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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현대 유니콘스

추억의 용병 05 - '계륵' 에디 피어슨

by 특급용병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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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우승 주역이었던 스코트 쿨바와 재계약 실패로 새로운 외인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99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왼손 타자 에디 피어슨을 선택했다. 현대는 전년도 드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예상 밖의 지명을 한 것. 현대는 피어슨과 계약금 없이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사실 현대는 1라운드에서 피어슨이 아닌 트레이시 샌더스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해태가 샌더스를 선택하면서 차선책으로 피어슨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에 샌더스가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면 야구사는 달라졌을지도

 

어쨌든 계약 당시 25세였던 피어슨. 그는 주로 더블 A에서 뛰었고, 이제 막 트리플 A에 올라온 선수였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촉망받는 유망주였다는 사실이다.

 

피어슨은 1992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4순위)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 지명을 받았다. 참고로 당시 드래프트에서 피어슨보다 앞서 선택받은 선수들 가운데는 한국 야구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들이 많았다. 필 네빈, 제프리 해몬즈는 물론 양키스의 캡틴 데릭 지터’, 프레스톤 윌슨, 마이클 터커, 제이슨 켄달 등이 있었다. 한때 Park 사장님(?)LA 다저스에서 배터리를 이뤘던 찰스 존슨도 있었다.

 

한편 피어슨 이후 선택받은 인물 중에는 무려(?) 조니 데이먼, 제이슨 지암비, 토드 헬트도 있었다. 따라서 피어슨도 상당한 유망주였다는 사실

 

그러나 피어슨은 위에 언급된 이들과 달리 한국에 오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빅리그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그는 빅리그 무대를 밟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어쨌든

 

188cm 100kg을 훌쩍 넘는 그의 외모는 40-50홈런도 우습게 가능할 것 같았다. 특히 스프링캠프에서는 괴력의 장타를 과시했다. 한 예로 괴물(?) 같은 비거리로 인해 경기장 밖에 주차된 차가 파손되는 일도 벌어졌다. 구단은 수리비를 지불하면서도 팀의 숙원인 좌타 거포의 갈증을 풀어줄 것을 한껏 기대했다. 시범경기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던 피어슨.

 

하지만 문제는 정규 시즌이었다.

 

1999년은 타고투저의 절정에 이르렀던 시즌이었다. 쉬운 예로 한 시즌에 홈런 15-20개 정도를 치던 선수들도 30개는 기본으로 기록하던 시즌이었다. 그런데 피어슨은 외모와 달리 무시무시한 을 자랑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정교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이도 저도 아닌 선수였다. 더 문제는 수비를 전혀 할 수 없는 인물로 대부분 플레이 타임을 지명타자로 뛰었다.

 

보너스로 극악(?)의 주루 능력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때로는 도원 구장 펜스를 맞추는 타구를 날리고도 2루 진출 시도조차도 하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워낙 육중한 체구를 소유한 만큼 타구가 조금이라도 빠르게 날아가면 2루타를 단타로 둔갑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심지어 빠르게 나가는 단타는 1루에서도 아웃 될 것 같았다. 따라서 경기 후반에는 대주자와 교체가 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런 피어슨은 완전한 계륵이었다. 수비/주루 불가능. 공격은 평범한 타자가 바로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피어슨은 1999시즌 129경기 출장, 타율 0.289 홈런 31108타점을 기록했지만, 당시 리그를 고려한다면 뭐어쨌든 현대는 당시 양대리그라는 기형적인 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 변경되면서 교체를 선택했다(2000년부터 자유계약).

 

다시 말하지만, 피어슨의 덩치만 보면 도원 구장은 매우 비좁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도원 구장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부드러운 스윙이 장점이었지만 거포가 아닌 중장거리 형태의 타자였던 것. 그렇다고 해도 타고투저 절정의 시즌과 도원 구장의 영향을 무색하게 만든 그의 평범함은 매우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체감상 150kg 가량의 육중한 체구를 소유했던 피어슨.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투수들은 몸쪽으로 던질 수 없을 정도로 타석이 꽉 찼다. 만약 그가 몸쪽에 바짝 붙는 볼을 모두 맞고 나갔다면 아마도 KBO리그 역사에 남는 기록도 가능하지 않았을지

 

서두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만약! 샌더스가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면 그의 홈런 숫자는 50-60개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현대도 1999시즌 재미있는 시즌을 보냈을지도

 

피어슨 이듬해 해태와 계약했지만 단 한 경기도 뛰지 않고 퇴출당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2006년까지 현역으로 뛰었고, 이후에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Eddie Lavorn Pearson - 한국명 : 에디 피어슨

● 1974년 1월 31일생

● 우투/좌타/내야수

● 1992년 ML 드래프트 1라운드 시카고 화이트삭스 지명(전체24순위)

● 주요 경력 : 1999 현대 -> 2000 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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