 이후 무려 10승 3패로 KIA 부동의 에이스로 변신했다. 또한, 그레이싱어가 아니었다면 KIA의 가을 야구 진출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9월 말…팔꿈치 부상으로 일찌감치 시즌을 마감하며 준플레이오프를 치르는 KIA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당시 그의 준PO 등판 여부는 불투명했다. 그러나 그레이싱어는 등판을 자처하며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 선발 등판했다. 그 결과 5.1이닝 단 1실점으로 호투. 하지만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2006시즌 그레이싱어는 29경기 14승 12패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했다. QS 19회로 리그 공동 2위, 탈삼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KIA는 그레이싱어와 계약을 원했다. 하지만 그레이싱어는 일본과 KIA를 놓고 저울질했다. ‘머니 게임’으로는 KIA가 일본 팀을 이길 수 없었다. 하지만 KIA는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레이싱어는 ‘시간을 달라.’며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결국에는 일본을 선택하며 야쿠르트와 계약을 했다. KIA는 ‘시간을 달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믿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한 방 맞은 것.
어쨌든 일본으로 떠난 그는 일본 데뷔 첫 시즌 다승왕을 차지했다. 이듬해 요미우리로 이적해 다승왕에 오르는 등, 요미우리에서 4시즌을 뛴 후 지바롯데로 이적해 2시즌을 더 뛰고 2013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어쨌든 일본으로 떠난 그레이싱어는 일본에서 더 강력한 투수가 됐다. 일본 데뷔 첫 시즌 다승왕에 오른 그는 이듬해 요미우리로 이적해 다승왕을 차지했다. 요미우리에서 4시즌을 뛴 그레이싱어는 지바롯데로 이적해 2시즌을 더 뛰고 2013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그레이싱어는 오랜 기간 뛴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회색 가수’라는 한국식 이름을 얻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 한 시즌만 더 국내에서 뛰기를 기대했는데 아쉬움이 남기도…
● Seth Adam Greisinger - 한국명 : 세스 그레이싱어
● 1975년 7월 29일생
● 우완투수
● 1996드래프트 1라운드 디트로이트 지명
● 1998년 6월 3일 ML 데뷔
● 주요경력 : 1998, 2002 디트로이트 -> 2004 미네소타 -> 2005 애틀란타 -> 2005-2006 KIA -> 2007 야쿠르트 -> 2008-2011 요미우리 -> 2012 지바 롯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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