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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두산 베어스

추억의 용병 01 - '베어스 최초의 용병' 에드가 캐세레스

by 특급용병 2023.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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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1월 외국인 트라이아웃을 앞두고 대부분 OB는 왼손 투수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왼손 투수는 희소성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았다(요즘은 그래도 흔하지만). 그리고 OB는 왼손 투수에 목이 마른 팀이었다. 이진, 구동우, 류택현까지 기대주들은 많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OB는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1라운드에서 베네수엘라출신으로 평가전에서 5할의 타율을 기록한 스위치히터내야수 에드가 캐세레스를 지명했다. OB는 캐세레스와 보너스 2, 연봉 75천 달러에 계약했다.

 

캐세레스는 1995년 캔자스시티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부름을 받아 55경기를 뛰며 타율 0.239 홈런 117타점을 기록하며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빅리그 경험이었다(참고로 당시 PC 야구 게임이었던 하드볼 5에 캐세레스가 나온다).

 

OB와 계약한 후 캐세레스는 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사비로 개인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을 만들었던 성실한 선수였다(외국인 선수들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개인 트레이너 고용을 하면 성실함과 직결되기도 했었다. 이미 다른 선수 편에서도 언급했거나, 일부 몇몇 선수들에게 더 언급될 수도).

 

어쨌든 베어스 역사상 1호 외국인 선수 캐세레스. 그는 시범경기에서 맹타를 휘둘렀다. 특히 첫 경기에서는 좌-우 타석을 번갈아 가면서 타격. 3안타와 홈런포도 가동하면서 빅리거(?)의 실력을 발휘했다. 또한 당시에는 화려한 수비를 자랑하며 일본으로 떠난 이종범과 같은 화려한 플레이를 대체할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시즌 개막 후, 캐세레스는 유격수가 아닌 OB2루를 지켰다. 물론 그의 수비는 훌륭했다. 1루수 우즈의 수비는 뭐그러나 캐세레스-김민호 키스톤에 3루수 김동주까지 리그에서 손꼽히는 내야 라인을 구축하는데 중심에 서 있었다. 한때(?)라는 단서가 붙지만 3번 타자로 배치된 적이 있을 정도로 나름 괜찮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주로 2번 혹은 9번 자리가 그의 자리였다.

 

캐세레스는 전반기 56경기를 뛰며 타율 0.269을 기록하며 공격에서는 아쉬운 면을 보였다. 하지만 정수근-김민호와 함께 베어스의 밥상(?)을 차려주는 루트였다. 겉으로 나타나는 타격 지표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테이블 세터라는 개념이나 용어가 이때쯤 나왔다. 다만 당시에는 9-1-2번을 테이블 세터라고 표현했던 해설가도 있었던 것.

 

어쨌든 캐세레스는 견고한 수비와 정수근-김민호와 함께 베어스의 발야구를 이끌며 1998시즌 113경기 타율 0.250 홈런 236타점 도루 18개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다만 LG와 준플레이오프 1차전 연장에서 알까기를 하면서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에 결정적인 지분을 가지기도

 

그러나 OB는 다시 한번 그와 함께하기로 했다. 다만 첫해보다 2천 달러가 깎인 93천 달러(보너스 2만 달러 포함)에 재계약했다.

 

비록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두 번째 시즌 그는 다시 한번 정수근-김민호와 함께 느림보가 아닌 빠른 곰군단을 이끌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현대와 경기에서 수비 도중 김인호와 충돌하며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당시 8주 진단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그러자 그의 퇴출설이 나오기도

 

하지만 캐세레스는 6월에 복귀했다. 그러나 20세기 탱탱볼 시대의 절정이었던 때라 거포로 둔갑(?)한 이들이 즐비했다. 특히 용병 타자들도 홈런 숫자로는 최전성기였다. 그에 비해 캐세레스의 활약은 전혀 들어오지 않은 수준. 그런데도 두산은 캐세레스와 재계약을 검토했다. 그러자 시즌 막판 달라진 모습을 발휘하기도어쨌든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웠던 1999시즌 62경기 타율 0.250 홈런 317타점 도루 2개를 기록했다. 이듬해 결과적으로 두산은 우즈 + 외인 투수를 선택하면서 캐세레스와 한국의 인연이 마감됐다.

 

한국을 떠난 캐세레스는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활동한다는 근황이 전해지기도 했고, 황재균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준비할 때, 그의 수비를 지도한 것으로 국내 팬들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에도 IMG 아카데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분명 용병 타자라는 기준에 맞지 않은 선수였다. 그럼에도 1998시즌 정수근(1), 세레스(2), 김민호(9)의 테이블 세터진(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당시 해설가들 중에는 베어스의 1-2-9번을 테이블 세터라고 부르기도)은 매우 화려했다. 또한 캐세레스의 입단으로 느림보 군단 베어스도 기동력 야구와 작전의 야구가 가능했었다. 물론 199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끝내는 알까기를 했지만 한 박자 빠르고 깔끔한 수비를 자랑했던 인물이다.

 

요즘 야구는 기록의 거품이 껴서 25-6푼이면 주전으로 뛸 수 없는 수준에 이르지만 냉정하게 그 시절만 기억하면 전혀 나쁘지 않은 공격을 하던 내야수였다. 물론 팬들의 기억 속에는 타이론 우즈가 너무도 강렬하게 자리하지만, 베어스 역사상 1호 외국인 선수는 캐세레스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 Edgar Fidel Caceres - 한국명 : 에드가 캐세레스

● 1964년 04월 04일생

● 우투/좌우타/내야수

● 1995년 06월 08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5 캔자스시티 -> 1998-1999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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