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외국인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LG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스위치 히터 ‘주니어 펠릭스’를 지명했다. 그런데 펠릭스는 20만 달러 이상을 요구했던 것. 결국 LG와 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펠릭스의 커리어라면 충분히 요구할 만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정보력이 떨어진 결과 트라이아웃 당시 그는 완전하게 감춰졌었다. 트라이아웃 캠프 최대어로 평가받던 마이크 부시(전 한화)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인물이었다. 펠릭스는 1989년 토론토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 그해 110경기를 뛰었고, 이듬해 127경기 타율 0.263 홈런 15개 65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1992년에는 캘리포니아(현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139경기를 뛰는 등 메이저리그 6시즌 통산 585경기 타율 0.264 홈런 55개 280타점을 기록한 풀타임 메이저리거였다.
어쨌든 한국행이 무산된 듯했다. 하지만 1998시즌 초반 LG는 장타력을 갖춘 4번 타자의 필요성을 느끼며 다시 펠릭스와 접촉했다. 그리고 월봉 1만 5천 달러에 계약했다. 다만 소속 팀과 계약 문제로 KBO 기준, 6월 30일 선 계약, 후 합류 조건이었다.그렇게 길고 긴 기다림 속에 8월, 드디어 LG 유니폼을 입은 펠릭스. 그는 8월 19일 KBO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기대대로 늦은 합류에도 불구하고 ‘좌타 일색’의 LG 타선에 무게 중심을 잡아줬다.
펠릭스는 1998시즌 단 33경기 출장. 타율 0.293 홈런 6개 21타점을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한 시즌을 정상적으로 뛰었다면 홈런 20개 이상도 가능한 타자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쨌든 펠릭스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위력을 과시했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리그 최고의 용병 투수였던 베이커에게 메이저리거의 위상(?)으로 압박감(?)을 주며 결승 3점 홈런으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다(당시 故 하일성 위원은 베이커가 펠릭스의 커리어에 위축이 돼서 못 던진다고 했다.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 다만 베이커는 시즌 막판 몸이 좋지 않았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정산은 아니었다. 어쨌든 진실은 베이커만…).
한국시리즈에서도 3차전 분위기를 반전하는 홈런포를 기록했다(당시 선발 예고제를 시행하면 현대는 반드시 한 번은 질 것이라고 김재박 감독은 예상했다. 그리고 조규제를 선발로 내세운 그 경기가 그날이 되기도…). 하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준우승에 머무른 LG. 하지만 펠리스와 다시 한번 함께 하기로 결정. 연봉 11만 달러, 옵션 4만 달러 등 총액 15만 달러에 계약했다.
1999시즌 펠릭스는 40홈런 시대를 이어갈 선두 주자로 꼽혔다. 또한 계약 후 그는 스스로 트레이너를 고용해 체중 감량과 함께 시즌을 준비 한다는 소식에 성실하다고 국내 언론에서는 칭찬(?)을 했다(한 가지, 국내 선수들은 당시 개인 트레이너 고용이 필요 없었지만 외국인 선수들은 개인 훈련을 하면서 트레이너를 고용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다만 아직 우리 야구가 발전하지 않아서 칭찬(?)했던 것…하지만 과연 제대로 훈련했을까?).
펠릭스는 자신이 풀타임으로 뛰면 MVP는 자신이 받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펠릭스 입장에서 커리어만 보면 두산의 타이론 우즈는 자신과 비교될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참고로 1998년 OB의 우즈가 리그 MVP가 됐다). 하지만 이러한 각오는 결국 입털기 혹은 오만에 불과했다.
199시즌 펠릭스는 그냥 ‘배불뚝이 아저씨’에 불과했다. 도대체 무슨 훈련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무늬만 4번 타자였을 뿐이다. 게다가 자신의 출신 성분(?)을 바탕으로 한국야구를 무시하면서 제멋대로 야구를 한 것이다. 물론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면서 무시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기량은 2군 수준이면서도 온갖 건방 야구를 제대로 보여줬던 것. 가장 큰 문제는 무성의한 태업성 플레이였다. 타석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마구잡이로 방망이를 돌렸다. 게다가 찬스에서도 절제 없이 일명 ‘막 스윙’으로 팀에 민폐만 끼치는 인물로 변질된 것. 더 열받게(?) 하는 것은 2군행을 지시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경기에 집중했다.
시즌 내내 부진은 물론 태도가 변하지 않자 LG 코칭스태프는 그를 선발에서 제외하고 대타로 기용했다. 하지만 이런 충격 요법도 ‘건방 야구의 대가’ 펠릭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던 가운데 2000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이 자유계약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LG가 새로운 선수를 찾고 있다는 소식에 펠릭스는 아예 시즌을 포기하며 대놓고 태업에 들어갔다. 그러니 옵션을 왕창 높였어야…
아무튼 그 결과 펠릭스는 1999시즌 97경기에 출장 타율 0.253 홈런 13개, 58타점에 그치며 9월 공식발표는 없었지만, MVP 대신 퇴출로 한국 생활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떠난 펠릭스는 멕시칸 리그로 돌아가 2시즌을 더 뛰고 은퇴했다.
진짜 아이러니한 것은 체중을 감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막상 팀에 합류했을 때 펠릭스는 배불뚝이 아저씨에 불과했다. 누구의 체중을 감량시킨 것일까? 트레이너의 체중을 감량시킨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엄청나게 불성실했던 인물. LG는 왜 그를 시즌 끝까지 데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많이 기대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애증(?)의 존재였다.
● Junior Francisco Sanchez Felix - 한국명 : 주니어 펠릭스
● 1967년 10월 3일생
● 우투/좌우타/외야수
● 1989년 5월 3일 ML 데뷔
● 주요 경력 : 1989-1990 토론토 -> 1991-1992 캘리포니아 -> 1993 플로리다 -> 1994 디트로이트 -> 1998-1999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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