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2002시즌 외국인 투수 키퍼와 함께 또 다른 우완 투수 ‘다니엘 리오스’와 보너스 포함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
리오스는 양키스와 캔자스시티 등 메이저리그 통산 2시즌을 뛰며 7경기 1패 평균자책점 9.31을 기록했다. 화려한 경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150km의 구속을 자랑하는 파워 피처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KIA와 리오스가 만나기까지는 매우 험난했다.
먼저 2001년 ‘해태 시절’ 리오스를 영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해태는 자매결연 팀인 보스턴에게 외국인 선수 수급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영입에 실패한 것. 사실 보스턴은 자매 구단보다 잔악무도한 구단이었다. 그들이 소개한 선수는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 심지어 해태는 비디오만 보고 선수를 선택해야 했다. 대표적으로 호세 말레브…
이어 KIA로 간판을 바꾼 후, 다시 한번 리오스와 접촉했다. 그러나 한국행이 무산됐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먼저 KIA와 계약 후 리오스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려고 했다. 하지만 방광염을 이유로 탑승을 거부하며 계약에 실패했다. 또 다른 이유는 브로커가 개입하면서 거액의 이적료를 요구해 실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KIA와 계약 전 이미 그는 삼성에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다만 불합격으로 KIA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던 것. 만약 결과적으로 2002시즌 삼성은 통합 우승을 이뤘지만, 그가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면?…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KIA 유니폼을 입은 리오스는 2001년 멕시칸 리그에서 18승 5패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했으나 KIA는 선발이 아닌 마무리를 보직을 결정했다.
2002시즌 개막전에 등판한 리오스는 2이닝 퍼팩트 피칭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개막 3연전에서 2세이브를 올리며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이것은 여느 용병 마무리와 비슷한 흐름이었다. 이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이며 불안한 마무리가 됐다. 그래서 극약처방으로 투구 밸런스를 위해 선발로도 등판했다. 결과는 나름 성공이었다. 7이닝 7피안타 5실점(4자책) 투구수 125개.
그런데도 계속 마무리로 뛰게 됐다. 그러던 후반기 팀 선발 마운드가 무너지자 전격적으로 보직 변경이 이뤄졌다.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던진 리오스는 2002시즌 14승 5패 13세이브(19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했다.
리오스는 22만 달러에 재계약에 성공하며 2003년 선발로 시즌을 출발한다. 그런데 훈련 부족과 함께 초반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더니 퇴출 대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키퍼가 먼저 퇴출. 정확히 말하면 트레이드되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2003시즌 리오스는 30경기에 등판, 10승 13패 평균자책점 3.82를 기록했다. 다만 비록 패수가 많았지만, 188.2이닝을 소화하며 이닝이터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는 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었고, 참고로 1위는 191.2이닝을 던진 LG 이승호였다. 이 밖에도 QS 19회로 리그 2위를 기록했다.
리오스는 16만 5천 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삭감된 금액이었지만 KIA와 재계약하며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뛴 외국인 선수가 됐다. 2004년 개막전 ‘헤드샷’으로 시즌 1호 퇴장을 당했다(당시에 헤드샷은 무조건 퇴장이었다).
이것은 액땜이었을까? 웃지 못할 첫 등판을 뒤로하고 리오스는 2004시즌 ‘천하무적’ 이닝이터로 리그를 이끌었다. 특히 팀 내 투수들보다 2배 이상의 이닝을 소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 속에서 리오스는 KIA 팬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KIA 팬들은 그를 ‘이오수’라고 부르며 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
2004시즌 리오스의 성적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17승(8패)으로 다승 부문 공동 1위, 평균자책점 4위(2.87), 탈삼진 2위(145개)를 차지했다. 여기에 무려 222.2이닝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압도적인 이닝 소화 능력을 과시했다(참고로 2위가 두산의 레스였는데 200.2이닝으로 상당히 많은 차이를 보였다). QS도 23회로 리그 1위…
사실 MVP급의 활약을 보여줬다. 그런데 리그를 지배했던 타자 현대 클리프 브룸바도 아니고 삼성 배영수가 ‘삼성’이라는 이름 때문에 MVP를 받았다. 브룸바가 아닌 선발 투수 중에 MVP가 나온다면 사실 리오스가 받았어야 했다. 뭐 당시는 지금보다 더 기준도 없이 프리미엄(?)을 붙였다.
몬스터 시즌을 보낸 리오스는 삭감됐던 연봉을 회복하며 2005년 24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어느덧 최장수 용병으로 달려가던 리오스. 그러나 2005년은 리오스와 KIA의 마지막 시즌이었다. 시즌 초반부터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강력한 ‘이오수’는 사라지고 ‘홈런 공장장’이 된 것.
6승 10패 평균자책점 5.23…매우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리고 KIA는 시즌 중에 그를 퇴출하려고 했다. 이에 KIA 팬들은 퇴출 반대 현수막을 걸며 시위(?)하는 애정도 과시했다. 그런데도 KIA는 퇴출 전 이미 대체 선수를 영입하며, 사실상 퇴출을 공표한 것. 그리고 KIA는 리오스를 트레이드 카드로 사용했다. 리오스와 김주호를 두산에 내주는 대신에 좌완 영건 전병두를 받아온 것(이후 이야기는 두산 편에서…).
훗날 리오스는 약물 파문으로 한국 야구팬들에게 삭제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타이거즈 역사상 손꼽히는 외국인 투수였다. 또한, 타이거즈 역대 리오스만큼 사랑받았던 인물도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승 용병 로페즈가 임팩트는 있었지만 약간(?) 올드팬들에게는 리오스의 기억이 더 크게 자리할 수도…
● Daniel Rios - 한국명 : 다니엘 리오스
● 1972년 11월 11일생
● 우완 투수
● 1998년 5월 2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97 뉴욕Y -> 1998 캔자스시티 -> 2002-2005 KIA -> 2005-2007 두산 -> 2008 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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