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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삼성 라이온즈

추억의 용병 01 - '삼성 1호 용병' 호세 파라

by 특급용병 2023.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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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존재한(?) 이후 해태와 함께 리그를 양분했던 삼성, 그러나 단 한 차례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특히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화려한 타선에 비해 마운드의 힘이 떨어졌다. 물론 그래도 면면은 정말 화려했던 팀이 삼성이다. 그 결과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원년 삼성은 마운드 보강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199711월에 열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팀 역사상 첫 외국인 선수로 우완투수 호세 파라를 영입했다.

 

파라는 1995LA 다저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2시즌(1995-1996) 동안 47경기에 출장 610패 평균자책점 6.59를 남겼다. 당시 KBO리그 수준을 고려하면 파라는 상당한(?) 커리어를 소유한 인물이었다.

 

특히 이미 캠프에서 빅터 콜과 함께 투수 최대어로 꼽혔다. 그는 캠프에서 시속 148km의 빠른 볼을 구사했다. 문제는 예정된 평가전을 두 번이나 취소하면서 사전 접촉 의혹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평가전 1경기에 등판해 2이닝 동안 삼진 3개를 잡아낸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파라는 줄곧 13만 달러를 요구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연봉 8만 달러, 보너스 3만 달러에 계약을 합의하며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선발로 15승 이상, 마무리로 25세이브는 할 수 있다라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따지고 보면 파라 역시 ‘구라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포부를 밝힌 것을 비난하기에는…)

 

어쨌든 삼성은 마무리 김태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하지만 문제는 시작부터 드러났다. 150km 이상의 빠른 볼을 뿌려대는 파라. 다만 변화구는 못 던지는 투수였다. 투구의 90% 이상을 빠른 볼을 던졌고, 한국에서 커브를 배웠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단조로운 구종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제구력이었다. 어쩌다가 한 번(?) 던지는 변화구는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난타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파라는 투구수 20, 1이닝 정도 피칭할 경우 매우 훌륭한 마무리 투수였다. 무시무시한 빠른 볼을 코너워크까지 하면서 타자를 압도하는 힘도 있었다. 하지만 혹사의 장인(?)’ 서정환 감독은 그를 8회부터 등판시킬 때가 많았다. 그 결과 투구수 20개가 넘어가면 급격히 구위가 떨어졌고, 상대에게 밥이 됐다.

 

(당시 풍토에서는 혹사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투수 분업화가 어느 정도 자리잡던 시절에 서정환 감독은…)

 

한국형 마무리(?)로 적합하지 않았던 파라는 실패한 마무리 투수가 됐다. 그러자 서정환 감독은 시즌 중에 파라를 선발로 테스트하며 후반기 선발 전환을 꾀했던 것. 물론 감독의 구상과 무관하게 그는 자신이 선발 체질임을 주장하며 보직 변경을 요구하기도 했다. 후반기 한시적으로 선발로 등판했지만 이내 마무리로 돌아왔다. 아무리 한국 야구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해도 직구하나로 선발로 뛴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직구하나로 버텼던 파라는 1998시즌 60경기에 등판해 7819세이브 평균자책점 3.67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파라는 3경기(선발 1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3이닝 동안 5실점(4자책)을 하며 평균자책점 12.00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남겼다.

 

그런데도 삼성은 시즌 후 그와 재계약을 선언했다. 성적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시속 150km의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이는 엄연히 사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삼성은 트라이아웃이 한창이던 시점에서 파라를 일본 요미우리로 현금 트레이드한 것이다.

 

삼성은 돈이 궁해서(?) 그를 일본에 팔아넘긴 것은 아니었다. 만약 재계약을 포기했는데 다른 팀에 입단해 비수가 되어 돌아올 것을 애초에 차단한 결정이었다. 게다가 파라가 일본으로 가면서 삼성은 정상적으로 새로운 선수를 지명하게 됐고, ‘트레이드 머니를 챙기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이에 나머지 7개 구단은 편법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완전한 규정이 없었기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한국을 떠난 파라는 요미우리에서 12경기에 등판 23패에 그치며 1년 만에 퇴출당했다. 이후 2000년 피치버그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고, 2002년에는 애리조나에서 뛰다가 한화에게 선택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2004년에는 또다시 뉴욕 메츠에 입단해 1승을 기록하기도이듬해에는 일본으로 다시 날아가 오릭스에 입단했다. 파라는 한--일을 활보(?)하고 다니다가 200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파라는 한국에서 기대만큼 인상적인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팀에 해를 끼치지 않았던 선수였다. 여담이지만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맨발로 운전하는 것을 즐겼다는 것

 

현재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Jose Miguel Parra - 한국명 : 호세 파라

19721128일생

우완투수

2001724ML데뷔

주요 경력 : 1995-1996 미네소타 -> 1998 삼성 -> 1999 요미우리 -> 2000 피치버그 -> 2002 애리조나/한화 -> 2004 뉴욕M -> 2005 오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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