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을 끝으로 팀의 중심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4번 타자 마해영은 FA로 역시나 삼성을 떠났다. 당장 한 시즌에 80-90개의 홈런을 줄어들게 된 삼성은 거포 용병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때 심상치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가장 먼저는 ‘소시지 폭행(?)’으로 알려진 ‘랜달 사이먼’을 영입하려고 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트로이 오리어리와 알려지지 않은 선수까지 3명으로 리스트가 압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삼성은 계속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면서 “특급 선수를 영입할 것.”이라고만 했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삼성이 말하는 특급 선수의 베일이 벗겨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트로이 오리어리였다.
오리어리는 사실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였다. 그 시절 야구 게임에나 등장하는 그런 선수였다.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결코 한국에 올 수 있는 선수도 아니었다. 오리어리는 1993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995년 보스턴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1년까지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특히 1998년과 1999년에는 각각 23개와 28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2003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11시즌 동안 1198경기에 출장해 1100안타 127홈런 591타점 통산 타율 0.274를 기록한 인물이다.
이 정도 커리어면 2000년 삼성 유니폼을 입었던 훌리오 프랑코 다음으로 화려한 수준의 선수였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한국에 온다니…이는 대단한 일이었다. 다만 이런 화려한 경력의 오리어리가 삼성과 20만 달러에 계약했다는 것은 설령 사실이라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당시 야구계는 최소한 150-200만 달러 정도 줬다는 설도 있었다. 물론 그의 연봉은 중요하지 않았다. 규정에서 자유로운 구단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현역 메이저리거가 한국에 왔다는 것이다.
삼성은 이런 거물을 영입하면서 이승엽의 공백을 메우고자 했다. 그런데 캠프에서 장타가 터지지 않자 자신은 “슬로스타터”라고 기다리라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평가전을 끝낸 오리어리는 ‘무좀(?)’을 핑계로 시범경기 출전하지 않았다. 3일 휴식 후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으나 4타수 무안타를 기록. 다음날 선동열 수석코치와 면담을 통해 돌연 “돌아가겠다.”라는 의사를 밝히고 유유히 도주(?) 해버렸다. 이는 삼성 유니폼을 입은 지 47일 만에 일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추측은 한국 생활과 훈련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과 김응룡 감독과 불화설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승엽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오리어리는 한국 야구에 대해서 “더블A 수준”이라고 밝혔다. 어쩌면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모를 수도 있던 그가 한국 야구 선수를 기억하고 더블A 수준의 리그에서 성적의 압박을 받아서 도망갔다는 것은 소설에 불과했다.
『김응룡 감독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은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는 김성근 감독과 동시대 인물이지만 180도 다른 성향의 소유자다. 이미 해태 출신 선수들이 밝혔듯이 그는 엄연히 말해 자율야구 한국에 도입했던 인물이다. 이는 80년대 뛰었던 선수들의 증언이다. 따라서 김응룡 감독과 불화라는 것이 정서 차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어쩌면 대구 야구장으로 보고…』
어쨌든 도주(?)했던 오리어리는 10일 만에 팀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초반 그는 기대했던 만큼의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타율은 0.286에 그쳤으나 4월에만 홈런 9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5월에는 단 1개의 홈런과 타격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또한, 점점 한국에 대한 불만을 자주 표출했다.
결국 6월 말쯤 오리어리는 2군행을 통보받았다. 이에 그는 이런 지시에 강하게 반발하며 “에이전트와 얘기하라.”라는 말과 함께 2군 훈련에 무단 불참했다. 그리고 다시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2차 꼬장(?)을 피웠다. 당장 갈 것처럼 하던 그는 2군에 합류했고 7월 초 1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결과는 퇴출이었다.
오리어리는 2004시즌 63경기 타율 0.265 홈런 10개 28타점만을 남기고 떠났다. 아무리 전성기가 지난 선수이지만 11년차 풀타임 메이저리거의 성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이유가 뭐든 간에 필자는 이런 사례를 보면 상위 리그 만능설(?)은 궤변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어차피 우리 선수들도 전성기가 지나서 해외로 가는 사례가 더 많았다. 반대로 전성기가 지난 화려한 커리어를 소유한 이들도 한국에 오기도 했다.』
어쨌든 한 가지 설에 의하면 오리어리가 일찌감치 퇴출당하지 않고 6월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구단 프런트, 김응룡 감독을 비롯해 선수단에 뇌물(?) 공세를 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이고 웃자고 하는 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TV나 게임에서나 보던 선수를 실제로 한국 야구장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매우 기대했었다. 아닌 말로 한 홈런 60개를 쳐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 생활을 불편해했던 것처럼 야구팬으로서 그의 활약이 불편하다 못해 실망이…』
한국을 떠난 그는 2005년 마이너리그에서 단 1경기를 뛰고 이후 현역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잔뼈가 굵어도 오만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다.
● Troy Franklin O'Leary - 한국명 : 트로이 오리어리
● 1969년 8월 4일생
● 좌투/좌타/외야수
● 1987년 ML 드래프트 13라운드 밀워키 지명
● 1993년 5월 9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3-1994 밀워키 -> 1995-2001 보스턴 -> 2002 몬트리올 -> 2003 시카고C -> 2004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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