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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용병8

추억의 용병 10 - ‘치킨 때문에 떠난’ 루이스 안두하 2001년 해태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우완 ‘루이스 안두하’와 연봉 12만 달러, 옵션 2만 달러에 계약했다. 루이스는 1995-1998년까지 메이저리그 통산 4시즌을 경험한 인물로 150km의 강속구가 매력적인 투수로 알려졌다. 그런데 유니폼을 입는 순간 매력(?)이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는 투수라는 것이 밝혀졌다. 스프링캠프에서 루이스는 40개의 라이브 피칭을 했다. 그 결과 최고 127km 평균 120km 초반의 구속을 기록했다. 캠프라고 해도…현역 투수가 이런 구속을 나타내는 것은 말해 뭐 하겠는가? 누구보다 김성한 감독은 한마디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분명 도미니카에서 직접 봤을 때, 146km까지 기록했는데 무려 20km가 사라졌다니…결국 김성한 감독과 루이스가 면담을 하게 됐다. 그럴 수도 .. 2023. 9. 14.
추억의 용병 08 - ‘부정선수’ 키스 미첼 부상에서 일어나지 못한 배스를 방출한 해태는 메이저리그 출신의 ‘키스 미첼’과 6만 5천 달러에 계약했다. 그런데 미첼은 시작도 전에 이상한 것(?)으로 이슈를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등록명은 구단 편의(?)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미첼의 경우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그의 이름이 결정됐다. 미첼의 풀네임은 “Keith Alexander Mitchell”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키스’, ‘케이시’, ‘케이트’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처음에는 통일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부정 선수였다는 것이었다. 미첼은 1998년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였다. 당시 KBO리그 외국인 선수 고용 규정 6조에는 “외국의 프리에이전트 선수 중 전.. 2023. 8. 26.
추억의 용병 07 - ‘회식에 진심(?)이었던’ 제이슨 배스 해태는 말레브와 피어슨의 대체 선수로 포조와 함께 좌투좌타의 외야수 ‘제이스 배스’를 10만 달러에 영입했다. 배스는 주로 더블A에서 뛰었던 인물로 그저 수비는 좀 불안하지만, 장타력을 갖추고 있고 191cm의 거구에도 불구하고 빠른 발을 소유한 그냥 기대치가 매우 낮은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반전이 일어났다. 배스는 첫 15경기에서 홈런 3개 15타점으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활약을 했다. 뜻하지 않은 동력을 얻은 것 같았던 해태. 그러나 배스는 4월 28일 발목 부상을 당했다. 해태는 새로운 선수 수급도 어렵고, 생각보다 좋은 활약에 그가 부상에서 일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퇴출… 이후 배스는 마이너리그로 돌아갔고, 더블A를 거쳐 트리플A에서 3할 타자가 됐다. 하지만 20.. 2023. 8. 20.
추억의 용병 06 - ‘무시당했던 용병(1)’ 아르키메데스 포조 부도로 휘청거리던 모기업. 그런데도 2명의 외국인 타자를 영입했던 해태는 새천년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2명의 외국인 선수를 모두 퇴출했다. 그러나 또다시 보스턴의 도움(?)으로 2명의 선수를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이 ‘아르키메데스 포조’였다. 해태는 포조와 계약금 1만, 연봉 11만 달러에 계약했다. 포조는 1995년 시애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갔다. 이후 1997년까지 3시즌 동안 단 26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1999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뛰게 됐다. 당시 일본 주니치에서 활약하던 선동열과 이종범은 그에 대해서 “변화구를 잘 치는 괜찮은 타자”라고 조언했다. 게다가 포조는 작은 체구에 불구하고 정확한 타격과 안정된 수비를 자랑하는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는 그냥 대외적인 허위 사실(?).. 2023. 8. 9.
추억의 용병 05 - ‘타이거즈 최초의 태업 용병’ 에디 피어슨 2000년 해태는 직전 시즌에 현대 유니콘스에서 뛴 ‘에디 피어슨’과 연봉 10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는 현대 시절 덩치에 비해 파워가 떨어졌고, 수비는 전혀 할 수 없는 그런 선수였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에서 뛰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그보다 몸값이 싸다는 것이 선택의 이유였다. 게다가 현대에서 재계약 의사가 없자 다른 팀에서 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도 하나의 장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피어슨은 해태와 계약에도 불구하고 팀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유는 있었다. 비자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쉽게 말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차일피일 합류를 미뤄왔던 것. 화가 난 구단은 그에게 최후통첩으로 합류하지 않을 시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2023. 8. 8.
추억의 용병 04 – ‘야구만 못하는 야구선수’ 호세 말레브 2000년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 방식이 자유계약으로 바뀌었다. 가난한 살림으로 구단을 운영하던 해태는 자매 구단인 보스턴과 외국인 선수에 관해 독점 수급을 하겠다고 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보스턴에서 처음 공급해 준 선수가 바로 ‘호세 말레브’였다. 그런데 이러한 계약(?) 협약(?)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보스턴이 자매 구단이라면 당연히 좋은 선수를 값싸게 공급해야 줘야 했다. 아니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보스턴이 해태에 제공한 선수는 모두 먹튀 혹은 선수 같지 않은(?) 이들이었다. 무엇보다도 해태는 선수를 실제로 보지 못하고, 비디오만 보고 결정해야 했던 것. 말레브 역시 비디오만 보고 1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말레브는 1996-1997년 보스턴 소속으로 .. 2023. 7. 23.
추억의 용병 03 – ‘타격 삼분할의 창시자’ 트레이시 샌더스 1999년 외국인 선발 드래프트 방식은 최근 3시즌 성적을 합산한 역순으로 ‘ㄹ’자 방식으로 진행됐다. LG와 두산이 전년도 선수와 재계약을 하면서 지명권을 상실. 해태는 전체 6번과 7번째 지명권을 연속으로 행사하게 됐다. 그 결과 해태는 1라운드에서 브릭스를 지명한데 이어 곧바로 2라운드에서 ‘트레이시 샌더스’를 지명했다. (이런 드래프트 방식으로 현대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현대 김재박 감독은 1997년 스프링캠프 때, 플로리다에서 훈련하던 샌더스를 눈여겨봤다. 이후 그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영입을 계획했다. 그러나 해태가 앞에서 지명을 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거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현대가 샌더스를 영입했다면? 아마도 1999시즌 판도가 조금은 달라졌을 것이다.) 해태와 .. 2023.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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