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시즌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현대는 주력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다.
창단 멤버로 9년간 붙박이 유격수로 뛰었던 박진만과 4번 타자 심정수가 FA로 팀을 떠났다. 또한 2004시즌 리그를 지배했던 용병타자 브룸바의 일본행과 에이스 피어리가 메디컬 테스트 거부로 결별하며 주력 선수 4명이 일순간에 빠져나갔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타선이었다. 이때 현대가 선택한 카드는 왼손 타자 ‘래리 서튼’이었다.
서튼은 메이저리그 7시즌 동안 252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타율 0.236 홈런 12개를 기록한 36살의 베테랑이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2003년 무릎 수술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려 먹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검증된 ‘특급용병’ 브룸바와 비교하면 뭐…어쨌든 현대는 계약금 5만, 연봉 20만 달러에 서튼과 계약을 했다.
서튼은 스프링캠프에서 ‘성실한 선수’로 인정받았다. 다시 말해서 인성이나 기본 태도가 훌륭했던 것. 문제는 기량…캠프에서 시작된 종아리 부상의 여파는 시범경기에서도 이어졌다. 연일 빈타에 허덕이는 서튼. 이미 현대 팬들에게는 ‘브룸바’라는 괴물 타자에게 익숙해 있던 터라 서튼은 성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다만 현대 코칭스텝은 서튼을 무한신뢰(?)했다.
그 결과 일정 기간이 지나자 서튼의 방망이게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다만 브룸바와 같은 강력한 포스는 좀 부족했다). 서튼은 도루를 제외한 타격 전부문에 고르게 이름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덧 KBO리그 중심에 서 있었다. 2년 연속 통합우승을 했던 현대는 7위로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서튼은 달랐다. 2005시즌 119경기를 뛰며 홈런 35개 102타점 장타율 0.592를 기록하며 시즌 3관왕을 차지했다.
시즌 전 우려와 불신(?)을 말끔하게 씻어낸 서튼은 2005시즌 최고의 활약으로 시즌 MVP 후보에 올랐다. 다만 현대의 가세(?)가 기울었던 터라 최종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만약 현대가 여전히 잘 나갔다면 브룸바와 서튼은 MVP를 받았을지도…어쨌든 골든글러브는 받았다.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서튼은 성실함과 푸근한 성격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 결과 당시 영화였던 친절한 금자씨를 패러디한 ‘친절한 서튼씨’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이듬해 현대는 서튼과 재계약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시즌 중 서튼의 일본 진출설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발표액은 계약금 5만 달러, 연봉 25만 달러 등 총액 30만 달러로 전년도에 비해 5만 달러 더 인상된 금액에 계약했다.
2006시즌 준비를 위해 서튼은 고국에서 MLB 최고의 스타였던 알버트 푸홀스와 합동 훈련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의 씨앗이 되었다(훗날 서튼은 푸홀스 탓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다만 2005년에 비해 2006년에는 타격 밸런스가 무너져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합동 훈련을 마치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서튼. 그는 초반부터 많은 장타를 쏟아내며 진정한(?) 거포로 변신하는 것 같았다. 이는 합동 훈련의 효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하면서 그의 스윙은 거포로 변신이 아닌 엉망이었다.
거듭된 빈타 행진에 김용달 타격 코치는 “변화를 주지 않아도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원래 폼으로 돌아갈 것”을 조언했다. 그러나 서튼 역시 뜻을 굳히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결국 김용달 코치와 거래(?)를 했다. 일단 서튼의 뜻대로 하되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원래대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서튼은 더 좋은 활약을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 하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했다. 연일 빈타의 서튼은 어느덧 팀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5시즌 타격폼을 비디오로 보면서 김용달 코치와 함께 노력이 시작됐다. 그 결과 김용달 코치의 함께 노력한 덕분에 무너졌던 밸런스가 정상으로 서서히 오는 듯했다.
하지만 한 번 흐트러진 밸런스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급기야 4월 말에는 팔꿈치 통증으로 1군에서 제외가 되기도 했다. 이는 파워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웨이트가 원인이 된 것이었다. 5월 중순 복귀한 서튼은 잠시 맹타를 휘두르며 팀의 동력이 되는 듯했으나, 6월이 되면서 부진-부상이 겹치면서 또다시 2군 맛을 보게 됐다. 이후에도 좀처럼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2005시즌 3관왕에 빛나던 서튼은 평범한 타자가 되고 말았다.
2006시즌 서튼은 0.266의 타율과 18홈런 61타점으로 마감하며 이전 시즌에 절반에 해당하는 홈런과 타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후에는 2년간 현대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는 대신 2007시즌 KIA에서 뛰었으나 조기 퇴출 되고 말았다.
분명 서튼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부진은 푸홀스와 관계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푸홀스와의 합동 훈련이 그의 은퇴를 앞당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물론 선수가 더 나은 기량을 위한 도전을 시도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무릎 부상은 물론 잔부상이 많았던 그는 2005시즌 후에 웨이트 트레이닝이 아닌 몸을 회복하는데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었다. 한 해 푹 쉬고 풀타임으로 한 시즌을 뛰면서 수비도 해야 했던 것은 감안하면 그의 도전은 무리한 욕심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현대 시절 팬들에게 친절한 선수였다. 사인 요청 혹은 사진 요청에도 친절했고 인상 좋고 인심 좋은 형님 같았다.
2007년을 끝으로 한국을 떠난 서튼. 그리고 그는 12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현대 유니콘스가 없다. 그래서 현대 지도자로 컴백은 100%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10명에게만 주어지는 감독이 된 만큼 좋은 지도자로 활약하기를 응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더 큰 리그에서도 지도자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 Larry James Sutton - 한국명 : 래리 서튼
● 1970년 5월 14일생
● 좌투/좌타/외야수
● 1992년 ML 드래프트 21라운드 캔자스시티 지명(전체 582순위)
● 1997년 8월 17일 ML데뷔
● 주요 경력 : 1997-1999캔자스시티 -> 2000-2001세인트루이스 -> 2002오클랜드 -> 2004플로리다 -> 2005-2006현대 -> 2007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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