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이 자유계약으로 바뀌었다. 가난한 살림으로 구단을 운영하던 해태는 자매 구단인 보스턴과 외국인 선수에 관해 독점 수급을 하겠다고 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보스턴에서 처음 공급해 준 선수가 바로 ‘호세 말레브’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약(?) 협약(?)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보스턴이 자매 구단이라면 당연히 좋은 선수를 값싸게 공급해야 줘야 했다. 아니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이 해태에 제공한 선수는 모두 먹튀 혹은 선수 같지 않은(?) 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해태는 선수를 실제로 보지 못하고, 비디오만 보고 결정해야 했던 것. 말레브 역시 비디오만 보고 1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말레브는 1996-1997년 보스턴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 경험을 했었다. 또한 1998년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뛰었다. 경험은 뭐…게다가 동료들과 친화력이 매우 뛰어날 정도로 인성은 좋은 선수였다.
문제는 기량이었다.
당시 해태 코칭스텝은 그를 ‘용병’으로 보지 않을 정도로 기량이 바닥 수준이었다. 공격에서 파워는 물론 배트 스피드가 떨어져 타구를 멀리 보내지 못했다. 또한 약한 어깨로 외야 수비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선수였다. 결국 말레브는 한국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 전에 퇴출당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면 야구 빼고 정말 괜찮았던 인물이었다. 당시 해태 관계자들은 “용병에게 인성이란 필요 없다. 일단 야구가 우선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먹튀’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순식간에 한국을 떠난 말레브는 2000년 독립리그에서 127경기를 뛰며 타율 0.310 홈런 25개를 기록했다. 2001년에는 3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이탈리아 리그에서 잠시 뛰기도 했지만, 이후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그가 독립리그에서 보여준 것이 진짜 기량이라면 당시 한국 수준을 생각했을 때, 반전을 보여줬을지도…어쨌든 말레브는 해태의 없는 살림을 축낸 인물이었다.
한 가지 그가 한국에 남긴 업적(?)은 입국 당시 신발에 실탄을 숨겨와서 적발된 것. 도대체 총알을 어떤 용도로 가지고 온 것일까?
호세 말레브는 새천년 KBO리그 1호 퇴출 용병으로 한 획(?)을 그었고, 해태의 진정한 용병 타자 잔혹사의 출발점이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 Jose Francisco Malave - 호세 말라베(등록명 : 호세 말레브)
● 1971년 5월 31일생
● 우투우타/외야수
● 1996년 5월 23일 ML데뷔
● 주요경력 : 1996-97 보스턴 -> 2000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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