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LG는 선발 마운드 강화를 위해 우완 투수 ‘대니 해리거’를 선택했다.
해리거는 계약금 6만 달러와 옵션 5만 달러 연봉 9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 물론 대부분 발표액은 20만 달러였다는 사실…
해리거는 1998년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4경기 12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3패, ERA 6.75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그래도 그 당시 한국야구에서는…어쨌든 마이너리그에서는 7시즌 연속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몇 안 되는(?) 선발 투수 자원이었다(여기에 덧붙이면 한국에 와서 선발로 뛴 선수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도 불펜으로 뛰던 인물도 많았다).
입단 당시 해리거는 140km 초반의 구속과 슬라이더가 좋은 기교파 투수로 소개됐다. 그래서 LG의 2-3선발 정도가 적합하다는 평도…그러나 그의 위상은 캠프에서 달라졌다. 캠프 초반부터 좋은 몸 상태를 유지하며 팀의 1선발로 위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시범경기 첫 경기에서 5이닝 1실점, 두 번째 경기에서도 6이닝 무실점을 보여주며 ‘잘 뽑은 용병’을 넘어 LG의 에이스로 기대치가 상승했다.
시즌 초반 해리거는 타선의 지원을 못 받으며 많은 승수를 쌓지 못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던 그는 어느덧 리그 다승왕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2000년 6월 25일 시즌 10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당시 해리거에 대해 포심-슬라이더의 투피치 스타일이지만 제구력이 좋아서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사실 그의 주무기는 슬라이더가 아닌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비의 마구(?)’ 커터였던 것…어쨌든 현대 유니콘스의 Big 3 정민태-임선동-김수경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던 해리거. 그는 실로 오랜만에 탄생한 LG의 강력한 에이스였다.
하지만 이것은 독이 되고 말았다.
LG 코칭스태프는 후반기 도약을 위해 해리거는 3일 휴식 4일 등판을 시도했다. 한마디로 마구잡이로…그런데도 해리거는 8월 배탈로 한 차례 로테이션을 거른 것을 제외하고는 마운드를 굳건하게 지켰다. 하지만 이것은 그와 팀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됐다.
해리거는 2000시즌 31경기에 등판, 17승 10패 평균자책점 3.12를 기록하며 225이닝을 소화했다. 다승 4위,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 3위 등 현대의 다승왕 3인방과 함께 KBO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17승은 당시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이었다. 물론 2002년 키퍼가 19승을 기록하면서 자리를 내줘야 했지만…문제는 이상 징후가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가을무대에서 말이다.
2000시즌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에 등판한 해리거는 10.2이닝 동안 1패 평균자책점은 5.06이었다. 후반기 무리한 것이 후유증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시즌 후 해리거는 연봉 10만 달러, 사이닝보너스 10만 달러에 재계약을 했다.
두 번째 시즌 해리거는 강력한 다승 후보로 꼽혔다. 그런데 우리가 알던 해리거는 없었다. 2001시즌 시작 후 2경기에서 10.1이닝 동안 무려 14개의 안타를 허용하면서 9실점을 하는 등 4월을 3연패로 끝냈다. 물론 5월 첫 경기에서 8이닝 1실점으로 살아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그는 퇴출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유는 이랬다.
2001년 5월 23일 더블헤더 1차전에 선발로 등판한 해리거. 그날 그는 0.2이닝 동안 5실점(4자책)을 했다. 이에 벤치에서 강판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에 격분한 그는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 던지는 등 전에 볼 수 없던 난동을 피운 것이다. 이에 당시 김성근 감독 대행은 해리거를 2군에 보내버리며 퇴출을 고려했다. 결과적으로 퇴출은 되지 않았다. 다만 강력한 에이스 해리거가 사라졌을 뿐이다.
야구인들은 그의 부진에 대해 투구 습관 노출을 주장했다. 하지만 사실 2000시즌 해리거는 너무 많이 던졌다. 200이닝 이상. 그리고 선발 등판 날짜 조정은 그가 박살이 난 이유였고, 그의 구위가 사라진 이유였다.
2001시즌 해리거는 28경기 8승 11패 평균자책점 4.62를 남기며 한국을 떠나게 됐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2005시즌 16승, 2006시즌 18승을 거두며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해리거는 단 2시즌을 뛰었지만, 2010년대 이후 좋은 외국인 투수들이 탄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LG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투수였다. 단일 시즌만 놓고 본다면 지금까지도 최고의 투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요즘에는 세이버 시대라 클래식 스탯을 말하면 ‘야알못’이라고 평가받지만…
● Dennis Scott Harriger - 한국명 : 대니 해리거
● 1969년 7월 21일생
● 우완 투수
● 1986년 ML드래프트 18라운드 뉴욕M 지명
● 1998년 6월 16일 데뷔
● 주요 경력 : 1998 디트로이트 -> 2000-2001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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