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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KIA 타이거즈

추억의 용병 16 - ‘싸움꾼’ 루디 펨버튼

by 특급용병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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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신 용병 타자 뉴선을 보낸 KIA는 대체 선수로 LG에서 뛰었던 브렌트 쿡슨을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쿡슨이 메이저리그 콜업 가능성이 크다며 시간을 끄는 바람에 재취업이 무산된 것. 그래서 선택한 인물이 185cm 83kg의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루디 펨버튼이었다.

 

도미니카 출신의 펨버튼은 1995년 디트로이트 소속으로 빅리그에서 12경기를 뛰며 9안타 3타점 타율 0.300을 기록했다. 이듬해 보스턴으로 이적해 13경기 41타수 21안타 1홈런 10타점 타율 0.512를 기록. 출루율 0.556 장타율 0.780 OPS는 무려 1.336이었다. 물론 단 13경기밖에 뛰지 않았지만1997년에는 직전 시즌에 비해 두 배나 많은 27경기를 뛰었지만 2홈런 타율 0.238에 그치며 방출당했다.

 

보스턴에서 방출된 후 펨버튼은 아시아로 무대를 옮겼다.

 

일본 세이브 라이온스에 입단한 그는 데뷔 첫해 고작 25경기에 출전, 타율 0.175를 남긴데 이어 1998년에는 38경기 5홈런 15타점 타율 0.275를 기록하고 방출됐다.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간 펨버튼은 2002년 한국에 오기 전까지 57경기 타율 0.381 홈런1453타점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두산의 타이론 우즈와 친구 사이로 알려지면서 우즈와 같은 활약을 기대하기도 했다(그런데 친구 사이라고 그와 같아야 한다는 것은우리나라는 사소한 것도 잘 연결하는 재주가 있었다).

 

어쨌든 펨버튼의 KBO 데뷔 전은 매우 급박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으로 날아가 하루 만에 비자를 취득 후 새벽에 한국에 도착해 68일 대구에서 펼쳐진 삼성전 4번 타자로 출전했다. 그런데 펨버튼은 좀처럼 실력 발휘하지 못하다가 데뷔 13타석 만에 첫 안타를 신고했다. 다만 그것은 홈런이었다. 또한, 615일 현대전에서는 역대 5번째로 1이닝 2홈런의 진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펨버튼의 방망이에 불이 붙었다. 처음 6경기에서 4홈런 11타점으로 리그에서 가장 허약했던 KIA 4번 자리를 단숨에 업그레이드시켰다.

 

펨버튼은 초반 부진이 벗어나면서 장타력은 물론 변화구 대처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경기 도중 자주 구토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코칭스텝은 배려 차원에서 휴식을 권유했지만, 펨버튼은 이를 거부하고 출전을 강행하는 근성을 보여주기도 했다(당시에는 근성이라고 평가했지만 어쩌면 옵션 때문에 그럴 수도).

 

그런데 그에 대한 집중 견제가 시작되면서 몸에 맞는 볼이 급증하게 됐다. 결국 외국인 선수들의 특성이 조급증이 발생하면서 좋았던 것이 옛일이 되었다.

 

침착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기록적으로는 뉴선보다 나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사실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성적을 남겼다. 시즌이 끝날 무렵 태도가 바뀌며(?) 나름 준수한 공격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미 코칭스텝 마음에는 완전하게 지워진 인물이었다. 펨버튼은 75경기 69안타 11홈런 48타점 타율 0.255를 남긴 채 시즌을 마감했고, 결국 재계약으로는 이어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펨버튼의 플레이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은 삼성과 경기에서 임창용과 몸싸움을 벌였던 것이었다. 임창용은 그가 달려오자 1루 쪽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당시 경기를 보기는 했지만, 서정환 감독을 메다꽂은 장면은 못 봤으나어쨌든 임창용이 잡혔으면 뭐 끝장났을 수도

 

한국을 떠난 펨버튼은 마이너리그에서 뛰다 2006년 대만리그 도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 Rudy Hector Perez Pemberton - 한국명 : 루디 펨버튼

● 1969년 12월 17일생

● 우투/우타/외야수

● 1995년 4월 26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5디트로이트 -> 1996-1997보스턴 -> 1997-1998 세이브 -> 2002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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