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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삼성 라이온즈

추억의 용병 10 - ‘양치기 용병’ 발비노 갈베스

by 특급용병 2024.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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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레스를 일찌감치 퇴출한 삼성은 대체 선수로 거물급 선수를 영입했다.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너무나 친숙했던 요미우리 출신의 발비노 갈베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삼성은 갈베스와 2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발표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모 구단은 계약금 20, 연봉 40만 달러를 배팅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의 몸값이 100만 달러 이상이라는 소문도어쨌든 갈베스의 한국행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갈베스는 1981LA 다저스와 계약하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그는 1986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 그해 10경기 평균자책점 3.92와 승리 없이 1패만을 기록했다. 그리고 1986년은 갈베스가 메이저리그에서 시즌을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93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 생활하던 그는 대만에서 뛰기도 했고, 1996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 본격적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일본 데뷔 첫해, 갈베스는 16(6)으로 리그 다승왕을 차지했다. 또한 리그 최다이닝(203.2이닝)을 소화했다. 게다가 12완투, 3완봉으로 리그 최다 완투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이듬해 역시 12(12)192.2이닝을 소화하며 2년 연속 리그 최다 완투(8완투, 2완봉) 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각각 9승씩을 올렸다. 그러나 2000년 승리 없이 6패만을 기록하는 부진한 시즌을 보내고 방출당했다.

 

분명 요미우리에서 좋은 활약을 했지만, 한국 팬들의 뇌리에 갈베스라는 이름이 각인된 이유는 3가지였다. 첫째로 당시 요미우리에서 뛰던 조성민이 1군 진입이 좌절된 이유가 갈베스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주니치에서 뛰던 이종범을 헤드샷으로 쓰러뜨린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던 1998년의 그 사건이었다. 19987월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갈베스는 홈런을 허용하고 흥분한 상태에서 강판당했다. 그리고 덕아웃으로 걸어가던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심판을 향해 불같은 광속구(?)를 던졌다. 이 사건으로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는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던 것이었다.

 

갈베스는 2000년을 끝으로 요미우리에서 방출당하자 후회하게 해주겠다.”라며 큰소리쳤다. 하지만 일본 팀들은 아무도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2001년 피치버그 스프링캠프에 초청 선수로 참가했으나 40인 로스터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에 좌절한 그는 뚱보(?)의 몸이 됐고, 은퇴를 고려했다고 한다. 어쨌든 실력과 별개로 괴팍한 성질 때문에 더 유명했던 갈베스가 삼성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우리 야구계는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KBO리그 데뷔전, 승부가 거의 결정된 상황에서 빈볼성(?) 투구가 나온 것이에 한화 이광환 감독은 일본에서의 버릇이 남아 있다.”라고 비난했고, 삼성 김응룡 감독은 갈베스가 역회전 볼이 많을 뿐, 무조건 마녀 사냥식으로 그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라고 변호하기도 했다.

 

어쨌든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갈베스는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데뷔전 선발승 이후 40일 만에 7(1)을 달성하면 ERA 1.46을 기록, ‘진짜 용병임을 입증했다. 물론 요미우리 시절에 비해서 구속과 위력이 떨어졌다는 견해도 있었지만, 일명 클라스가 다른 선수임에 분명했다. 9회에도 150km 가까이 나올 정도의 강철 체력과 함께 노련함을 앞세운 그는 삼성의 에이스로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리그가 진행될수록 심판 판정에 예민함을 나타냈고, 급기야 일본 시절처럼 흥분하면서 경기를 망치는 일도 발생했다. 인성만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면아마 그랬다면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겠지만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쉬움을 넘어 삼성과 팬들이 치를 떨게 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그는 영원히 못된 놈으로 낙인이 찍혔다.

 

갈베스는 820일 모친의 병환과 어깨 부상 치료차 고향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귀국하겠다는 날짜를 무려 7번이나 번복했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다가 급기야 9.11 테러를 이유로 귀국하지 않았다. 결국 삼성 단장이 날아가 그를 설득했고, 갈베스는 시즌 후 재계약과 어깨 수술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돌아왔다.

 

일각에서는 갈베스는 옵션을 채웠기에 한국시리즈 성적에 따른 옵션 계약을 위해서 버티는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물론 구단에서는 뒷거래가 없다고 했지만 믿을 사람은 역시나 없었다. 갈베스가 한국을 떠난 시점도 10승을 달성하고 나서였다. 그렇다면 그냥 떠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실이 뭐든갈베스는 한국시리즈를 앞둔 10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몸은 엉망으로 배불뚝이 아저씨 수준이었다. 이미 양치기 소년으로 낙인이 찍혔으나 한국시리즈 첫 우승을 갈망하던 삼성과 팬들은 그가 시즌처럼 던져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갈베스는 1,4차전 선발로 등판했지만, 팀에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특히 4차전에서는 대량 실점의 빌미를 만들어 놓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결과적으로 삼성은 두산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시즌 후 그의 재계약은 무산됐다. 한국으로 떠난 갈베스는 결국 은퇴했다.

 

당시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기량은 정말 훌륭했다. 기량만큼은 진정한 용병이었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과 잘못된 인성은 KBO 역사상 손에 꼽히는 악동 혹은 최악의 용병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요미우리 시절부터 좋아했던 투수였다. 물론 기량만을 응원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가 후에 친 뒤통수참으로 아쉬운 선택이었다. 나이 먹고 조금만 철이 들었다면 그는 영원히 좋은 투수로 기억됐을 수도

 

● Balvino Jerez Galvez - 한국명 : 발비노 갈베스

● 1964년 3월 31일생

● 우완 투수

● 1986년 5월 7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86 LAD -> 1996-2000 요미우리 -> 2001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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