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용병 농사가 대흉작으로 암흑기를 보냈던 해태(물론 그게 100% 이유는 아니지만…). 2001시즌에는 재계약한 타바레스와 함께 새로운 외국인 타자로 ‘루이스 산토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비록 단 한 시즌이었지만 산토스는 ‘검은 호랑이’로 큰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산토스는 1984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캔자스시티에 지명을 받았다. 당시 2라운드에는 훗날 메이저리그의 레전드들이 있었다. 산토스 보다 앞선 순위에 ‘그렉 매덕스’가 있었다. 그런데 뒷순위에 ‘탐 글래빈’과 ‘알 라이터’ 등이 있었다. 물론 지명 순위가 전부는 아니지만…어쨌든 그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인물이 산토스였다.
산토스는 1988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단 11경기를 뛰며 타율 0.091에 그쳤다. 1989년에는 28경기를 뛰었지만 홈런 없이 타율 0.253을 기록했다. 이후 1991년에 디트로이트 소속으로 16경기를 뛰었지만 이는 그의 마지막 빅리그 무대였다.
빅리거로 성공하지 못한 산토스는 대만으로 무대를 옮겨 5시즌을 뛰었고, 일본 요미우리에서도 1시즌을 뛰었다.
어쨌든 다양한 경험이 있던 산토스는 입단 당시 무려 35살의 고령(?)이었다. 그리고 해태는 그를 3루수겸 4번 타자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다만 모든 것이 무리였다.
캠프에서 김성한 감독은 그의 스윙 궤적 자체가 홈런 타자와 거리가 멀다고 판단했다. 무려 198cm의 거인 타자. 그런데 장타력이 떨어졌다. 결국 그는 ‘198cm의 교타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도 얻었다. 게다가 3루 수비는 ‘헬’ 수준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순발력이 떨어졌다. 무엇보다 기본 수비 능력 자체가 워낙 떨어져서 그의 포지션은 1루밖에 답이 없었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출발.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연타석 3점포를 가동하며 시동을 건 산토스. 해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시즌이 시작되자 모든 우려는 환호로 바뀌었다.
정규시즌 산토스의 방망이는 불방망이였다. 그는 6월까지 4할에 육박하는 고타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홈런도 심심치 않게 터졌다. 도루를 제외하면 타격 전 부문에서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만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자 그의 방망이는 더위를 먹기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 37살, 당연히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급기야 타율이 2할대로 떨어지면서 용맹스럽던 ‘검은 호랑이’가 사라진 대신에 ‘퇴출 대상’이 됐다.
해태는 산토스의 홈런이 적다는 이유로 퇴출하려고 했다. 아니 사실상 확정이었다. 그런데 대체 선수로 선택된 인물이 ‘방광염’으로 한국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면서 그의 퇴출이 없던 일이 됐다. 참고로 당시 대체 선수는 이듬해 입단했던 투수 ‘다니엘 리오스’였다. 어쨌든 홈런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퇴출하겠다는 발상은 그냥 미쳤다는 생각밖에…
퇴출이 철회됐다. 그러자 산토스의 방망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3할대로 올라서면서 다시 ‘검은 호랑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산토스는 2001시즌 130경기를 뛰며 타율 0.310 홈런 26개 107타점을 기록. 타이거즈의 4번 타자로 맹활약했다. 특히 당시 표현으로 밀고, 당기고 자유자재로 타격을 하는 기술을 갖춘 타자였다.
산토스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 연장을 강력하게 원했다. 커리어 자체는 비교 불가이지만 당시 리그에서 롯데의 호세에게도 밀리지 기량을 갖췄다고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15만 달러 이상 보장된 리그는 한국밖에 없었다.
하지만 산토스의 한국 생활은 단 한 시즌으로 끝났다.
결과론이지만 KIA가 2002시즌 선택했던 뉴선(퇴출)과 팸버튼(대체)이 완전 실패작으로 끝난 것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산토스와 재계약을 했어야 했다. 물론 야구에서 만약이라는 것은 없지만 말이다.
산토스는 한국에서 단 한시즌 밖에 뛰지 않았다. 그러나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산토끼’라는 애칭도 없었고, 동요 산토끼가 그의 응원가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산토스는 2003년까지 멕시칸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산토스는 기량은 물론 인성도 훌륭했다. 훗날 김성한 감독이 용병을 영입하기 위해 도미니카에 방문했다. 이때 산토스는 시즌 도중 퇴출 위협(?)을 받는 등 수모(?)를 겪었음에도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해 성대하게 대접하기도 했다.
2010년대를 지나고 타이거즈에 훌륭한 외국인 타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산토스가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타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해태의 마지막 용병 타자로 많이 기억에 남는다. 체력만 조금 더 뒷받침됐다면 2001시즌 ‘검은 갈매기’ 열풍 못지않게 ‘검은 호랑이’ 열풍을 일으켰을 수도…
아무튼 타이거즈 역사에서 좋은 기억만 남긴 몇 안 되는 외국인 선수가 아닐까 한다.
● Luis Manuel Martinez de los Santos - 한국명 : 루이스 산토스
● 1966년 12월 29일생
● 우투우타/내야수
● 1984드래프트 2라운드 KC 지명
● 1988년 9월 7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88-1989 캔자스시타 -> 1991 디트로이트 -> 1997 요미우리 -> 2001 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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