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로 인해 모기업이 위기에 처하자 해태는 선수를 팔아 구단을 운영했다. 그런 그들이 1997년 겨울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해 트라이아웃 현장에 구단 관계자를 파견했다. 다만 선수 선발할 의사가 전혀 없었고, 형식상 참가였을 뿐이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계약 의사도 없으면서 지명권을 행사한 것이다.
해태는 계획대로(?) 1라운드에 숀 헤어, 2라운드 좌완 투수 윌리엄 저비를 지명했다. 다만 그들과 “금액 차이가 난다.”라는 이유로 계약을 포기한 것으로 발표했다. 결국 해태는 1998시즌 쌍방울과 함께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시작한 유이한(?) 팀이었다.
그런데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구단들이 재미(?)를 보자 김응룡 감독은 4월 말, 구단에 선수 보강을 요청했다. 그 결과 1라운드 지명 선수였던 숀 헤어와 5월에 계약금 2만, 연봉 6만 달러 등 총액 8만 달러에 계약에 성공했다. 참고로 숀 헤어의 계약 사실은 정확하지 않다. 당시 10만 달러로 발표한 언론도 있었고…어쨌든 해태는 없는 살림에서 거액(?)을 투자했다.
어쨌든 해태도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됐고, 특히 타이거즈 역사상 1호 외국인 선수가 되는 영광(?)을 차지하게 됐다.
당시 김성한 타격 코치는 숀 헤어에 대해 “체격과 달리 장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정확성이 있고, 수비와 주루 능력도 좋아 팀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숀 헤어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해태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됐다. 그리고 5월 18일 숀 헤어는 한국 무대 데뷔전에서(쌍방울)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화려한 신고식을 하면서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해태도 용병 호랑이를 장착하며 도약을 꿈꾸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단식에서 밝혔던 3할과 30홈런은커녕 단 1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또한 연일 빈타에 허덕이는 계륵으로 전락했다. 구단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손해여’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을 뿐이다.
결국 숀 헤어는 한국에서 29경기를 뛰며 타율 0.206과 3타점(홈런은 없었다.)만을 기록하고 시즌 후 결별했다. 당시 해태는 그에 대한 미움(?)으로 결별 후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
다만 한국 야구계에서는 “3할, 30홈런” 설로 인해 지금까지 내려오는 전설의 ‘구라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랜 기간 ‘전설의 구라 왕’으로 그는 한국 야구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여전히 그를 ‘구라 왕’으로 생각하는 팬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수년 전에 밝혀지기도 했다. 특히 필자의 기억으로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이 ‘구라(?)’를 쳤지, 숀 헤어는 정작 그런 사실이 없었던 것을 분명 기억이 난다.
첫째, 장외 홈런…
광주에서 입단식이 끝나고 야구장을 둘러보는 과정이었다. 당시 광주 무등 구장은 이중 펜스가 있었다. 따라서 그 부분을 확인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비 오는 날 야구장을 구경(?)하면서 국내 구장의 열악한 환경을 확인한 것이다. 또한, 미국 야구장보다 작은 구장이었기에 구장이 작다는 표현은 했다. 하지만 장외로 넘겨야 홈런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이중 펜스를 가리키며, “펜스만 넘겨도 되는지?” 아니면 “철망을 넘겨야만 홈런인지?”를 물어본 것이다.
둘째, “3할을 원하는가? 30홈런을 원하는가?”
역시 명백한 사실무근이었다. 숀 헤어는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2루타를 많이 쳤는데 한국 투수들을 파악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3할과 20-30홈런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밝혔던 것이다. 이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처럼 자신의 목표 수치를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에서는 두 가지 내용을 왜곡해서 인용하며 해태 관계자의 인터뷰를 곁들여 보도했다. 그리고 숀 헤어는 한국 야구에서 조롱의 대상으로 20년 가까이 고통(?)을 받게 됐다.
애초에 모든 언론에서 왜곡된 보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진실보다 왜곡된 진실(?)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에 거짓을 사실로 믿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숀 헤어는 악동 혹은 사기꾼(?) 수준의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졸지에 언론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실-거짓 관계를 넘어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레전드(?) 외국인 선수로 기억하고 싶다. 아마도 1998년 야구를 본 팬들이라면 영원히 숀 헤어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을 떠난 후, 그는 마이너리그 더블A 타격 코치로 1년간 활약하다가 2000년 금융회사에 취직 후, 부회장까지 하다가 그만두고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의 정확한 근황은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p.s 숀 헤어에게는 미안하지만 ‘구라 왕’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이는 그가 즐거움과 함께 여전히 강한 기억을 남겨준 선수라는 것을 되새기고자 한 것이다.
● Shawn Robert Hare - 한국명 : 숀 헤어
● 1967년 3월 26일생
● 좌투좌타/외야수
● 1991년 9월 6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1-1992 디트로이트 -> 1994 뉴욕M -> 1995 텍사스 -> 1998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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