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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한화 이글스

추억의 용병 03 - ‘최초의 거포 용병’ 댄 로마이어

by 특급용병 2024.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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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1998년에 이어 1999년에도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2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첫해의 교훈(?)을 바탕으로 팀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선수로 오른손 거포 댄 로마이어1라운드에서 지명을 했다. 그리고 그와 계약금 1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 등 총액 11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사실 한화는 처음부터 캠프 최대어로 꼽히던 로마이어를 탐내고 있었다. 그러나 1순위 롯데가 그와 접촉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른 인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로마이어가 규정보다 2배 이상의 거액(45만 달러를 요구했던 것으로)을 요구한 것과 로마이어의 포지션이 1루와 DH 포지션에 한정됐다는 점을 이유로 지명을 포기했다. 그 결과 한화는 예정대로(?) 1라운드 2순위로 로마이어를 지명할 수 있었다.

 

로마이어는 1997년 시애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데뷔해 9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더는 빅리그에서 뛰지 못했다. 참고로 한국에 오기 직전 2시즌 동안 트리플A에서 58개의 홈런을 기록했을 정도로 장타력이 뛰어난 타자였다. 또한 트라이아웃 평가전 6경기에서 13타수 3안타를 기록했는데 3안타 모두가 홈런이기도 했다.

 

팀에 합류한 로마이어는 동료들과 무리 없이 어울렸다. 무엇보다도 허풍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주고자 했고, 성실한 선수로 인정받았다. 또한, 로마이어는 인삼을 달여 먹고 홈런을 치자 구단 직원에게 보약을 요구했던 일화도 있었다. 어쨌든 시즌이 시작됐고, 기량에 있어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로마이어는 전반기에만 87안타 홈런 3071타점 타율 0.284 출루율 0.379 장타율 0.641 OPS 1.020을 기록했다. 직전 시즌 부시 때문에 눈물을 흘렸던 한화는 새로운 4번 타자 로마이어로 확실하게 눈물을 닦아냈다. 다만 그의 돌출행동이 문제였다. 로마이어는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습성이 있었고(일명 트레쉬 토크하지만 당시에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에게 욕설을 내뱉어서 시즌 1용병 퇴장의 주인공이 됐을 정도

 

그러나 실력하는 이어었다. 후반기에도 55안타 15홈런 38타점을 추가하며 타율 0.304 출루율 0.404 장타율 0.646 OPS 1.050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했다. 그렇게 로마이어는 한국에서 첫 시즌 132경기에 출장, 타율 0.292 홈런 45109타점 OPS 1.031로 맹활약했다. 특히 장종훈-우즈-이승엽에 이어서 KBO리그 역사상 네 번째 40홈런 타자로 이름을 올렸다.

 

참고로 로마이어의 45홈런은 2015NC 테임즈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외국인 선수 한 시즌 최다 홈런이었다.

 

로마이어는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357 홈런 37타점으로 활약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16타수 2안타 타율 0.125에 그치며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로마이어는 그 영광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역으로 한 해를 보냈다.

 

이듬해 로마이어는 연봉 15만 달러, 옵션 5만 달러에 다시 한번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40홈런 타자가 아닌 50홈런 이상이 가능한 타자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한화 이희수 감독은 그가 50홈런 이상을 반드시 쳐내야 한다고 하기도

 

그러나 로마이어의 두 번째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시즌 초반 부진을 딛고 5월 들어 2경기당 1개의 홈런 페이스로 50홈런 페이스를 보여줬다. 문제는 플레이 외적인 부분에서 나타났다. 그는 동료들에게 지적 및 설교(?)는 물론 코칭스태프에게도 잔소리하는 수준으로 도를 넘겼다(?). 자연스럽게 한화 코칭스태프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결국 6월의 어느 날 로마이어는 코칭스태프의 수비 작전 지시 불이행으로 2군으로 쫓겨갔다.

 

물론 곧 1군에 복귀했지만, 전년도 무서운 로마이어는 사라졌다. 당연히 구단은 좋은 감정을 가지지 않았고, 그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급기야 현대와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이미 6월 현대가 트레이드를 오퍼를 넣었다. 하지만 한화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미 한차례 무산됐다. 그러나 이후 한화는 골칫덩이 로마이어를 정리하고 현대는 유일한(?) 약점인 1루 자원 겸 거포를 보강하기 위해 구체적인 협상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트레이드는 무산됐다. 만약 이 트레이드가 성사됐다면 야구 역사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로마이어는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와 의욕은 충만했던 인물이었다. 다만 의욕이 지나쳐서 코칭스태프에게 오만하게 보인 것이다. 실제로 그런 부분도 있었다. 단순히 한국 지도자들이 꼰대여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언론에서는 로마이어를 사실상 매장 시키는 역할을 해냈다.

 

대구에서 삼성과의 경기 도중한화 중견수 데이비스가 이승엽의 홈런성 타구를 걷어냈다. 이에 대구 팬들은 그라운드에 오물을 투척한 것이다. 이때 로마이어가 1루 덕아웃에서 나와 팬들에게 자제를 호소하는 동작을 취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은 오지랖 넓은 로마이어라는 악의적인(?) 타이틀로 보도했던 것국적을 떠나 로마이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야구는 팬이 있어야 하지만 팬들에게 선수 생명을 위협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로마이어 혼자 외친 것이다. 그러나 펜으로 몇 단어를 쓴 것이 그를 부정적인 선수로 만들어냈다.

 

이래저래 힘겨웠던 시즌. 로마이어는 2000시즌 123경기에 출장 140안타 홈런 2996타점 타율 0.296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홈런이 16개나 줄었다. 여러 부분에서 떨어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 못한 시즌도 아니었다. 그러나 한화는 그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이는 역시나 코칭스태프와 마찰 때문이었다. 그 당시 만약 로마이어와 재계약을 한다면 팀을 떠나겠다.”라는 코치들도 있었다고 한다. 재계약에 실패한 로마이어는 이듬해 LG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과 마찰로 인해 시즌 도중 퇴출당했다. 한국을 떠난 로마이어는 독립리그에서 한 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로마이어는 한화에서 2시즌 동안 74홈런 204타점을 남겼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좋은 선수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글스 역사상 최고의 용병 거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데이비스와 함께 유일한 우승 용병이었다는 점. 그래서 그가 그리울 때도 있다.

 

● Daniel Rohrmeier - 한국명 : 댄 로마이어

● 1965년 9월 27일생

● 우투우타/내야수

● 1987년 ML 드래프트 5라운드 시카고 화이트 삭스 지명

● 1998년 09월 22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7 시애틀 -> 1999-2000 한화 -> 2001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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