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안일한 생각을 한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구단과 베테랑 선수와 관계가 매우 좋지 않은 이상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 게다가 아직도 보상선수에 대한 환상을 장외(?)에서는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
삼성이 FA 최원태를 영입했다.
이제 남은 것은 LG에 안겨줄 보상금과 보상선수. 늘 외부 FA를 영입하게 되면 보상선수에 대해서 모든 팬 그리고 언론에 관심이 높아진다. 심지어 팬들은 자신들이 응원하는 팀의 보호선수 명단을 짜고 치열하게 논쟁을 한다. 심지어 베테랑 선수를 포함해야 할지, 빼야 할지도…그리고 전혀 활약이 없던 유망주들도 유망주라는 이름 아래에 논란이 된다.
중요한 것은 보호선수 명단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장과 현장 밖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도 지난 2000년 FA 제도가 생긴 이래 보상선수로 이적해 성공한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모든 보상선수를 나열하고 기록을 살펴봐야 하지만 귀차니즘으로…
그래도 보상선수로 성공한 사례를 꼽으라고 한다면 대단히 적다. 참고로 최원태까지 역대 89명의 선수가 FA로 팀을 이적했다. 보상 방법에는 현금 보상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총횟수에서 성공사례는 단 5번밖에 없었다. 아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보상선수가 말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유망주가 성공한 케이스도 한 차례 밖에 없었다.
1. 타자 최고의 보상선수 ‘메시 이원석’
필자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이원석을 꼽고 싶다. 물론 그도 대형 유망주였고, 이미 이적 전에도 롯데에서 한 시즌에 120경기로 뛰어본 선수였다. 다만 다른 사례와 달리 롯데로 이적한 FA 홍성흔이 먹튀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묻혔을 뿐.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히 돋보였을 것이다.
어쨌든 이원석은 군복문 기간을 제외하고 7시즌 동안 617경기 1770타수 481안타 50홈런 250타점 타율 0.272를 기록했다. 3루뿐만 아니라 1루도 가능했고, 심심치 않게 유격수로도 뛸 수 있는 유틸리티 내야수. 이런 보상선수가 쉽게 나올 수 있을지…
2. 임기영, 주객이 전도된 사례
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원석이라면 투수를 대표하는 인물은 임기영이다. 2015년 FA 송은범이 한화에 이적했다. 그 보상으로 임기영이 KIA 유니폼을 입었다. 임기영은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와 2017년 8승 6패 118.1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3.65를 기록하면서 V11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는 선발/불펜 가리지 않고 KIA 마운드의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아직 30대 초반이라는 것. 굳이 임기영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것이 없다.
송은범은 거액을 받았지만 사실상 보상선수 수준으로 활약하다가 팀을 떠났다. 어쩌면 임기영이 FA였던 것 같은…
3. 고향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박충식
2000년 삼성이 FA 이강철을 영입했다. 그러자 해태는 삼성의 레전드 잠수함 박충식을 선택했다. 1993년 한국시리즈 3차전 15이닝 완투의 주역이자 삼성 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이강철 영입보다 더 충격이었을 수도…게다가 이강철은 2000년 단 14경기 1승 4패 평균자책점 7.30을 기록하며 먹튀로 이름을 남겼고, 심지어 이듬해 트레이드되어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그런데 친정으로 복귀해 불펜이지만 귀신같이 부활했다. 삼성 팬들에게는 더욱 재앙과 같은…
한편 보상선수가 된 박충식은 이적 첫해는 통으로 날렸다. 그러나 2001년 불펜으로 화려하게 부활을 한 그는 2002년 홀드 부분 3위에 올라서며 이전과 달리 역할은 바뀌었지만, KIA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하며 삼성 팬들이 구단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된 사례이기도…어쨌든 삼성은 레전드를 버린 팀으로 욕도 먹고 돈도 날린 사례였다.
4. 노망주로 꽃 피운 손지환
2004년 LG는 KIA 출신의 FA 진필중을 영입하고 보상선수로 손지환을 내줬다. 손지환은 고교시절 초대형 유격수로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그는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하고 그냥 ‘LG표 유망주 무덤’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KIA로 이적한 그는 무려 4시즌 동안 평균 100경기 이상을 뛰었다. LG에서 7시즌 동안 413경기를 뛰었던 그는 KIA에서 4시즌 동안 무려(?) 419경기를 뛰었다. 홈런이 전부는 아니지만 LG에서 통산 10개의 홈런을 기록했던 손지환은 KIA에서 4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과장을 하면 과연 누가 FA였는지 모르는 그런 사례였다.
5. 단골 보상선수(?) 김승회
2009년 홍성흔이 두산에서 롯데로 떠났다. 그러나 4년 후 2013년 다시 두산으로 돌아왔다. 그때 롯데가 선택한 인물이 김승회였다. 김승회는 롯데에서 3시즌을 뛰면서 146경기를 뛰었다. 한 시즌 평균 약 50경기에 등판한 셈이다. 특히 2014년에는 생애 첫 2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이 부문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어쨌든 1군에서 한 시즌 50경기씩 등판한다는 것이 필요한 자원이었다는 것.
특이하게도 김승회는 2016년 다시 한번, 그리고 역대 최초로 두 번째 보상선수로 SK에 입단하게 됐다(참고로 서류상 임훈이 두 번의 이적을 했지만, 냉정하게 보면 움직이지 않았기에 논외로 한다). 물론 SK에서는 큰 활약을 못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유망주들이 가서 꽃 피운 사례도 거의…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팬 시각에서는 30번째, 40번째 선수도 지키려고 하지만, 사실 현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 게다가 우리 팀에 있는 유망주는 다른 팀에도 있다. 아주 리그에서 손꼽히는 유망주가 아닌 이상은 누구나 다…
그리고 오히려 유망주가 아닌 백업들이 가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연봉과 나이 등으로 백업이나 베테랑들을 제외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상 그런 선택을 하는 팀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바보스러운 선택일 뿐. 어쨌든 구단들이 계속 외부 FA를 참전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몸값이 부담스러운 것이지 보상선수가 부담스러운 것은 팬과 언론뿐이다.
사전 :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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