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현대 입단”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2001년 기량 미달로 시즌 초반 퇴출당한 선수를 왜 영입했을까? 현대의 선택이 참으로 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현대가 선택한 토레스는 삼성 출신의 ‘살로몬’이 아닌 그의 동생 ‘멜퀴’ 토레스였던 것이다.
토레스는 메이저리그 경험이나 마이너리그에서도 많은 경험이 없는 25세의 젊은 우완 투수였다. 그런데 현대 관계자들은 그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그가 한국야구 사정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당시 KBO리그의 위상은 평범한 마이너리그 선수라고 해도 알지 못했던 그러나 리그였다. 심지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모르는 외국인 선수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잘 알고 있던 것일까? 그 배후에는 형인 살로몬이 있었다.
살로몬은 동생의 한국 진출을 위해 에이전트로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조건 연봉 10만 달러 이상을 주장했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계약금 7만 달러, 연봉 7만 달러에 계약했지만, 이 역시도 형의 노력 덕분이었다.
스프링캠프에서 150km의 빠른 볼로 임선동-김수경과 함께 선발의 한 축은 물론 1선발 후보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빠른 볼을 가지고 있음에도 제구력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그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문제는 그 능력을 실전에서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그 이유는 부상과 같은 선수 문제가 아니라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즌이 시작된 4월 토레스의 등판이 예고된 5경기 가운데 무려 4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됐다. 그런데 이는 우연으로 볼 수 없었다. 김재박 감독이 그를 만나기 위해 도미니카에 도착했을 당시 상당한 비가 내렸다.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레스가 한국행을 결정하던 그 날도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이러한 우천 본능은 한국에서도 계속되었고, 그래서 그를 “비레스”라고 불렀다.
어쨌든 초반 날씨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이어갔다. 시즌 두 번째 승리를 완봉으로 따낸 것은 물론 16이닝 연속 비자책 행진을 하는 등 4월에만 3승을 기록했고, 5월에도 상승세는 계속됐다. 시즌 두 번째 완봉승을 포함해 3승을 추가하는 등 5월까지 6승을 달성. 페이스만 보면 전반기 10승 더 나아가 20승도 가능했다.
하지만 전반기를 7승으로 마감한 토레스는 올스타전 이후에도 한동안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전반기 막판 당한 부상의 여파가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 결과 제구력 난조와 함께 난타당하는 모습도 자주 보이며 시즌 초중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후반기에 단 3승만을 추가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그는 2002시즌 28경기에서 180.1이닝을 소화하며 10승 11패 평균 자책점 4.19를 기록했다. 초반 기세를 생각하면 너무 아쉬운 성적이었다.
현대는 토레스의 재계약을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최대 장점은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었다. 또한, 150km 이상의 빠른 볼과 함께 연투 능력을 갖췄던 것. 물론 전반기 막판 부상이 있었지만, 충분히 육성해 볼 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육성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 걸림돌이었다. 결국, 그와 인연은 단 1년으로 끝났다. 토레스는 다시 도미니카로 돌아갔고, 마이너리그에서 현역생활을 이어갔다. 다만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활약하다가 2008년을 끝으로 마운드를 떠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인물이었다. 지금도 외국인 육성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지만, 한국에서 꾸준히 육성할 수 있었다면 적어도 KBO리그에서는 좋은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정도로 매력이 있는 선수가 토레스였다.
● Melquicedec Ramirez Torres - 한국명 : 멜퀴 토레스
● 1977년 5월 27일생
● 우완 투수
● 주요 경력 : 2002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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