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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현대 유니콘스

추억의 용병 06 - '애증의 공갈포' 에디 윌리엄스

by 특급용병 2023.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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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계약으로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이 바뀐 첫해였던 2000년 현대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강타자 에디 윌리엄스를 영입했다.

 

윌리엄스는 1983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뉴욕 메츠에 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참고로 당시 전체 1순위는 박찬호와 난투극을 벌였던 팀 밸처였고, 전체 19순위는 로켓맨 로저 클레멘스였다.)

 

윌리엄스는 1986년 클리브랜드에서 빅리그 데뷔를 한 이래 메이저리그 통산 10시즌 동안 395경기 출전, 0.252의 타율과 1145타수 288안타 39홈런 150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1994년과 1995년에는 샌디에고 소속으로 각각 11개와 12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또한, 1991년에는 일본 다이에 호크스에서 뛰기도 했다. 당시 KBO리그 수준이라면 역대급 커리어를 자랑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선수가 연봉 15만 달러, 옵션 5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현대에 입단한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항간에는 50만 달러 이상을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든 20만 달러는 아니라는 것이 정설

 

어쨌든 현대는 꿈에 그리던(?) 강력한 4번 타자를 찾았다. 스프링캠프에서 그의 기량을 본 이들은 수치로는 나타낼 수 없는 파워만 고려해도 한국에서는 비교할 선수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홈런도 30-40개가 아니라 50-60개가 충분히 가능한 인물이라고 평가를 할 정도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윌리엄스의 이 보통 눈이 아니었다. 그는 코치 박스에서 투수들의 손목 동작이나 미세한 움직임을 보고 구종을 맞췄다. 과거 태평양의 타격 코치였던 고원부 코치를 소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인물과 같은이러한 능력은 분명 개인 성적 외에도 팀에 플러스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시즌 개막전 그는 KBO리그 첫 홈런을 기록하면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물론 팀 동료 퀸란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팀의 4번 타자로 위용을 과시했다. 윌리엄스는 정교함은 많이 떨어졌지만 준수한 장타력으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5월에 발생했다.

 

타격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면서 4번 타자가 아닌 6번으로 강등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가 된 것. 사실 윌리엄스는 무릎 부상이 있었음에도 숨기고 뛰다가 결국 들통나고 말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당뇨를 앓고 있었다는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아이템으로 장염까지 추가하며 그는 용병 타자가 아닌 움직이는 종합병원이었다.

 

결국, 윌리엄스는 한국에서 단 37경기를 뛰며 타율 0.248 홈런 12 36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퇴출됐다.

 

하지만 사실 여기까지가 언론에 공개된 퇴출 이유였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대는 잠실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현대 구단주가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윌리엄스가 매우 무성의한 플레이를 하자 곧바로 퇴출 지시를 한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현대에게는 매우 잘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놀다가 쫓겨 났으면 가만히나 있지만 마이너리그에 복귀한 윌리엄스는 다른 선수들에게 한국에 가지 말라.”며 한국에 대한 온갖 비방을 하면서 복수극에 나선 것이다. 이는 현대를 넘어 한국 야구를 매우 무시하는 태도였다. 당시 한국 야구 수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빅리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무릎 부상에 지병까지 숨겼다. 또한,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장염에 무성의한 플레이까지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오만함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애증이 교차하는 인물이었다.

 

비록 여러 가지로 문제로 퇴출당했지만, 장타력은 훌륭했던 인물이고 무엇보다 현대 유니콘스 역사상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기대치도 높았던 것. 만약 그가 건강한 몸을 가지고 한 시즌을 다 소화했다면 40홈런 이상도 가능했던 선수라고 본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윌리엄스는 2002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Edward Laquan Williams - 한국명 : 에디 윌리엄스

 1964 11 1일생

 우투/우타/내야수

 1983 ML 드래프트 1라운드 뉴욕M 지명(전체4순위)

 1986 4 18 ML데뷔

 주요 경력 : 1986-1988클리브랜드 -> 1990샌디에고 -> 1991다이에 -> 1994-1995샌디에고 -> 1996디트로이트 -> 1997피치버그 -> 1998샌디에고 -> 2000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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