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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20

추억의 용병 09 - '최초의 에이스 용병' 대니 해리거 새천년 LG는 선발 마운드 강화를 위해 우완 투수 ‘대니 해리거’를 선택했다.  해리거는 계약금 6만 달러와 옵션 5만 달러 연봉 9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 물론 대부분 발표액은 20만 달러였다는 사실… 해리거는 1998년 디트로이트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데뷔했다. 그리고 4경기 12이닝을 소화하며 승리 없이 3패, ERA 6.75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못했다. 그래도 그 당시 한국야구에서는…어쨌든 마이너리그에서는 7시즌 연속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몇 안 되는(?) 선발 투수 자원이었다(여기에 덧붙이면 한국에 와서 선발로 뛴 선수 중에는 마이너리그에서도 불펜으로 뛰던 인물도 많았다). 입단 당시 해리거는 140km 초반의 구속과 슬라이더가 좋은 기교파 투수로 .. 2024. 5. 12.
추억의 용병 08 - ‘장점이 단점이었던’ 에프레인 발데스 LG는 2001년 해리거와 원-투펀치를 이룰 선수를 구하던 차에 좌완 투수 ‘에프레인 발데스’를 영입했다. LG는 2001년 해리거와 원-투 펀치를 이룰 인물로 좌완 투수 ‘에프레인 발데스’를 영입했다. 발데스는 계약금 4만 달러, 연봉 10만 달러, 옵션 6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LG 유니폼을 입었다.  발데스는 메이저리그 통산 3시즌 동안 26경기에 등판해 34이닝을 던졌다. 그 결과 1승 1패만을 남기고 큰 활약은 없었다. 하지만 한국 오기 직전 시즌이었던 2000년 그는 멕시칸 리그의 다승왕을 차지했다. 다만 그의 ERA는 무려 5.43이었다는 것이 함정. 아무리 마이너리그라고 하지만 안정성이란 전혀 없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시범경기에서 무난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정규시즌에 돌입해 계륵.. 2024. 5. 2.
추억의 용병 11 - ‘올라운드 플레이어’ 매니 마르티네스 2001년 ‘우승 청부사’ 김응룡 감독이 부임하면서 삼성은 훌리오 프랑코와 결별을 선언했다. 참고로 2000시즌 프랑코는 타율 0.327 홈런 22개 110타점을 기록했다. 어쨌든 김응룡 감독이 발 빠른 타자를 원했기에 새로운 외국인 타자 ‘매니 마르티네스’와 계약금 없이 연봉 18만 달러에 계약했다. 마르티네스는 1996년 데뷔 후 필라델피아-피치버그-몬트리올 등 메이저리그 통산 3시즌 동안 232경기를 뛰었다. 특히 1999년에는 몬트리올 소속으로 137경기 타율 0.245 도루 19개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삼성은 마르티네스에게 기동력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 코치에 의하면 그저 빠른 발만 보고 영입한 선수가 마르티네스였다고 한다(도대체 김응룡 .. 2024. 4. 14.
추억의 용병 07 - '아까웠던 용병' 더그 린튼 2001년 LG는 로마이어의 대체 선수로 타자가 아닌 투수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LG와 협상을 했던 인물은 ‘라벨로 만자니오’였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LG 유니폼은 ‘더그 린튼’이 입었다. 린튼은 토론토를 시작으로 볼티모어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6시즌 동안 105경기 17승 20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LG 입단 당시 우리나라 언론에는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마이너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는 정도…단 한 경기만 뛰어도 호들갑 떨던 우리나라 언론이 이상하게도 린튼에게는 무관심했다. 어쨌든 린튼은 준비된 용병이었다. 특별한 적응 기간 없이 한국 무대 첫 등판(선발)에서 9이닝 3피안타 1실점(비자책)을 기록했다. 다만 타선의 불발로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다. 린튼의 9이닝 경기는.. 2024. 2. 25.
추억의 용병 06 - ‘오지라퍼(?)’ 댄 로마이어 2000시즌 그토록 원하던 거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지션 중복 및 수비 문제’를 이유로 LG는 스미스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 2시즌 동안 한화에서 뛴 ‘댄 로마이어’를 선택했다(연봉 16만 달러, 보너스 4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 로마이어는 1999시즌 한화가 우승하는데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다만 이듬해 성적 부진과 코칭스텝과의 마찰로 한화에서 퇴출됐다. LG에서는 비록 문제점이 있지만 ‘매력적인 선수’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화 시절 주로 1루수로 뛰었던 로마이어는 LG 유니폼을 입고 외야로 나갔다. 코칭스텝은 마이너리그 시절 외야는 물론 포수로도 뛰었던 만큼 포지션 이동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서용빈을 1루에 붙박이로 두고, 로마이어와.. 2024. 2. 16.
추억의 용병 05 - ‘잠실 거포’ 찰스 스미스 테이텀에 이어 대체 선수였던 쿡슨까지 부상을 당하자 LG는 새로운 선수를 찾아야만 했다. 당시 LG 사령탑이었던 이광은 감독은 양준혁을 살리기 위해서 타자가 아닌 투수로 영입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좋은 투수 자원을 찾지 못한 LG는 테이텀의 재영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삼성에서 거포 스미스를 웨이버 공시했던 것이다. 이에 LG는 기나긴 고민(?)에 돌입하게 됐다. 웨이버 공시된 스미스 영입의 우선권은 리그 성적의 역순이었다. 따라서 스미스를 영입할 가능성이 있는 팀을 나열하면 SK->LG->현대순이었다. 그러나 SK는 영입보다 다른 속셈이 있었다. SK는 “스미스를 처리할 테니 신동주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을 당했다. 특히 프로 입문 반년도 안 된 신생 팀에서 보인 이런 태도에.. 2024. 2. 7.
추억의 용병 04 - ‘LG 3루 용병 잔혹사의 시작’ 짐 테이텀 2000년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이 자유선발로 바뀌었다. 당연히 LG는 전년도 애물단지(?) 주니어 펠릭스 – 케빈 대톨라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선택한 인물이 3루수 출신의 거포형 선수인 ‘짐 테이텀’이었다. LG는 그와 계약금 6만, 옵션 5만, 연봉 9만 달러 등 총액 20만 달러에 계약했다고 밝혔다. 테이텀은 3루수 출신이지만 포수, 1루는 물론 외야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맨’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당시 LG의 외야에는 그가 들어갈 자리가… 어쨌든 테이텀은 198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샌디에고 지명을 받았다. 이후 1992년 밀워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그는 콜로라도-보스턴-샌디에고-메츠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5시즌 동안 173경기를 뛰며 타율 0.194 홈런 3개.. 2024.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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