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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삼성 라이온즈

추억의 용병 08 - ‘실패한 한신 특급’ 벤 리베라

by 특급용병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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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삼성은 좌완 투수 베니토 바에즈를 영입하려 했으나 계약 직전 ML 캠프에 합류하면서 계약이 무산됐다. 그리고 차선책(?) 아닌 차선책으로 선택한 선수가 벤 리베라였다. 그것도 계약금 없이 연봉 20만 달러에아무리 2000년대 초반이지만 이런 선수를 20만 달러에 얻는다는 것은 당시 각 구단은 이런 구라(?)가 관행처럼

 

어쨌든 리베라는 201cm의 장신 투수로 3년간(1992-1994)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다. 특히 필라델피아 소속이었던 1993년에는 30경기에 등판해 13(9)을 올리는 등, 빅리그 3시즌 동안 2317패 평균자책점 4.52를 기록했다. 이후 1998-1999년에는 2시즌 동안 일본 한신 타이거즈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일본에서 데뷔 첫해 27세이브를 올렸고, 두 번째 시즌에는 112세이브 평균자책점 0.71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도 당시 리베라는 일본 야구에 관심 있는 팬들에게는 매우 친숙한 인물이기도 했다. 여전히 일본 야구를 국내에서 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리베라가 한신에서 뛰던 시기에는 같은 리그에 나고야의 선선동열이 활동하고 있다. 선동열은 당시 리베라에 대해서 매우 훌륭한 투수였다고 평가하기도 했었다.

 

리베라는 150km의 강력한 소유를 소유했지만,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제구력도 갖춘 투수로 평가받았다. 시범경기 첫 경기에서 150km의 강력한 볼을 선보이며 201cm의 큰 키는 마치 2층에서 볼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게다가 제구력도 좋아 진필중과 함께 강력한 구원왕으로 꼽히기도 했다.

 

시즌 개막 후 리베라는 삼성의 수호신으로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코칭스태프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범경기 150km를 기록하던 패스트볼의 구속이 140km대로 떨어졌다. 아니 무려 120km(?)의 패스트볼을 던지며 벤치를 당황하게 했다. 게다가 루상에 주자를 내보내고 스스로 위기를 만든 후 경기를 마무리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신뢰도가 계속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리베라의 이상 징후(?)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시즌 전에도 허리 통증이 있었다. 게다가 팀이 50경기를 소화하는 동안 리베라는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경기에 등판했다. 또한 평균 2이닝 정도를 소화해냈기 때문에 이미 좋지 않은 허리가 버틸 수 없었고, 혹사의 결과물로 구위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구원 부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001시즌 6월 초반 이미 리베라는 20세이브 포인트(구원승+세이브) 고지에 올라섰다. 그의 등판 간격과 횟수를 고려하면 50세이브포인트도 가능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은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를 전반기까지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리 통증에 대해 정확한 검진을 위해 올스타브레이크 기간에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 결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자 삼성은 구원 1위를 달리던 리베라와 과감하게 결별했다. 한국을 떠난 리베라는 멕시칸 리그로 돌아갔다. 또한 2004년에는 대만에서 잠시 뛰었지만 이후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기대를 했던 마무리였으나 부상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 당시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뭐 지금도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만약 1이닝 마무리를 철저하게 지켜줬다면 당시 KBO리그에서는 최고의 마무리가 됐을 것이다. 이건 외국인 투수는 물론 한국 선수들도 공통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 Bienvenido Santana Rivera - 한국명 : 벤 리베라

● 1968년 1월 11일생

● 우완 투수

● 1992년 4월 9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2-1994 필라델피아 -> 1998-1999 한신 -> 2001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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