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강력한 3루 수비를 자랑하며 LG의 거포 갈증을 해결해 줄 것 같았던 테이텀이 무릎을 당하자 LG는 고심 끝에 그를 퇴출했다. 그리고 새로운 외국인 타자로 외야수 ‘브렌트 쿡슨’을 연봉 10만 달러, 옵션 5만 달러에 영입했다.
LG 유니폼을 입게 된 쿡슨은 메이저리그 통산 2시즌 동안 25경기를 뛰며 타율 0.150을 기록했다. 아무리 수준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그의 메이저리그 성적은 큰 의미가 없었다. 다만 마이너리그에서는 나름 강타자로 활약했다. 특히 1999년에는 마이너리그에서 타율 0.321과 함께 홈런 28개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LG 유니폼을 입기 전까지 34경기에서 타율 0.313과 홈런 5개를 기록 중이었다. 어쨌든 LG는 그의 장타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며 영입했다.
하지만 KBO리그 데뷔 후 5경기는 빈타에 허덕이며 공갈포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런데 여섯 번째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한 후 그는 2경기에 1개 정도의 페이스로 홈런포를 가동했다. 특히 12경기를 뛴 시점에서 무려 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LG의 해결되지 않았던 거포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것 같았다. 다만 이런 행복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LG 유니폼을 입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쿡슨은 왼쪽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 LG는 그의 완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그와 결별을 선언했다. 쿡슨은 단 20경기를 뛰며 타율 0.222 홈런 6개 20타점을 남기고 한국을 떠났다.
여기서 한 가지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쿡슨은 부상으로 뛰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표했고, 잔여 연봉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아름다운 선수(?)로 알려졌다(한국 구단의 꼼수도 문제였지만 일부 먹튀들의 행태가 더 문제였기에 이런 것을 미담처럼 언론에서는 보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인연이 끝날 줄 알았던 쿡슨. 하지만 3년 만인 2003년 다시 LG 유니폼을 입게 됐다(총액 20만 달러). 그리고 그는 3년 전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강력한 파워를 과시했다. 당시 이광환 감독은 그에 대해 홈런 30개도 충분히 가능한 타자로 평가할 정도로 기대를 했었다. 다만 이번에도 그 기대는 너무나 일찍 깨져버렸다.
2003년 5번 타자로 그는 시즌을 시작했다. 그런데 번번이 공격 기회를 날려 먹는 행위(?)를 하더니 5월에 들어서 2군으로 추락했다. 결국 2003시즌 23경기 타율 0.214 홈런 2개 5타점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그는 한국을 떠났다.
‘만약’이라는 것은 불필요한 가정이지만, 만약 2000년 그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성공까지는 장담하지 못하지만 나름 괜찮은 활약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그는 실패로 끝난 용병이었지만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그는 삼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방망이를 두 동강이 내는 한국에서는 전에 볼 수 없는 모습을 연출했다. 사실 이 분야(?)에서는 롯데에서 뛰었던 카림 가르시아보다 훨씬 먼저 전파했던 인물이었다.
● Brent Adam Cookson - 한국명 : 브렌트 쿡슨
● 1969년 9월 7일생
● 우투/우타/외야수
● 1991년 ML 드래프트 15라운드 오클랜드 지명
● 1995년 8월 12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5 캔자스시티 -> 1999 LA -> 2000 LG -> 2003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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