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외국인 선발 드래프트 방식은 최근 3시즌 성적을 합산한 역순으로 ‘ㄹ’자 방식으로 진행됐다. LG와 두산이 전년도 선수와 재계약을 하면서 지명권을 상실. 해태는 전체 6번과 7번째 지명권을 연속으로 행사하게 됐다. 그 결과 해태는 1라운드에서 브릭스를 지명한데 이어 곧바로 2라운드에서 ‘트레이시 샌더스’를 지명했다.
(이런 드래프트 방식으로 현대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현대 김재박 감독은 1997년 스프링캠프 때, 플로리다에서 훈련하던 샌더스를 눈여겨봤다. 이후 그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입을 계획했다. 그러나 해태가 앞에서 지명을 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거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현대가 샌더스를 영입했다면? 아마도 1999시즌 판도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해태와 7만 5천 달러에 계약한 샌더스는 1990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58라운드에서 클리브랜드에 지명받았다. 그리고 그는 주로 더블A에서 활약했던 선수였다.
185cm 105kg의 거구였던 샌더스는 스프링캠프에서 팀에 손해만(?) 끼치는 인물이었다. 타격 훈련 시 배팅 볼을 힘으로 쳐내면서 배트를 부러뜨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프리 배팅의 절반을 장외로 보내버렸다. 문제는 해태의 캠프가 차려진 야구장의 밖은 강가였다. 당연히 장외로 타구가 날아가면 강물에 공이 빠졌다. 그리고 물 먹은 공은 다시 쓸 수 없었다. 당연히 현장에서는 좋아해야 할 일…
하지만 해태는 IMF 이후 모기업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었기에 금전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고로 샌더스가 부러뜨린 방망이는 5자루였고, 강물에 팬서비스(?)한 공은 무려 60개였다.
샌더스는 캠프 치른 연습경기(7경기)에서 23타수 6안타를 기록했다. 그런데 6안타 중 4안타가 홈런이었다. 공갈포의 냄새를 풍기던 그는 시범경기에서도 공갈포 기질을 재확인시켜줬다.
시즌 개막 후 4-5월에는 이승엽과 우즈를 위협하는 ‘새로운 거포’로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기인한 스탯(?)’이었다.
샌더스는 1999시즌 125경기 타율 0.247로 매우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홈런 10개 정도 치던 타자도 20-30개를 우습게 치는 절정의 타고투저를 자랑했던 시즌임을 감안하면 퇴출당해야 할 수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무려 40개의 홈런을 기록하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기록한 타자가 됐다.
그런데 매우 충격적인 기록이 있다. 무려 133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다. 이쯤 되면 선구안이 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은 105개의 볼넷을 얻어냈다. 샌더스를 한마디로 평가하면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모 아니면 도 아니면 걸’. 다시 말하면 샌더스는 타격을 ‘삼분할’한 매우 기이한 타자였다. 또한, 1999시즌 기록한 101개의 안타 중 무려 54개를 장타로 만든 ‘기이한’ 혹은 ‘괴상한’선수였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해태는 시즌 초반만 해도 샌더스와 재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시즌 막판에 가서는 삼진이 많고 타율이 낮다는 이유로 생각을 달리하더니 결국 재계약을 포기했다.
샌더스는 시즌 종료 후 해태가 자신에게 재계약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KBO에 이의신청과 개인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움직임도 보였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런 내용을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해태가 시즌 시작 전부터 외국인 선수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샌더스를 재영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샌더스는 피치버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한 후 마이너리그에서 뛰기도 했지만 이후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 한 시즌밖에 뛰지 못했지만, 그는 동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먼저 한국 문화와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팀에서는 ‘코미디언’으로 통할 정도로 재미있는 인물이었다. 경기 후에는 분석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파이기도…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와 함께 입단했던 브릭스에 비해 연봉을 2천 5백 달러 적게 받았다. 이에 샌더스는 구단에 항의했다. 그런데 구단의 이유가 참으로 걸작이었다. 역시나 추석 선물을 과자 종합 선물 세트로 주는 팀 다웠다. 구단 왈 “브릭스는 1라운드, 너는 2라운드 지명이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설명했던 것. 그런데 샌더스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요즘 표현으로(?) “알겠다”라며 쿨(?)하게 받아들였고, 구단 측은 매우 흡족(?)했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 샌더스는 공갈포로 통했지만, 샌더스와 같은 독특한 선수가 있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결과론이지만 왜 그를 버렸을까? 요즘처럼 세이버 스탯을 보지 않아도 훌륭한 선수였는데…2할 5푼도 못 치면서 출루율 4할을 넘기는 타자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홈런도 40개를 칠 수 있는데…
● Tracy Jerome Sanders - 한국명 : 트레이시 샌더스
● 1969년 7월 26일생
● 우투좌타/내야수
● 1990드래프트 58라운드 클리브랜드 지명
● 주요 경력 : 1999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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