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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두산 베어스

추억의 용병 02 - ‘범죄자(?)가 된’ 마이크 파머

by 특급용병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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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두산은 두 시즌 동안 함께 했던 내야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대신해 투수 자원을 영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자체 트라이아웃을 통해 좌완 투수 자원들을 테스트 한 결과 마이크 파머를 선택했다(참고로 테스트에 참가했던 이들 가운데 훗날 롯데와 SK에서 뛰었던 대니얼 매기도 있었다). 두산은 파머와 보너스 2만 달러, 연봉 8만 달러 등 총액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파머는 1996년 콜로라도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7경기 등판 17.7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마이너리그에서 타자로 출발을 했다는 점이다. 1990-1991년 루키와 싱글A에서 각각 홈런 10, 12개를 기록했던 인물. 본격적으로 투수로 뛴 것은 1993년부터였다.

 

당초 파머는 140km 중반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 좋은 투수로 알려졌다. 특히 98시즌 삼성에서 뛰었던 베이커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갖춘 선수라는 평가도 있었다(도대체 뭐 때문에 그랬을까?). 한편 200020승을 달성하겠다는 의미로 백넘버 20번을 요구했던 파머그러나 그는 철저히 신비주의(?)로 일관했다.

 

시범경기에서 자취를 감추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와이에서 혼자 훈련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시즌이 시작된 후에 한국에 들어왔다. 이렇게 파머가 하와이에 있는 동안 두산은 그에 대해 잘생긴 흑인 투수라고만 밝혔을 뿐이다. 어쨌든 파머는 2000412LG와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 결과 5이닝 6피안타 볼넷 43실점으로 부진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그러나 그다음 경기부터 위력(?)을 발휘했다.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리고 탈삼진을 무려 10개나 기록. 최고 구속도 145km까지 나오면서 직전 경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이후 파머는 7연승을 달리며 전반기에만 9승을 올리는 등 베어스의 숙원이었던 왼손 투수의 을 풀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시즌 9번째 승리를 거둔 621일 이후 파머는 10경기를 등판하는 동안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하고 4패만을 기록했다. 더 이상 에이스의 모습도, 연승을 구가하던 파머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파머의 부진에 대해 그가 너무 잘나가서 심판들이 스트라이크 존에 변화(?)를 줬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코 Zone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145km 이상의 구속이 130km 후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결국 초반의 기세와 다르게 파머는 반등 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2000시즌 파머는 27경기 109패 평균자책점 4.54를 남겼다. 하지만 두산은 파머와 한 번 더 함께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두 번째 시즌, 파머는 시범경기에서 컨트롤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야심 차게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파머는 일찌감치 사라졌다. 파머는 3경기에 선발 등판했지만 12패 평균자책점 9.00을 기록했다. 일시적인 부진이라면 시즌이 지나면서 회복도 기대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상으로 더 이상 던질 수 없었다. 2000시즌 후반에도 문제가 됐던 팔꿈치 이상이 다시 발생한 것. 결국 두산은 5월 중순, 파머를 퇴출했다.

 

그런데 더 기막힌 사건은 한국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파머는 한국을 떠나기 전 함께 뛰었던 트로이 닐과 고별식(?)을 가졌다. 그런데 이때 폭행 사건으로 입건이 되는 일이 발생하면서 구치소에 있는 동안 두산 관계자가 계속해서 면회를 가야 했던 일도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인물이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훗날 두산 관계자와 파머와 통화를 하면서 아시아에서 다시 야구를 하는 것은 어떠냐?”라고 말하자 엄청난 욕설을 해댔다고 한다. 아마도 폭행 사건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지

 

어쨌든 파머는 마이너 시절 토론토 강타자 카를로스 델가도3구 삼진으로 처리했다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한 20009승 이후 승수 추가에 실패하자 기분전환의 차원으로 프리배팅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연신 홈런을 만들어냈던 것. 당시 송재박 코치는 2001년 파머와 타자로 계약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농담이었지만만약 타자(좌투우타로 특이한 케이스)로 뛰었다면

 

파머는 두산을 떠난 이후 야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 근황은 전해진 바가 없다.

 

● Michael Anthony Farmer - 한국명 : 마이크 파머

● 1968년 07월 03일생

● 좌완 투수

● 1996년 05월 04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6 콜로라도 -> 2000-2001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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