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에서 우완 투수 호세 파라를 선택한 삼성은 2라운드에서는 좌완투수 ‘스코트 베이커’를 선택했다.
베이커는 1990년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세인트루이스에 지명을 받았다. 이후 1995년 오클랜드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 단 한 경기에 출전했다. 사실 그가 주로 활약했던 곳은 더블 A였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서는 그를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과대포장(?)했다. 중요한 것은 현대의 스코트 쿨바와 함께 8개 구단에는 거의 무관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
그러나 이문한 스카우트 과장의 강력 추천으로 삼성은 그를 선택하고 계약 보너스 2만 달러, 연봉 6만 달러에 계약했다. 하지만 이에 따라 한동안 이문한 과장은 가시방석에 앉게 됐다.
스프링캠프(일본)에 합류한 베이커는 시작부터 문제아(?)였다. 음식 문제와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훈련 태도가 매우 불성실했다. 게다가 가정사를 이유로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는 등 제멋대로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기량이었다. 시즌 개막이 다가오는 시점에도 훈련 부족으로 구속은 고작 130km가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베이커의 퇴출은 사실상 시간문제였다. 이문한 과정은 3, 4라운드에 지명한 선수들과 접촉하며 교체를 추진했다. 또한, 본인은 베이커 문제에 대한 책임(?)을 위해 사직서를 늘 품고 다녔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구속은 140km 초반에 머물렀지만, 다양한 구종으로 타자들을 압도(?)하면서 그는 삼성의 1선발로 활약했다. 당시 모해설 위원은 베이커의 컨트롤에 대해 매우 불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1998년 한국에서 뛰던 외국인 투수 중 베이커의 컨트롤은 최상급이었다. 또한 상대 타자와 승부 능력도 탁월한 투수였다. 참고로 1라운드에 지명받았던 파이어볼러들이 부진한 가운데 베이커는 외국인 투수들의 자존심(?)을 세운 인물이었다.
시즌 개막 후 15경기에서 10승 3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먼저 10승을 달성…전반기를 다승 1위, 승률 4위로 마감하며,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탄생했다. 그리고 1998시즌 가장 강력한 다승왕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후반기 부상으로 구위가 떨어지면서 전반기만큼 활약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26경기 등판, 15승 7패 172이닝을 소화하면서 평균 자책점 4.13을 기록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1998년 한국 무대에서 뛴 외국인 투수 중에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만났다. 좌타 군단 LG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베이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러나 베이커는 플레이오프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부상으로 선발이 아닌 불펜으로 2경기에 등판해 1승 1패를 기록하며 팀의 에이스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LG 펠릭스 주니어에게는 ‘고양이 앞에 쥐’였다.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잔뼈가 굵었던 펠릭스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 같았다(삼성은 LG에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된다).
비록 팀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은 베이커와 재계약을 원했고, 삼성이라면 총알(?)은 결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베이커는 30만 달러 이상을 요구하는 등 과한 요구를 하자 삼성은 그와 재계약을 포기한다. 한국을 떠난 베이커는 독립 리그에서 2002년까지 뛰다 은퇴, 이후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모는 매우 온순해 보이는 이미지. 그러나 실상 악동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베이커는 전반기 끝나고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폭행 사건에 연루가 됐었다. 그는 미국인 친구와 한국 여성과 포켓볼장에서 다른 한국인들과 시비가 붙었던 것. 공교롭게도 가족들이 한국에서 떠난 뒤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건 현장에도 여자 친구로 알려진 한국인 여성 2명이 있었다는 것은 베이커가 어떤 인물인지 잘 설명해준다.
그리고 경기 후 늘 구단 관계자들에게 검은(?) 요구를 했었다. 한 마디로 노골적으로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부남에 딸도 있었는데…
어쨌든 사생활은 뭐 시끄러웠던 인물이지만 1998년 삼성의 에이스 역할을 담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140km 초반의 빠르지 않은 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낙차 큰 커브가 주무기였던 투수로 삼성 역사상(?) 가장 훌륭했던 좌완 용병 투수였다. 참고로 2020년 뷰캐넌이 15승으로 타이를 기록한데 이어 2021년 16승으로 팀내 외국인 투수 한 시즌 최다승에 오르기 전까지 베이커가 최다승 투수였다.
● Scott Baker - 한국명 : 스코트 베이커
● 1970년 5월 18일생
● 좌완투수
● 1990년 ML드래프트 7라운드 세인트루이스 지명
● 1995년 7월 17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5 오클랜드 -> 1998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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