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시즌 후 KIA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정도의 선수와 접촉 중이다.”라는 설이 흘러나왔다. 일각에서는 그 주인공이 ‘호세 리마’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도장 찍기 전에는 믿을 수 없는 일. 게다가 전성기가 지났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21승을 거뒀던 선수가 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물론 프랑코, 오리어리, 마틴, F-로드 등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하는 이들도 한국 무대에서 뛰었지만 ‘특급 대우’가 아니라면 설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 러. 나.
KIA는 해냈다(?).
‘전설의 리마 타임’으로 통하던 ‘호세 리마’를 영입한 것이다. 이는 놀라움과 함께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21살의 리마는 1994년 디트로이트에서 데뷔…이후 3년 동안 8승 16패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나 휴스턴으로 이적하면서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이적 첫해 1승에 그쳤던 리마는 1998년 팀의 로테이션 한 자리를 지키며 16승 8패 233.1이닝을 소화한 것이다. 그리고 1999년 리마는 무려 21승(10패)을 기록하며 사이영상 투표 4위까지 올랐다.
물론 그에게 최고의 시간을 안겨줬던 휴스턴 홈구장은 투수 친화 구장이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든 뭐든 빅리그에서 한 시즌 21승을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다만 이후 리마는 내리막을 걸었다. 2000년 7승을 거둔 이후 2001년 시즌 중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되면서 본격적인 내리막을 걷게 된다. 2004년 다저스에서 시즌 13승, 포스트시즌에서 완봉승(세인트루이스전)으로 ‘리마 타임’의 부활을 알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지막 불꽃이었다. 이후 캔자스시티, 메츠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로 끝났다.
메이저리그 통산 13시즌 89승 102패를 기록했던 리마는 일본 진출도 무산되자 KIA를 선택했다.
리마는 팀 합류 시작부터 엄청난 친화력을 자랑하며 팀 분위기를 책임지는 인물이었다. 훈련 첫날부터 실전 피칭을 소화할 정도로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KIA 코칭스태프는 윈터리그 당시 최고 148km를 기록했던 것을 보고 이미 몸은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며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런데 그 강속구가 사라졌다. 연습 경기에서 최고 140km 초반의 구속. 평균 136-138km의 구속은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5이닝 4피안타 무실점을 시작으로 17이닝 동안 단 2실점으로 평균자책점 1.06을 기록. 2008시즌 KBO리그에서 ‘리마 타임’을 예고했다. 물론 스피드는 여전히 최고 140km 초반, 평균 130km 후반에 머물렀다.
드디어 시즌 개막…
2008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한 리마는 5.1이닝 3실점으로 데뷔전을 마감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7.2이닝 1실점으로 역투, 그러나 화끈한 ‘리마 타임’은 없었다. 시즌 첫 승을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마는 첫 승과 함께 ‘화끈한 리마 타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쉽게 이행할 수 없었다.
이후 5이닝 4실점, 3.2이닝 8피안타 8실점으로 최악의 피칭까지…기대했던 ‘리마 타임’은 오지 않았다. 급기야 4월 중순 이후 2군행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이별의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고 있었다. 2군에서도 큰 차이 없는 피칭을 하던 리마는 5월 9일 우리와 경기에서 선발 등판. 7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냈다. 다음 등판에서도 승리하며 퇴출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들쭉날쭉한 피칭과 위력적인 피칭을 하지 못하면서 7월 초 리마는 퇴출의 칼바람을 맞았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외국인 투수 최고의 커리어를 자랑했던 리마는 2008시즌 14경기 3승 6패 1홀드 평균자책점 4.89를 남기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독립리그로 돌아간 리마는 2008년 5승, 2009년 6승을 거두며 또 다른 꿈을 위해 현역 생활을 이어가며 간혹 한국 팬들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비록 한국에서 ‘리마 타임’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다른 곳에서 화려한 부활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전한 소식은 2010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됐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특히 팀 동료였던 KIA 양현종은 승리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국적과 나이를 떠나 리마는 양현종에게 좋은 친구였고 그가 힘들 때 조언을 해줬던 인물이었다.
리마는 한국을 선택한 후에 성공해서 일본에 도전하겠다고 솔직한 포부를 밝혔다. 또한, KIA 덕아웃에서는 ‘원조 응원단장’으로 볼거리를 많이 제공했다. 모자 뒤쪽에 로진을 듬뿍 뿌려 하얗게 만들어 마운드에 오르며 심판에게 ‘이물질을 묻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한국식 인사법으로 팬들에게 다가가기도 했고, 경기 매너도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리마는 기인으로 통하는 인물이었지만 정말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장에 있는 것을 즐거워했던 인물이 아니었을까? 조금만 더 힘이 있을 때 한국에 왔다면 어땠을까? 한국에서 ‘리마 타임’ 열풍을 일으키며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열정적이고, 유쾌했던 사나이. 아니 ‘오두방정의 대명사’였던 리마. 이제는 그곳에서 진정한 ‘리마 타임’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 Jose Desiderio Rodriguez Lima - 한국명 : 호세 리마
● 1972년 9월 30일생
● 우완투수
● 1994년 4월 20일 ML 데뷔
● 주요경력 : 1994-1996 디트로이트 -> 1997-1999 휴스턴 -> 2001-2002 디트로이트 -> 2003 캔자스시티 -> 2004 LAD -> 2005 캔자스시티 -> 2006 뉴욕M -> 2008 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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