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전체 1라운드 1순위로 충격적인 지명을 했다. 그리고 2라운드 역시 모두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을 지명했는데 그가 바로 ‘스코트 쿨바’다.
쿨바는 트라이아웃 평가전에서 13타수 5안타 타율 0.358로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다만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비록 지명 순위는 3라운드 밑으로 떨어졌지만, 내야수 자원 중에는 쿨바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인물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도 현대는 무명(?)의 쿨바를 지명한 것.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당시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그의 커리어는 누구보다 화려(?)했다. 참고로 LG에서 뛰었던 주니어 펠릭스를 제외하면 타자 중에서는 최고였다. 사실 캠프 최대어였던 마이크 부시도 메이저리그 경력만 놓고 본다면 쿨바보다 아래의 인물이었다. 다만 한국 언론의 정보가 심각하게 부족했을 뿐이다.
쿨바는 1989년 텍사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이후 샌디에고, 세인트루이스 등을 거치며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 동안 167경기 타율 0.215 홈런 8개 41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1995년과 1996년에는 일본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었고, 특히 1995년에는 127경기 타율 0.278 홈런 22개 77타점을 기록했었다. 당시 KBO리그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히 훌륭한 커리어를 소유하고 있던 인물.
그러나 모두들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드래프트 당시 현대 김재박 감독을 비롯해 구단 관계자들은 다른 팀에서 선택할까 봐 걱정했다는 후문도…어쨌든 쿨바는 현대의 선택을 받았고, 계약금 4만 달러, 연봉 5만 5천, 보너스 2만 등 총액 11만 5천 달러에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가 팀에 합류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쿨바를 처음 본 코칭스텝은 당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짧은 다리 + 메이저리그 코치 수준으로 나온 배불뚝이 몸매는 도저히 내야수 수비가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훈련을 통해 지켜본 수비 실력은 1997년 시즌 후반에 3루로 이동한 김경기와 비교해도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것. 오히려 김경기가 더 낫다는 것이 현대 코칭스텝의 결론이었다.
결국, 코칭스텝은 김경기와 함께 1루와 3루를 스위치로 기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상 쿨바를 1루로 이동시킨 것이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를 선택한 것일까?
그러나 이런 걱정도 잠시 실전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시범경기 타율 0.571로 시동을 걸더니 시즌 시작 후,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시즌 초반 화려한 출발을 했던 부시가 점점 계륵이 되고 있을 때, 쿨바는 현대 유니콘스의 ‘부동의 4번 타자’가 됐다. 그리고 도루를 제외하면 타격 전 부문에서 이름을 상위권에 올렸다.
특히 여름까지만 해도 그는 리그 최고의 외국인 타자였다. 다만 시즌 막판 타이론 우즈(OB)의 홈런 신공(?)으로 전세가 역전됐지만, 쿨바는 꾸준한 활약으로 팀이 사상 첫 정규리그 우승을 하는데 중심에 서 있었다.
쿨바는 1998시즌 115경기에 출전, 타율 0.317 홈런 26개 97타점으로 성공한 외국인 타자로 한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도 그의 방망이는 식지 않았다. 6경기를 모두 뛰면서 타율 0.348 홈런 2개로 팀 창단 첫 통합 우승의 중심에 서 있었다.
불꽃 같은 시즌을 보낸 쿨바의 한국 생활. 큰 이변이 없다면 재계약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시즌 후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현대는 그에게 최대 22만 달러를 제시했다. 이는 입단 당시 금액에 약 2배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현대는 통 크게(?) 배팅한 것. 하지만 쿨바는 30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리고 양측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으며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현대는 결별을 선언했다. 사실 당시 언론에서는 ‘연봉’에 초점을 맞췄지만, 사실 쿨바는 돈보다 가족 때문에 한국 생활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가족 중에 특히 와이프가 향수병으로 한국 생활을 힘겨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쿨바는 미련 없이 고국으로 돌아갔고, 한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쿨바는 은퇴 후 싱글A 코치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메이저리그로 승격, 텍사스에서 타격코치를 시작으로 2015년 볼티모어(2015-2018)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그러던 2019년 잠시 설레가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9시즌 후 롯데가 새로운 감독을 찾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쿨바’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20년이 훌쩍 넘어 지도자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현대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꼭 오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쿨바는 오지 않았다. 국내 언론에서는 협상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것…쿨바는 2020년 화이트 삭스 보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가 2021-2022년 디트로이트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했다. 다만 지난 시즌 후 경질. 올해 근황은 아직 알 수 없다.
쿨바는 한국에서 단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다. 그리고 우즈나 호세처럼 강렬한 임팩트를 심어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꾸준함과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현대의 창단 첫 우승 용병으로 현대 팬들에게는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 인물이다.
그의 최대 장점은 많은 경험과 침착한 성격이었다. 대부분 외국인 타자들이 지나치게 덤벼들며 극악의 선구안을 보여준 것과 달리 쿨바는 비교적 괜찮은 선구안을 자랑했다. 또한, 보스 기질도 있어서 선수들과 융화하는 문제도 없었다. 오히려 선수들을 잘 챙겨주는 외국인 선수였다. 다만 약점이라면 많은 나이로 몸쪽 빠른 볼에 대처가 늦고 순발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삼진이 많기도…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변화구를 공략하는 것은 뭐…
어쨌든 쿨바는 나쁜 기억과 좋지 않은 기억이 전혀 없던 선수 가운데 한 명이었다. 국내로 복귀가 어렵다면 언젠가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대해본다.
● Scott Robert Coolbaugh - 한국명 : 스코트 쿨바
● 1966년 6월 13일생
● 우투/우타/내야수
● 1987년 ML 드래프트 3라운드 텍사스 지명(전체77순위)
● 1989년 9월 2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89-1990 텍사스 -> 1991 샌디에고 -> 1994 세인트루이스 -> 1995-1996 한신 -> 1998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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