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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용병/한화 이글스

추억의 용병 02 - ‘진짜 구라왕(?)’ 조엘 치멜리스

by 특급용병 202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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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는 캠프 최대어로 꼽히던 마이크 부시를 1라운드에서 선택하고, 이어 2라운드에서 또 다른 내야수 자원인 조엘 치멜리스를 선택했다(9만 달러에 계약). 한화는 2명의 선수를 모두 내야수로 채우며 허준-정경훈이 나눠서 해결하던 유격수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치멜리스는 1988년 마이너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단 한 차례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리고 KBO리그에서도 큰 존재감은 없었다. 전반기 58경기에 출전, 0.254의 저조한 타율과 홈런 820타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허준-정경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수비에서는 더 불안했다. 다만 미래(?)를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후반기 치멜리스는 전반기와 너무도 다른 선수였다. 물론 만족할 수는 아니었지만, 후반기 60경기 타율 0.302 홈런 1034타점을 올린 것. 당시 부시를 비롯해 폭삭 망한 한화 타선에서 그나마 괜찮은 활약을 했던 인물이었다.

 

1998시즌 치멜리스는 118경기에 출전, 타율 0.279 홈런 1763타점을 남겼다. 나름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용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매우 아쉬운 성적이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수비 불안으로 유격수로 시작했으나 2루로 포지션을 이동했다. 사실 허접(?)한 수비 실력에 동료들은 그를 치매라고 부르기도뭐 그 시절 야구를 보던 팬들은 기량과 무관하게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어쨌든 2루 수비도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마이너리그 시절 그는 1, 3, 유격수로 300경기 이상 소화를 했다. 하지만 2루수로는 100경기 정도밖에 소화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치멜리스는 수비가 뛰어나지 않지만 여러 포지션을 뛸 수 있는 선수에 불과했다. 이듬해 재계약은 실패했지만,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에 보험용(?)으로 지명을 받았다. 물론 한국에서 더 뛸 수는 없었다.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간 그는 현역 생활을 이어가다가 2003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는 은퇴 후 마이너리그의 타격 코치로 변신했다. 또한 UFC 자원 봉사자로 활동하던 치멜리스가 한화 출신과 동일인이라는 소식을 전하면 추억을 소환하기도 했다. 치멜리스는 2012년까지 코치 생활을 했고, 현재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과거 용병들의 허풍은 메이저리그 수준(?)’이었다. 숀 헤어가 엉뚱하게 희생양이 되었을 뿐, 진짜 구라 왕들이 즐비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치멜리스였다. 그는 자신이 오마 비스켈과 키스톤 콤비를 이루기도 했고, 모든 리그에서 3할 이상을 쳤다고 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라면 몰라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않은 치멜리스는 비스켈과 키스톤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리그에서 3할을 쳤다고 했지만, 마이너리그 기록을 보면 구라라는 사실이 바로 나타난다.

 

만약 기자들이 치멜리스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선량한 숀 헤어(?)가 아닌 치멜리스가 최고의 구라 왕이 됐을지도 모른다.

 

● Joel Chimelis - 한국명 : 조엘 치멜리스

● 1967년 07월 27일생

● 우투우타/내야수

● 1988년 ML 드래프트 11라운드 오클랜드 지명

● 주요 경력 : 1998 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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