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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민태3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3) 巨人 입성과 시련, 그리고 퇴단…  2000년 시즌이 끝나고 현대는 약속대로 정민태의 해외 진출을 허락했다. 그리고 정민태에게 관심이 있는 일본 구단이 여럿 거론됐다. 이미 한국 선수들이 뛰었고, 소속되어 있는 주니치가 있었고, 현대의 자매결연 팀인 오릭스도 있었다. 언론에서는 오릭스행이 유력하다고 하기도… 그런데 정민태의 최종 도착지는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요미우리에는 이미 조성민-정민철이 있었다. 그래서 정민태는 비난의 대상이 됐다. 비난의 이유는 굳이 국내 선수들이 있는 팀에 가서 한국인들끼리 경쟁 구도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정민태를 비난한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요미우리는 정민태가 원해서 간 것은 아니었다. 당시 현대는 ‘왕자의 난’으로 인해 계열사 분리로 모기.. 2024. 7. 14.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2) 현대 왕조의 최초의 에이스 탄생 1995시즌이 끝나고 정민태는 오릭스 가을 캠프에 참가하게 됐다. 그리고 일명 ‘아리랑볼’로 불리는 ‘슬로커브’를 장착했다. 이는 단순히 구종 장착을 넘어 힘으로만 밀어붙이던 스타일에서 완급 조절이라는 기술을 장착하는 계기가 됐다.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첫해였던 1996년 정민태는 위재영과 원-투 펀치를 이루면서 현대 마운드를 책임졌다. 그리고 정민태는 박재홍과 함께 팀 창단 첫해 돌풍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96시즌 30경기에 등판한 정민태는 210.1이닝을 책임지며 15승 9패 평균자책점 2.44를 기록. 프로 데뷔 첫 두 자리 승리와 함께 200이닝을 돌파했다. 이는 명실상부한 현대 ‘최초의 에이스’로 출발하는 시즌이었다.  정민태의 눈부신 활약은 가을 무대에서도.. 2024. 7. 13.
현대 유니콘스의 '영원한 에이스' 정민태 (1) “현대가 없어진 날, 내 야구 인생도 끝났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한 마디였다. 에이스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퇴식도, 영구결번식을 할 수 있는 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다. 때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들은 한두 시즌 반짝해서 실력 이상으로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리그를 지배했던 에이스였고,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우완 투수였음에도 저평가받았다. 그리고 조롱받을 때도 팬들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이것이 팬 없는 구단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항상 거침없는 피칭으로 승리를 안겨주는 그가 너무나 고마웠다. 정. 민. 태. 그는 현대 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누가 뭐라고 해도 현.. 202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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