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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KIA 타이거즈

추억의 용병 05 - ‘타이거즈 최초의 태업 용병’ 에디 피어슨

by 특급용병 2023.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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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해태는 직전 시즌에 현대 유니콘스에서 뛴 에디 피어슨과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는 현대 시절 덩치에 비해 파워가 떨어졌고, 수비는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선수였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서 뛰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보다 몸값이 싸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게다가 현대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자 다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도 하나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피어슨은 해태와 계약에도 불구하고 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유는 있었다. 비자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합류를 미뤄왔던 것. 화가 난 구단은 그에게 최후통첩으로 합류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강력한 대응을 했다. 결국 피어슨은 1군 캠프가 아닌 국내 2군에 합류했다.

 

그러나 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늦은 합류에 대한 대가로 구단은 벌금 5천 달러를 부과했다. 이 일로 피어슨은 코칭스텝은 물론 구단과 마찰을 일으켰다. 게다가 해태의 대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자주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시즌 개막을 앞두고 허리와 허벅지 부상을 호소했다. 결국 해태 유니폼을 입고,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퇴출당했다.

 

피어슨의 태업 아닌 태업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당시 피어슨이 마이너와 계약을 했기에 해태에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피어슨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한국은 그에게 필요 이상으로 대우를 잘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민방위 훈련때문이라는 설도 있었다. 훈련 도중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자 그는 전쟁 상황으로 인지, 공포심을 느꼈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 선수들은 당연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어슨은 현대에서 1년을 보냈기 때문에 이 같은 설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그냥 피어슨은 상대적으로 현대와 비교했을 때, 매우 열악한 해태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렇게 피어슨의 한국과 인연은 끝났다.

 

한국을 떠난 피어슨은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이후 2006년까지 현역으로 뛰었으나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 Eddie Lavorn Pearson - 한국명 : 에디 피어슨

● 1974년 1월 31일생

● 우투/좌타/내야수

● 1992년 ML 드래프트 1라운드 시카고 화이트삭스 지명(전체24순위)

● 주요 경력 : 1999 현대 -> 2000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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