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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삼성 라이온즈

추억의 용병 15 - ‘인성 甲’ 라이언 글린

by 특급용병 2024.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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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라를 퇴출한 삼성은 대체 선수로 우완 투수 라이언 글린을 영입했다. 삼성은 라이언을 선택하면서 원소속 구단 애틀란타에 이적료 75천 달러를 줘야 했고, 라이언의 연봉으로 10만 달러를 투자했다. 물론 그 시절 발표액은 믿을 수 없지만 어쨌든 후반기를 위해 20만 달러 가까이 투자했다. 그리고 등록명을 팀명과 비슷한 라이언으로 쓰면서 나름 대박 내주길 기대했었다.

 

어쨌든 라이언은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텍사스에서 뛰면서 616패 평균자책점 6.42를 기록했었다.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소위 말해서 그 시절에는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용병이었다. 최대 장점은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볼. 그래서 삼성은 후반기 7-8승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라이언의 KBO리그 데뷔전은 뭐 기대치를 더욱 높였다. 7이닝 동안 4피안타 볼넷 1개 무실점으로 역투를 한 것. 당시 모 심판은 빠른 볼 만큼은 역대 외국인 투수 중에 최고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7이닝을 소화한 그는 7월에는 2경기 1승 평균자책점 2.57을 기록하며 비교적 괜찮은 출발을 했다. 하지만 라이언의 활약은 단 2경기로 끝났다.

 

8월에 5경기를 선발로 등판했다. 하지만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6.00을 기록했다. 9월에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불펜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어쨌든 많은 대가(이적료+연봉)를 지불하고 영입했지만그냥 돈 날렸다. 라이언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고, 직구-슬라이더의 단조로운 투 피치 유형이었다. 아니 투 피치라고 해도 위력이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2003시즌 15경기 등판 131세이브 평균자책점 5.02만을 남기고 라이언은 한국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그는 다시 빅리그에 올라가기도 했고, 2000년대 후반에는 일본에서 뛰기도 했다.

 

당시 라이언은 팀에서 인성은 평가가 좋았다. 코칭스태프의 조언을 외면(?)하지 않았고, 한국 야구를 존중하는 모습이나 동료애 등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는 매우 훌륭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야구가

 

어쨌든 개인적으로 패스트볼 하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만약 KBO리그도 외국인 선수를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아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인물이다. 2004년 수석 코치가 선동열 코치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편으로 현대 팬들에게는 잊지 못할 인물이었다. 2003년 현대로 이적한 정성훈이 리딩히터를 노리고 있는 상황. 라이언의 투구에 손을 맞아 그해 규정타석 미달이 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세가 기울었다고 해도 현대-삼성은 뭐

 

● Ryan David Glynn - 한국명 : 라이언 글린

● 1974년 11월 1일생

● 우완 투수

● 1995년 드래프트 4라운드 텍사스 지명

● 1995년 7월 1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9-2001 텍사스 -> 2003 삼성 -> 2004 토론토 -> 2005 오클랜드 -> 2006 라쿠텐-> 2007-2008 니혼햄 -> 2009 요코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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