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배스를 방출한 해태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키스 미첼’과 6만 5천 달러에 계약했다.
그런데 미첼은 시작도 전에 이상한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등록명은 구단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미첼의 경우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그의 이름이 결정됐다. 미첼의 풀네임은 “Keith Alexander Mitchell”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키스’, ‘케이시’, ‘케이트’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처음에는 통일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부정 선수였다는 것이었다.
미첼은 1998년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다. 당시 KBO리그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6조에는 “외국의 프리에이전트 선수 중 전년도 및 전전년도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된 선수는 계약 대상에서 제외한다”라고 명시…그러나 1999년 시즌 막판 단장들은 “9월 1일부터 다음 해 1월까지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는 스카우트 할 수 있다.”고 합의 했다. 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또한 당시 구단 사장들은 미첼이 부적격선수이지만 해태의 사정을 고려해 그의 입단을 용인했고, KBO에서도 특별히 시비(?)걸지 않고 승인했다.
어쨌든 당시 규정은 명백히 있었으나 사장과 단장들에 의해서 융통성(?) 있게 운영되었다. 이는 당시에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어두운 면이기도 했다. 참고로 2002년 한화에서도 또 한 번의 부적격선수를 영입했다. 물론 그 선수(댄 세라피니)는 바로 퇴출당했다.
하지만 입단은 요란했던 그가 정작 그라운드에서는 조용했던 것. 그가 해태 유니폼을 입고했던 플레이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역전 위기에서 보살로 주자를 잡아낸 것 외에는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첼은 2000시즌 7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7 홈런 8개로 가끔 홈런을 치며 38타점을 남기고 시즌 막판 퇴출당했다. 한국을 떠난 미첼은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2003년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 Keith Alexander Mitchell - 한국명 : 키스 미첼
● 1969년 8월 6일생
● 우투/우타/외야수
● 1987년 ML드래프트 4라운드 애틀란타 지명
● 1991년 7월 23일 데뷔
● 주요 경력 : 1991애틀란타 -> 1994시애틀 -> 1996신시내티 -> 1998보스턴 -> 2000해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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