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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KIA 타이거즈

추억의 용병 02 - '강철 어깨' 스토니 브릭스

by 특급용병 2023.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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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마음에도 없었던 해태의 용병 선발. 결국 숀 헤어를 영입해 대참사(?)를 경험했다. 그러자 없는 살림에도 1999년에는 2명의 선수를 모두 선발하고자 트라이아웃에 나섰다. 그 결과 외국인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선택한 우타자 스토니 브릭스연봉 77500달러에 계약을 했다.

 

브릭스는 1991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8라운드에서 토론토에 지명을 받았지만 단 한 경기도 메이저리그에서 뛰지 못했다. 참고로 제이슨 슈미트, 브래드 래드키, 마이크 매써니, 데릭 로 등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들이 같은 8라운드에서 지명을 받았다. 심지어 2004년 삼성에 뛰었던 케빈 호지스도 같은 라운드에 지명을

 

어쨌든 브릭스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주로 더블A에서 외야수로 뛰었다.

 

브릭스는 트라이아웃 평가전에서 12타수 7안타 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이에 김응룡 감독은 빠른 스윙과 빠른 발을 인정하면서 일찌감치 해태의 1번 타자로 낙점했던 것. 문제는 그를 3루수로 활용하기 위해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그 결과 송구 불안을 나타냈고, 방망이까지 처참한 수준에 이르렀다(스프링캠프 평가전 22타수 2안타). 뿐만 아니라 시범경기에서도 부진은 계속 됐다.

 

 

브릭스는 트라이아웃 평가전에서 12타수 7안타 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 했다. 이에 김응룡 감독은 빠른 스윙과 주력에 대해 인정을 받으며 해태의 1번 타자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았다. 스프링캠프에서 김응룡 감독은 브릭스를 3루수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송구 불안이라는 약점과 함께 타격 부진까지 이어졌다. 평가전에서 무려 22타수 2안타라는 참혹한 성적을 남겼고, 시범경기에서도 그의 부진은 계속 이어졌다. 홈런만 2개를 기록했을 뿐

 

이쯤 되자 1998시즌의 숀 헤어의 악몽이 재림한 것 같았다. 게다가 브릭스의 불성실한 태도는 김응룡 감독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지시 불이행, 고의적인 훈련 지각 등 그 당시 타이거즈 문화에서는 변종(?) 호랑이와 같은 존재였다.

 

결국 열받은 김응룡 감독은 시즌 시작 후 2군으로 그를 보냈다. 그리고 아예 퇴출의 카드를 뽑아 들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다시 복귀한 브릭스는 이미 복귀 무대에서 3안타와 함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한국에서 살아남게 됐다.

 

브릭스는 1999시즌 115경기 타율 0.283 홈런 2374타점을 기록하며 샌더스-홍현우-양준혁과 함께 막강한 타이거즈 타선을 구축했다(팀 성적과 별개로아마도 90년대 중반 이후 이보다 더 강력한 해태 타선은 없었던 것 같았다). 브릭스는 공격도 공격이지만 그의 강한 어깨가 최대 장점이었다. 2루에 주자가 있어도 웬만해서는 홈으로 들어올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강력한 어깨를 자랑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주자들은 한 베이스 가는 것에 만족하거나 홈에 도전하는 안정과 모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비록 출발은 계륵이었지만 그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샌더스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해태는 그와 재계약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해태와 인연은 없었다. 브릭스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더블A와 독립리그에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4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2000년 해태 용병들의 행보를 본다면 차라리 계약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했다.

 

● William Percell Briggs - 한국명 : 스토니 브릭스

● 1971년 12월 26일생

● 우투우타/외야수

● 1991드래프트 8라운드 토론토 지명

● 주요 경력 : 1999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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