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는 날이었다.
먼저 현대캐피탈이 시즌 첫 1위에 등극한 날이다. 물론 이 순위가 시즌 끝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다음 경기에서 대한항공이 승리하면 순위가 바뀐다. 다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1강 체제가 시즌 막판에 깨지면서 흥미로운 요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배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반갑다.
그리고 소속 팀과 별개로 V리그에 역사상 이루어진 날이었다.
현대캐피탈 플레잉코치 여오현 리베로가 V리그 600번째 경기에 나선 날이다. 이는 V리그 최초의 기록이라는 사실이다. 이 밖에도 여오현은 수비 성공 1만 개 돌파는 이미 오래전에 달성 했고, 수비 전부문에서 1위를 달리는 살아있는 레전드다. 아마도 수비 기록은 누군가 넘보지 못할 기록이 될 수도 있고, 넘어서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필자는 600경기 돌파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산술적으로 600경기라면 20년 동안 30경기씩 출장해야 달성할 수 있다. 참고로 여오현은 프로 19시즌 만에(?) 달성했다. 이는 매 시즌 모든 경기를 뛰었다는 것이다. 정말 대기록이다. 그런데 더 대단한 것은 단순히 현역 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많은 경기를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기량이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는 웬만한 팀의 젊은 리베로보다 더 낫다. 물론 전성기 여오현의 미친 수비 실력을 생각하면 기량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오현을 향해 누군가는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 한다.”라고 할 수도 있을 나이가 됐다. V리그 출범 전부터…슈퍼리그를 경험한 인물 아닌가? 하지만 여오현의 이런 모습은 분명 베테랑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 혹은 잘못된 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종목을 가리지 않고 툭하면 ‘리빌딩’을 외친다. 그리고 80-90년대도 아니고 “후배의 길을 터줘야 한다.”라는 표현도 여전히 고수한다. 프로에서 길을 터주고 자시고 할 것이 있는가? 선후배는 존재하고 우리나라 문화는 좀더 각별(?)하지만 프로에서 양보가 어디 있나? 선/후배를 떠나 공정하게 경쟁해서 기량이 떨어지면 물러나는 것이 프로고, 그 전에 감독은 그 선수를 기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베테랑 선수들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이들도 있다.
어쨌든 잘못된 리빌딩(?) 풍토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여오현이 후배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을 선보이며 이런 대기록을 달성한 것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호와 함께 올스타전에서 공격수(?)로 뛰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40대 중반을 넘어 이제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할 나이가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코트를 누비는 여오현 리베로.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은퇴가 아닌 본인 스스로가 결정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왕 600경기도 달성한 것 650경기도 도전해봤으면 한다.
한때는 정말 꼴 보기 싫어질(?) 정도로 얄미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설명할 수 없는 훌륭한 플레이를 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다치지 않고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그 순간까지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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